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워킹맘이다

태풍 속의 평온함, 워킹맘이라는 삶

by 오돌뼈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낯선 서울에서 지하철과 길 찾기는 버겁게 느껴졌고, 집과 회사까지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크지 않은 사무실. 20대부터 40대 중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작은 골방 같은 공간에서 아르바이트 친구들과 함께 일했다. 대부분 또래이거나 동생들이라 금방 친해졌고, 다들 한두 달 하고는 그만뒀다. 나도 지겹고 수작업이 많은 일이 힘들어 그만두려 했지만, 담당 언니가 학교 안 가는 날이라도 일주일에 2~3번만 나와 달라고 했다. 그렇게 계약직, 정직원을 거쳐 어느덧 18년 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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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팀장은 ‘골드미스’였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에, 말투와 눈빛이 날카로워 주눅이 들곤 했다. 다행히 조직이 커지며 그분은 실장이 되었고, 나는 새로운 팀장을 맞이했다.

두 번째 팀장은 워킹맘이었다. 아이가 둘이었고, 남편과 함께 번갈아 등하원을 시켰다. 아이는 늘 제일 먼저 등원하고, 제일 먼저 하원하는 듯했다. 그 시절엔 자율출퇴근제도 없어, 팀장은 저녁 6시만 되면 가방을 안고 종종걸음으로 퇴근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지만 그 팀장은,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팀원에게 날 선 말을 자주 했다. 팀원의 실수를 집요하게 지적하고, 가치를 깎아내렸다. 나도 처음엔 내가 부족해서 그렇겠지 싶어 퇴근 후엔 컴퓨터 활용, 보고서 작성 등 각종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팀장은 단지 나를 싫어했던 것뿐이었다.

회의가 있던 날이면 그의 눈빛은 더 날이 서 있었다. 결국 그는 쓸쓸하게 퇴장했고, 나는 그가 숙박업으로 성공한 블로그를 우연히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알까? 내가 그 때문에 몇 번이나 옥상에 올라갔는지. 아침마다 회사 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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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 번째 팀장도 워킹맘이었다. 주말부부였던 그녀는 회사 근처에 집을 얻고, 아이도 그 근처 어린이집에 맡겼다. 이 팀장을 만나면서 나의 회사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그녀는 나를 ‘스스로 잘 해내는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다.

주말에 함께 보고서를 써야 할 땐, 내가 오전에 보고서를 정리하고 그녀는 아이와 함께 출근했다. 그녀가 보고서를 검토하는 동안 나는 아이와 놀아주었다. 그 팀장은 열정과 실력, 인간적인 따뜻함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지금도 나에게 최고의 팀장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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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 되어보니 알겠다.
아침 9시에 간신히 출근하는 이유, 퇴근 시간이 되면 뛰어가듯 나가는 이유, 전화를 받고 반차를 써야 하는 이유… 내 시간, 내 존재가 없어지는 두려움. 누군가 “언제 밥 한 끼 해요”라는 말을 해도,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

워킹맘의 시간은 나, 회사, 남편, 아이, 집… 다섯 방향으로 나눠 써야 하니까. 부족하고 치열한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써야만 하니까.

그래서 힘내라는 말보다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당신이 제일 열심히 살고 있고 잘 살고 있습니다.”

복직한 엄마들과 화장실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아마도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이 지닌 무게를 서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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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워킹맘 상사들 중 어떤 사람은 너무 미웠지만, 그들의 선택과 행동의 이유를 이제는 이해한다.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나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또 어떤 상사에게서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웠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아주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기를, 같은 워킹맘들에게는 **“엄지 척!”**을 보내고, 예비 워킹맘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태풍이 무서울 뿐, 태풍의 눈 속은 오히려 평온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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