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해슬 Jul 02. 2021

이런 아르바이트 또 없나요?

내가 영어가 안 되는 건 다 ㅇㅇ 탓이다.


대학교 다닐 때 선배 언니랑 같이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어느 날 언니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아르바이트 구할 때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중에 직업으로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신중하게 구해야 해.”


그 당시 선배 언니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고, 열심히 사는 선배가 멋져 보였던 나는 그 말을 잘 새겨들어서, 아르바이트는 내 전공과 관련된 일로 구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오늘 할 아르바이트 이야기는 그 말을 듣기 전에 ‘돈을 벌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해보자!’ 했던 패기 넘치는 1학년 새내기 때의 경험이다.







대학 1학년 때 선배를 통해 일일 알바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지원자를 구했다. 어학원이 개원했는데, 당일 행사에 필요한 안내원들을 구한다고 하였다. 안내라고 해도 몇 시간 서서 인사하는 정도만 하면 되며, 일당으로 몇만 원 준다고 내 친구랑 같이 옳다구나 하면서 선배를 따라갔었다.



어학원이 개원하면서 크게 행사를 벌였는지 많은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내 친구는 지하 주차장으로 차출되었고, 나는 1층 문 앞에서 서서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가만히 허리 숙여 인사만 하면 되었다. 문 옆에 서 있을 두 사람이 필요했는데, 나 말고 다른 여자도 있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본 사이라 서로 어색하게 서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한 외국인이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이 어학원의 강사 같았다. 키가 별로 크지 않고 몸집은 살짝 통통하였다. 백인 남자였는데 웃는 인상이 좋았다. 머리카락 색은 기억이 안 나지만 숱이 적었던 건 생각이 난다. 머리에 힘이 없는 것이 꼭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 같아서. 그는 문 옆 한쪽에 섰고 그쪽 자리에 있던 이는 이내 다른 곳으로 차출되었다.



그 외국인은 자신을 이 학원 강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서 있는 나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가 유창한 영어로 쏼라쏼라 이야기를 나눈 것은 단연코 아니다. 당연히 난 speaking이 불가능했다. 이것은 ‘튼*영어’ 탓인데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튼*영어를 시켜주셨다. 우리 엄마가 튼튼이를 선택한 건 ‘윤티처 영어’보다 좀 더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생 후발주자여서 엄마가 거기에 넘어갔다.


튼*영어는 아침에 선생님이랑 영어로 전화 통화하며 교재를 공부했는지 확인받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전화받기 싫어서 늦잠 자고 교재 내용을 안 외워서 선생님이 제발 공부 좀 하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걸 보는 엄마 속도 타들어갔는지 얼마 못 가서 그만두었다.


그랬는데 중학교 올라가니까 영어 잘하는 애들은 다 윤티처 했단다. 당시에 “너 영어 뭘로 공부했어?” 물어보면 “나는 윤티처 영어.” 이 대답이 자연스럽게 나왔으니까. 이러니 영어 못하는 건 다 튼튼이 탓이다.





게다가 나는 중, 고등학교 다니던 6년 동안 주입식 영어 교육을 받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영어를 말하려 해도 입이 떨어질 리가 있나. 강사인 그가 말을 걸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을 뿐이다.



그나마 주입식 영어 교육이 내게 내려 준 혜택은 선택적으로 아는 단어에 한하여 hearing이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스무 살, 뇌가 세파에 찌들지 않고 프레쉬하여 귀가 덜 막혀있었다. 한 살만 더 먹었더라면 난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리라. 내 전공은 영어가 아니었고 그것과 전혀 관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외국인 강사가 나를 위해 쉬운 말로 이야기를 시도한 것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긴장했었는데 아는 단어가 들리면서 긴장이 좀 풀리자, 그가 던진 농담을 듣고 자연스럽게 웃으며 반응하게 되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학원 원장인 듯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이도 좀 있어 보이고 옷차림이 부티나기도 했고, 외국인 강사랑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한 것 때문에 그렇게 추측했다.


그리고 그 원장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을 걸었다.

“이 얘기를 다 알아들어요?”


What!!!!!! 뭐라고요!!! (내 속마음)


정녕 웃고 있는 나를 못 믿겠다는 듯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어온 것이다.


“네..”

뭐라 말하겠는가. 알아들으니까 웃은 거지.

내가 대답을 못한 거야 그쪽이 알 바 아니시고.


다시 한번 불신의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진짜 알아들었어요?”

“네~”


그 원장은 기가 찬 듯 다시 저리로 멀어지면서 다시 한번 더 나를 찌르고 갔다.

“헛.. 이야기를 알아듣는다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건 나구만 무슨!


하지만 왜 날 찌르냐고 따질 수 없었던 것은 나는 을이요, 그녀는 갑인 처지 때문이었다. 내 일당비를 주실 분.. 돈은 받아야지.



그렇게 내 가슴에 비수가 꽂히면서 알바가 끝났다. 그나마 나는 막판에만 씁쓸했다. 그 강사가 의자도 갖다 주고 과자도 먹으라고 해서 편했었기에. 하지만 내 친구는 지하 주차장에서 계속 서 있어서 엄청 힘들었다고 했다. 미, 미안하구나 친구야. 나만 편해서..





비록 살짝 마상은 입었지만, 곧 들어온 일당비에 금세 싹 잊고 눈누난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꿀알바, 벌써 20년 전 일이다. 친구한테는 그렇게까지 꿀알바는 아니었겠으나 그날 나는 칼침 당한 것 빼고는 편하고 좋았다.


그 후에도 이런 꿀알바를 다시 하지 못한 걸 보면 정말 쉽게 일하고 쉽게 얻어낸 돈이었다. 이런 꿀알바 어디 없나.. 다신 못 찾겠지..





후일담으로..


이렇게 내 알바 관련해서는 다 끝난 줄 알았다.


당시 알바했던 날, 외국인 강사는 대화 도중에 내게 이메일 주소를 주며 계속 연락을 하자고 했다.

그에게 이메일을 받았지만 연락이 올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그저 의례적인 인사치레 아닐까, 하루 보고 무슨 연락을 해, 이런 마음으로 나도 분위기상 대충 맞춰서 알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었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 강사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영어 문장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기억이 난다.

믿을 수 없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 이런 인연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상상조차 안되면서 뭔가 핑쿠핑쿠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짧게 마무리 짓자면,


나는 앞서도 말했지만 주입식 영어 교육 세대였고 튼*영어가 나를 망쳐서 작문도 안 되는 아이었다. 보내준 이메일에 답장을 할 실력조차 안되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구글 번역기라는 걸 알지도 못했다. 누가 내 연애(!) 편지를 대필해 주겠는가. 첫 번째 답장은 끙끙 앓으면서 며칠 만에 겨우 보냈지만, 두 번째 메일에는 도저히 답장을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갈등하다가 결국에는 사뿐히 메일을 즈려밟아 지우고 말았다.


sorry.. 외쿡인 강사와는 핑쿠핑쿠는커녕 시작도 못해보고 끝나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장실 결벽증 아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