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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해슬 Jul 31. 2024

글쓰기는 간절함이다

방학 숙제로 칭찬받으면 고래도 춤춘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초등 아이들을 두고 있는 지금은 방학이라고 숙제가 따로 나오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책 읽고 독서노트에 간단히 기록하기, 매일 스트레칭 같은 운동 꾸준히 하기 등 비교적 간단한 걸로 권장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라떼는 말이야~ 옛날꼿날 이야기를 잠깐 풀어볼까 한다. 20년도 훨씬 전에 고등학교 때 일이다. 1학년 여름 방학 숙제로 가족신문 만들기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선생님이 내준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었고, 특히나 고등학교 1학년이니 선생님들이 무서워서 하기 싫어도 해서 결과물을 들고 가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0대 학창 시절은 구구절절 풀고 싶지 않은 나의 과거사가 같이 얽혀 있다. 타 지역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많은 빚으로 인해 야반도주하듯이 우리 가족은 급하게 부모님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갑자기 방 한 칸의 셋방살이가 시작되었으니, 그 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블라블라~~ 이 얘기를 길게 풀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족신문 만들기 방학 숙제와 관련해서 꺼내자면, 짐 하나 챙겨 오지 못하고 몸만 쫓기듯이 왔으니 가족앨범은커녕 사진 한 장이 없었다. 온 세상에 자신의 무능을 드러낸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술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 가장 대신에 생활 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는 전업주부의 삶에서 돈 버는 삶으로 전환해야 했기에 우리는 생활고에 허덕였다. 즐거운 나날이 있었을 리가 있나. 원래 가족사진이라는 게 여행 가서 기념으로 찍고 남기는 건데, 빚 지고 도망쳐왔으니 그 뒤로 살면서 여행 한번 제대로 간 적도 없고 사진기 살 형편도 안 되니 사진이란 게 존재할 리 만무했다.


여하튼, 가족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진이 없는 가족 이야기를 담으라니 환장할 노릇. 누구에게 이 사연을 하소연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그렇다고 숙제를 하지 않는 반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개학 직전까지 고민을 거듭했고 고심 끝에 가족 신문을 만들어내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 이후 맞이하는 첫 국어 수업 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부터 반 아이들은 책상 위에 각자가 만든 가족 신문을 올렸다. 다들 ’가족‘에 방점을 두고 만들어 온 작품이었기에 다정한 사진이 많이 붙어 있었다. 또 전지 크기의 종이에 만드는 숙제여서, 사진으로도 간단한 소개글로도 그 큰 종이의 여백을 다 채우지 못한 경우에는 알록달록 예쁘게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온 아이들도 있었다. 작품을 보면서 얼마나 기가 죽던지.. 내가 만든 가족 신문을 꺼내두긴 했지만 너무나 창피한 마음이 들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하나하나 작품을 살펴보셨다. 그리고 잘 만들었다는 몇 개의 작품을 뽑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칭찬을 해주셨는데, 마지막으로 들어 올린 작품이 바로 내가 만든 가족 신문이었다..!!!

나도 아이들도 의문 가득한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그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누구보다 내용을 충실하게 담아낸 가족 신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렇게 글을 가득 써서 채운 신문이 있나요? 그래서 잘 만든 작품으로 뽑았습니다. “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그 한 마디, 내용을 충실하게 담아냈다는 말. 나는 사진이 없었고 가족들 중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신문’처럼 만들어서 가져왔다. A4 종이에 우리 가족이 겪었던 일들을 기사처럼 작성해서 출력한 뒤 한 장 한 장 붙였는데, 그게 총 9개였다. 전지 한가득 글이 써진 9장의 종이만 붙여서 가져온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똥손이라서 꾸미는 재주 따윈 없고, 오로지 글로만 승부를 보겠다고 열심히 기사처럼 써서 만든 것이다. 어떤 내용을 썼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진 않지만, 반 애들 앞에서 예쁘게 꾸민 흔적은 1도 없이 밋밋하고 초라했던 나의 가족 신문. 선생님의 칭찬으로 인해 방학동안 했던 마음고생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당시 ‘마녀’라는 별명을 가졌던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다 못해 존경하게 되면서, 3년간 내가 그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티를 팍팍 냈고 같은 반 애들도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정말 무서웠지만 나를 보면서 한 번씩 웃어주던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선생님의 뒤를 이어 국어 교사가 되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거랑 공부는 별개라는 걸 다들 알고 있지 않나? ^^

또 그때 이후로 글쓰기와 관련된 길을 직업으로 해서 걸어간다거나.. 그것 역시 아니다. 역시나 좋아하는 거랑 직업은 높은 관련성을 같기는 좀 어렵다.

다만, 당시 나의 간절함은 계속 기억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 간절하게 바라면 해낼 수 있다는 것.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로 한번 발현되었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그 간절함이 다시 내게 찾아와서 이렇게 <그녀들의 글쓰기 맛수다>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렵다. 잘 쓰는 건 더 어렵다. 그렇지만 자신이 글쓰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바라면, 쓰게 되고 이렇게 결과물도 나온다.

그러니, 시작합시다. 글을 쓰고 싶다면!      




<오늘도 쓰는 사람들>

진짜 나를 마주하고 더 단단해질 미래를 그리며 오늘도 쓰는 5명의 작가가 만났습니다.

쓰기를 시작하는, 쓰기를 지속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글을 쓸 수 있는 용기와 내일을 그려보는 희망을 건네는 글을 씁니다. 글쓰기 시대이지만 글쓰기를 지속하는 사람보다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글쓰기의 시작과 시행착오, 글을 쓰며 나아가는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엮고 있습니다.

글쓰기 에세이 신간 [그녀들의 글쓰기 맛수다]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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