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과 불안, 그리고 나를 다독이는 시간들
내가 남들보다 예민하다는 걸 처음 자각한 건 서른 즈음이었다.
그전까지는 단지 내가 우울감이 많고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이건 타고난 기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걱정이 많았다.
‘오늘 회사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일들이 늘 나를 두렵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에 대한 욕심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당시의 낮은 경력과 부족한 자신감은 그 불안을 더 키웠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걱정했던 10가지 중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기껏해야 1개, 아니면 아예 없었다.
예전에는 한 번 불안이나 우울이 몰려오면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워킹맘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런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우리 남편은 MBTI로 보면 극T다. 공감 능력은 적고, 타인의 감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결혼 초반에는 그의 그런 무심함에 많이 서운했지만, 이제는 고맙다.
그의 무덤덤한 태도가 나의 예민함과 불안을 눌러주는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세상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성장 기준표도, 학원 약속도, 계획한 외출도
아이의 컨디션 하나에 무너지는 게 일상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야근이라 아이 픽업을 못 가게 되면, 결국 내가 달려가야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다 보니, 내 예민함과 불안도 어느샌가 작아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 불안이 울컥 솟구칠 때면
내 마음 안에서는 파도가 치듯 요동친다.
‘내가 나를 너무 믿지 못하는 걸까?’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찬물을 한 잔 마셔도 쉽게 진정되지 않을 때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 마음속 파도가 조용히 가라앉기를.
아마도 내 어린 시절이, 내 환경이, 내 자존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잠들기 전 딸아이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를 꼭 안고 이렇게 말했다.
“네가 걱정하는 일들 중에 실제로 일어나는 건 거의 없어.
설사 일어난다 해도, 네가 해결할 수 있거나
엄마 아빠가 도와줄 거야. 걱정하지 마.”
그 말을 하면서 동시에 생각했다.
‘엄마가 예전에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었다면,
나는 좀 더 건강하게 자라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 엄마는 정말 훌륭하게 나를 키워주셨지만
말과 행동에서 더 따뜻하고 단단한 양분을 주셨다면
조금 다른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불안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것조차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는 조용히 바란다.
오늘만큼은 내 마음에도
잔잔한 파도만 일렁이다가,
소리 없이 지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