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허영심만 채우다가 끝낼 것인가
대학교 1학년 1학기 교양 수업.
시간표 짜면서 공강 시간에 끼워둔, 선배들이 점수받기 좋다고 말해줬던 그 수업, <여성과 문학>.
강의 계획서도 읽지 않고 첫 수업 때서야 들어본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한 학기가 끝난 후에 남은 거라곤 그 용어를 들어봤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어서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 말씀을 받아 적는 게 다였다.
나는 내내 그렇게 살아왔는데 뭐가 문제라는 걸까..?
여성들의 삶은 고단하지, 그러나 스무 살의 대학 초년생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긴 시간이 지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야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또한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도 생각해 본다. 약자에 대한 시선은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래전에 받았던 그 수업은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 교재도 버려서 알 길 없지만, 나와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기 위한 길이 막힌 건 아니다. 장애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여러 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생각은 책을 통해 영상을 통해 자꾸만 뻗어나간다. 어설프지만 무언가 알 것처럼, 손에 잡힐 것처럼 하다가 문득 멈춰 섰다.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허세를 부리고 싶은 게 아닐까?
관심은 갖지만 깊이 있게 말하지 못한다. 내 앞에는 장애와 인권이 주제인 책 한 권이 놓여 있지만, 이걸 제대로 소화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읽기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 관심은 맛보기로 겉만 핥아대며 ‘이 정도면 됐어’ 하며 지적 허영만 만족시키다 끝날 것 같다.
논리가 없이 막무가내인 남편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논리를 갖춘 남성이 남성 페미니스트가 쓴 글을 읽고 덤빌 때 반박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으니까. 어설프니까.’
나를 위한 글쓰기 삶을 살고 싶은데, 남을 의식하며 허세만 부리다가 흐지부지될까 봐 두렵다. 글을 쓰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어렵다. 나는 지금 이 주제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생각들이 글쓰기와 연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과 삶이 일치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