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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해슬 Jun 28. 2021

화장실 결벽증 아시나요

산책과 화장실의 상관관계

집 근처에 산책로가 있어서 남편이 저녁마다 산책을 한다. 저녁밥 먹고 배부르다며 누워 있던 습관이 위장을 약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몸이 좋지 않은 걸 느꼈는지 언제부턴가 스스로 나가서 걷고 들어온다. 그 전에는 내가 제발 운동 좀 하라고, 퇴근 후에 헬스장이라도 가라고 사정해도 남편은 들은 척도 안 했었다. 하지만 절박해지니 알아서 움직인다.



처음에는 남편 혼자 다니다가 이제는 나와 아이들도 함께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길어지니 저녁 7시 정도에 밖으로 나가도 여전히 환하다. 어두워지면 아이들이 걷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수도 있기에 집에 있었는데 이젠 다들 산책 하라며 계절도 돕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고 집에 돌아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아이들은 아직은 어린 꼬맹이들이라 중간에 반드시 화장실을 들르게 된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와도 한참 걷다 보면 한 번씩 또 가고 싶어 할 때가 있다.


한 번은 산책로를 바꿔서 산책하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다. 하필이면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오래된 공용 화장실이 있었다. 발을 동동 굴리는 아이들 손을 잡고 “참아, 참아야 해! 너흰 할 수 있어!” 계속 말하면서 열심히 뛰어서 그곳에 들어갔다. 작고 오래된 공용 화장실이라 관리가 엉망이었다. 너무 더러워서 진저리 나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걸 따지지 않고 급한 용무를 해결했다. 엄마만 몸서리치며 다신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던 그곳 때문에 산책로는 다시 원래대로 다니게 되었다.



화장실에 대한 내 결벽증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더러운 화장실은 누구라도 가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예민한 성격이라 여러 조건들을 따졌다.


화장실이 더러운 것 말고도, 큰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안에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한 예민함은 고등학교 때는 자원해서 화장실 청소를 맡을 정도였다. 1년간 내가 직접 청소한 쾌적한 공간에서 마음이 편해지며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큰일을 해결하곤 했다.

대학교 때는 시간표를 짤 때 넉넉한 점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남들은 수업을 몰아서 듣고 여유 시간이나 알바 시간을 가지려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점심시간은 3시간 정도 비워두고 집에 가서 점심밥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오후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집이 비교적 학교랑 가까워서 걸어 다닐 수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러한 결벽증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되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만 있어야 하는 일은 뱃속을 답답하고 부글부글 끓게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긴장하면 멀쩡하던 배를 갑자기 아프게 했다. 첫 직장에서 바짝 긴장하고 앉아서 일을 해야 하니 오죽 속이 답답했으랴. 눈치는 보이고 화장실은 누가 있으면 가지고 못하고 식은땀 나는 시간들을 겪었다.



그러나 예민한 성격 탓만 할 수는 없었다. 이는 식습관 조절과 운동을 통해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몸의 증상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시도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나이를 먹으니 이제는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갔고, 얼마 전부터는 낮에 혼자서 30분 정도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홀로 아무 생각 없이 땀 흘리며 걷다 보면 정신이 개운해진다. 또 어떤 때는 산책을 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를 위해서 변하기 위해 시작한 산책. 이 산책을 꾸준히 하다 보면 과민한 대장도 좀 더 느긋해질까? 그래서 예민하게 화장실을 골라야 하는 일도 조금은 줄어들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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