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속이는 게 쉬운 줄 알았니
중학생 때 국어 수업 과제로 시 쓰기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동시에도 관심 1도 없었는데, 시를 써오라 하니 정말 싫었다! 숙제하기 싫어!! 그래서 집에 있던 책들을 뒤져 발견한, 초등학교 3학년 <전과>에 나온 동시 한편을 베껴서 제출했다.
당시에 같은 반 친한 친구가 시 쓴 걸 보여달라고 했다. 베껴서 쓴 것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잘못된 행동인 줄 몰랐고 당연히 죄책감도 없었다. 그래서 선뜻 보여줬다.
다음 날, 친구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와아, 네가 쓴 시, 전과에 실려 있어!”
그 순간,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고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타올랐다.
친구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은 한참 어린 동생이 있어서, 그 친구의 집에도 하필이면 같은 전과가 있었던 것이다. 중학생이니 다들 초등 전과는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완전 범죄는 하루 만에 들통이 났다.
무엇보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건 친구의 반응 때문이었다. 내 친구도 참 순수했었나 보다. 내가 쓴 시라고 보여준 그 시가 전과에 실려 있으면 보통은 베낀 것이라고 의심하고 따졌을 것이다.
베꼈는데 왜 네가 썼다고 거짓말했어?
하지만 내 친구는 내 말을 먼저 믿어주고 그저 순수하고 놀라운 감탄을 했다. 책에 실리다니 내 친구 대단하다, 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나중에는 이상하다며 의심의 싹이 텄겠지만, 적어도 내게 말을 건넸을 때는 의심도, 분노도 없는 순수한 경탄이었다.
그 시절에는 저작권이 중요하지 않았는지 그 동시에는 작가의 이름이나 출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쉽게 베꼈고, 내 것인 마냥 속여서 숙제로 제출하고 남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의 것을 베낀 것은 엄연한 잘못이다. 그것도 친구의 입을 통해 깨닫게 되었으니 몹시 부끄러웠다.
게다가 난 그 자리에서 실은 그것이 베낀 것이라고 말도 못 했다. 그리고 나중에도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다.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버렸지만, 내 친구도 그날 이후로 그 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잘못을 알아챘겠지만 굳이 따지러 들지 않았고 우리 사이는 여전히 좋았다.
대신에 나는 그 이후로 절대로 남의 글을 베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지만, 속이는 행위는 결국에는 들통이 난다. 그나마 친구가 따지지 않아서 겉으로는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부끄러움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친구가 자신을 속였다고, 남의 것을 자기 것인 양 거짓말했다고 나를 몰아붙였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했을까? 아니, 쓴소리 하는 내 친구에게 오히려 화를 내고 그 친구를 모른 척했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미숙해서 친구들이랑 사소한 일로 싸워도 사과하기 싫다고 버티다가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었으니까. 그런 걸 떠올려보면 나의 치부를 알게 된 친구 얼굴을 보기가 차마 부끄러워 그 친구를 멀리했을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잘못을 알아챘던 친구가 현명한 방법으로 나를 깨우쳐 준 게 아닐까 싶다. 양심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반성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어준 덕분에 지금까지 남의 글을 함부로 베끼지 않는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남의 글을 베끼는 일이 생각보다 비일비재했다. 최근에 읽었던 웹소설에서도 표절 시비가 붙었고 관계자가 그 잘못을 인정하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렸다. 다들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세상에 글은 넘쳐나니 말이다.
하지만 내 양심이 알고 있는 것부터 이미 들킨 것이나 매한가지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한 반성을 보여주면 용서받을 수도 있는데, 진정한 사과를 하면 세상에 지는 것이라 여기는 걸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방어하는 걸까?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침묵과 변명이 대부분이다.
아무도 모르는 완전 범죄란 없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은 결국 들통이 난다. 우리는 가슴 한편에 따끔하지만 영원히 필요한 가시를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