사랑에 목마른 남편, 못 맞추는 아내
남편 승진임용식에 가지 않았다
"혜민아. 오늘 왔니?"
"과장님, 승진임용식이요? 아니요."
"계급 달고 소감 말하는데, 너한테 제일 고맙다더라."
"진짜요? 오늘 아침 아무 말 없던데, 그랬어요?"
"그래서 너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그나저나 너 복직은 했냐?"
"곧 합니다."
휴직계를 제출하고 육아에 전념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적당한 승진과 그에 따른 인정이 따라왔다. 그러나 쪼그라진 마음은 자리를 잡아가는 그의 모습을 기쁘게만 바라보지 못했다. 그것은 스스로 찍은 발등이었기에 서운하다고 내뱉지 못했다.
“휴직하는 동안 여보 하고 싶은 거 다 해. 승진이든 자리든.”
들리는 대로 받아들였던 남편은 승진에 몰두했고 회사에 집중했다. 그 결과 경사 승진을 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축하해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나의 축하는 그의 기준치에 닿지 못했고 미숙했던 난, 매섭게 진심을 내뱉었다.
“다른 아내들은 남편이 승진하면 좋아하는데, 넌 아닌 거 같아.”
“물론 좋지만, 속상하기도 해. 나도 일도 하고 싶고, 동기들처럼 승진도 하고 싶어.”
지나친 솔직함은 남편의 말문을 막아버렸고, 우린 오랫동안 날카롭게 솟은 감정 돌기 위에서 불편한 마음을 꽁꽁 숨겼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 그는 다시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경위 시험 준비하려고.”
“그래. 대신 내가 복직하고선 아이들한테 집중해 줘.”
이번에도 진심과 달리 쿨한 척 그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며 거짓을 연기했다. 역시나 집중하는 그를 보며 마음속 응어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독박육아는 내 것이었고, 그가 쉬는 날이면 살짝 기대했다가 ‘도서관 다녀올게’라는 말에 마음이 굳어졌었다. ‘나도 쉬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붙잡지 못했다. 급하게 가방을 짊어지고 나가는 그와 차갑게 닫히는 현관문의 소리는 유독 시렸다.
삶이 그렇듯,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듯, 그가 회사에 집중할수록 우리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경위승진시험 발표날은 찾아왔다.
“붙었어.”
“오. 축하해.”
“아니야. 너는 휴직하고 있는데, 내가 미안하지.”
낯설게도, 남편은 지난 몇 년 전과 달라져 있었다.
6월 30일. 드디어 남편의 어깨에 무궁화 하나가 살포시 얹어졌다.
“승진임용식 안 가도 괜찮아?”
“응. 괜찮아.”
“얘들아, 아빠 회사 가시는데 인사해야지. 오늘은 충성할까?”
밤새 까치가 다녀갔는지, 부스스한 머리로 현관 앞에 나온 시후는 엉성한 자세로 오른손을 이마에 가져다 붙인다. 오빠가 하는 것은 뭐든지 하고 싶은 시율이는 두 다리를 쫙 펴, 균형을 잡고 왼손을 이마에 붙인다.
충! 성!
그렇게 아이들 각자 스타일의 거수경례를 받은 남편은 긴장감을 덜어 낸 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
“여보. 잘하고 와.”
거추장스러운 인사치레를 모두 떨구고, 보통의 일상과 같이 가볍게 건넨 인사에 남편도 그 결을 맞췄다.
여느 때와 같이 정신없던 하루 끝에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고서야 남편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아빠를 찾기 시작했고 남편은 가슴 가득 채운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풍성한 꽃다발은 내 가슴에 안겨졌다.
“여보 좋아하는 수국이야.”
내가 건네야 할 꽃을, 나는 염치없이 그에게 받았다.
첫 번째 승진 때,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너에게 사랑받고 싶다며 응석을 부리던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한 발만 뒤로 물러나 생각하면 움츠려든 내가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 결과, 우린 각자의 서운함에 행복해야 할 그날, 잔뜩 날을 세웠다.
두 번째 승진인 오늘이 두려웠다. 오늘은 얼마나 과한 제스처를 펼쳐야 그가 만족할지 걱정이 앞섰다. 이윽고 그날이 다가왔고, 걱정과 달리 그는 덤덤한 모습으로 내게 건넸다.
“나만 승진해서 미안해.”
충분히 즐겼어야 할 오늘, 홀로 느꼈을 그의 무게감에 가슴 끝이 저렸다. 그 마음을 조금 덜어내고자 식탁 구석에 놓여있는 임명장을 큰소리로 읽으며 너스레를 떨어 본다. 이내 그의 시선은 나에게로 닿고 가벼운 미소로 답한다.
여보. 축하해.
사진출처(꽃)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