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동화 쓰는 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왕따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왕따 이야기는 대개 중간에서 고민하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우곤 한다. 가해자 - 방관자 - 피해자로 나누었을 때, 아무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이 방관자이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선택이다.
문제는 많은 이야기가 왕따 피해자를 대상화한다는점이다. ... 많은 작품에서 왕따 피해자는 애초에 기구하고 박복하고 자존감이 낮다. 가난하거나 조손 가정이거나 한부모 가정이거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거나 촌스럽거나 혹은 그 모두다. (중략)
역시나 왕따를 당한 아이의 마음 같은 건 제대로 묻지 않는다. 친구가 없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받아 주면 감지덕지해야 하는가? 그 아이가 이미 다른 친구들을 싫어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는가? 최소한 그런 의문조차 없이 왕따를 당한 아이를 대상화하고 있다.
- 이현, <동화 쓰는 법>, 54~55쪽
나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아이의 사회성 기르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아이가 친구를 잘 사귀는 방법이나 자신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 때 대처법, 특히 왕따나 학교 폭력과 관련한 이야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아이가 가해자, 방관자, 피해자 이 중에 어느 위치든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동화 속에서 왕따 이야기가 등장할 때 대부분의 주인공은 방관자이며 피해자에게 구원과 온정의 손길을 내밀면서 극적 화해로 끝맺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는 관점인 줄 인식하지 못했다. 작가는 이를 두고 ‘불의에 침묵한 자신을 변명하고 용서하기 위’한 어른의 욕망이 투영된 게 아닐까 하였다. 앞의 책 55쪽의 내용처럼 어떤 동화에서는 왕따를 당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로맨스 소설에서는 사이다 한 방은 기대할 수 있다. ‘사이다 한 방’이란 억울하게 당하는 주인공이 악역의 상대방에게 통쾌하게 복수함으로써 같이 주인공에게 공감 이입한 독자들에게 사이다를 마시는 것처럼 시원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에서도 왕따 이야기가 등장한다. 학창 시절부터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될 경우, 보통 가난한 여주인공이 왕따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서는 왕따의 가해자나 방관자는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은 해피엔딩의 결말을 쥔 사람이므로 정의롭지 않으면 수많은 독자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주인공에게 강하게 감정 이입한다. 따라서 나쁜 욕망을 가지고 살아온 이가 잘 먹고 잘 사는 걸 바라보고 응원하기 어렵다.
<궁에는 개꽃이 산다>의 여주인공은 초반에 패악을 부리는 캐릭터라 독자들의 호불호가 나뉜다. 나 역시 그걸 극복하지 못해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뒤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와서 개연성을 확보한다고 한다. 이렇게 작가가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세우는 경우를 제외하면,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은 왕따의 피해자이다.
로맨스 소설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나 방관자와 화해하는 경우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착한 여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혔던 주변인과 화해하고 그들을 포용하며 훈훈한 게 좋다는 결말도 많이 나왔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앞의 책 55쪽 내용처럼 왕따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는 결말로 나오고 있다. 주인공이 무조건 용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깊은 상처를 입었기에 가해자를 쉽게 용서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 흐름은 동화든 로맨스 소설이든 작가가 현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반영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지금도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보면 연예인들의 학폭이나 왕따 이야기가 계속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일반인들이 당한 왕따나 학폭은 이슈가 되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조용히 묻혀가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살고 있는 독자들은 기대하는 바가 있다. 만약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가해자를 밀어낼 힘이 없다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허탈함과 슬픔을 참지 못한다.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성인이 되고 난 뒤에 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 힘은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상대방을 만나 용기를 내면서 생겨났다. 이 현실을 살고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어떤 방법으로 극복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