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을 하고 온 남편이 무겁다. 바짝 쳐올린 옆머리에 그 어둠이 도드라진다.
“군인아저씨 같아.”
진담 섞인 농담에도 본연의 밝음이 돌아오지 않는다. 멋이란 것에 1도 관심 없는 그가 미용실을 다녀와 어두워질 이유가 없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소파 한편에 한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하던 그는 식사 자리에서 겨우 한마디 꺼낸다.
“휴. 내일 월요일이야.”
깊은 한숨과 함께 월요병이 찾아왔다. 10년 다닌 회사에서 처음 맞이하는 고약한 그 녀석은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씌우고 그 좋던 입맛을 빼앗아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몸무게는 아이러니하다.
불과 이틀 전 밤, 불금을 즐기겠다는 들뜬 톤과 야식거리를 찾던 육중한 신체의 날렵함은 일요일 저녁 물먹은 솜처럼 축 가라앉았다.
그의 어두움 앞에서 들뜬 나의 마음을 숨긴다.
주말 내내 잿빛 얼굴에 조금씩 빛이 드리운다. 일요일 아침 공기는 유난히 맑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이들 책가방을 먼저 살핀다. 시후가 과제물은 잘 챙겼는지, 행여 장난감을 가방에 담은 건 아닌지 구석구석 살핀다.
“엄마 시율이 발레복은?”
“아 맞다.”
건조기 속 발레복을 정성스럽게 접어 유치원 가방에 차곡차곡 챙긴다. 손 끝에 닿는 따끈한 발레복에 괜스레 마음까지 가볍다.
“엄마 시율이 바지가 여기까지 왔어.”
“발레 바지 작아졌어? 시율이 키가 컸나 봐.”
“시율이 키 컸으니깐 오빠처럼 수영해도 돼?”
“우리 시율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뭔들 못해 주겠냐 싶었다. 일요일 저녁 내 마음은 그랬다.
금요일 저녁은 어느 날부터 내게 불금이 아니었다. 괴롭히는 이 없지만, 묘하게 답답하고 이유 없이 피곤한 나날의 시작이었다. 가족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목소리를 모아 내게 요구하고, 늘어지는 그들 속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임에도, 이상하게 서럽고 낱장의 종이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서글픈 감정은 신기하게도 일요일이면 스르륵 풀렸다.
환기를 시키겠다며 올린 블라인드, 넋을 놓고 훅 당긴 줄이 힘 있게 오르긴커녕 툭하고 빠진다. 뭔가 잘못됐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놀란 눈을 고정시키고 더 힘껏 당겼을 때 이미 블라이드 축에 걸쳐 있던 끈은 헛바퀴 돌고 있었다.
“여보 고장 났어.”
그 소리에 한걸음 달려온 그는 조용히 곁에 나란히 섰다.
“줄이 빠졌네. 빼서 끼우자.”
거실 한가운데 블라인드를 쫙 펼치고 커다란 공구함을 끌어다 놓는 그가 지나쳐 보였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옳았고 결국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 해체하고서야 손쉽게 끈을 원래 자리로 되돌릴 수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묵직한 블라인드 천이 선하나에 의지해 스르륵 오른다.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여보, 오늘 우리 합이 좀 맞는데?”
블라인드를 천장에 고정시키는 남편은 내가 건넨 이야기에 옅은 미소를 띤다.
그렇게 그는 순간 월요병을 잊었다.
월요일 아침,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난, 여전히 블라인드를 올린다.
지난밤 묵은 공기를 내어주고, 맑은 아침 공기를 맞이한다.
이윽고 안방 창틀에 올라 블라인드를 내려, 다시 고친다. 잘 고정된 줄 알았던 블라인드가, 거꾸로 말려있었다.
지난밤, 월요병으로 어두웠던 그에게 고하지 못했다.
사실은 잘못됐다고, 우리 합이 어긋나 있다고.
결국 난 그렇게 갈망했던 월요일 오전, 몰래 이 수고로움을 찾아 하고 있다.
작은 일에도 마음 씀이 큰 남편은,
소소한 걱정에 곁을 내주지 않는 아내를 만나 이따금 속상해한다.
타인의 시선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 않는 아내는,
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머물러 있는 남편에게 부질없다 말한다.
그러나, 이따금
그의 섬세한 마음씀씀이 덕분에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나열되고
나의 무덤덤함 덕분에 그는 담담하게 털어 나간다.
서로 다른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거리를 두고 서로를 인정한다.
사진출처(제목)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