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게 기대세요
지지난주 시작된 시끄러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글이고 뭐고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막상 힘든 상황이 닥쳐오니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불안해서 글을 쓰려고 해도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래서야 무슨 글쓰기 모임을 이끌 수 있겠냐고 나 자신을 쥐 잡듯 잡으며 지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고 조금 머릿속의 실타래가 풀리고 엉켜있던 실들이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하자 글이 쓰고 싶었다. 마주하고 싶었다. 당당하게.
몸소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글쓰기의 힘은 알아차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일들을 차마 볼 수 없어 외면하고 싶을 때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쓸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음속 단단한 초석이 다져지면 이내 글을 쓰며 그 민낯을 마주하고 싶어 진다. 이거 봐라. 내가 또 이겼다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글을 쓴다는 건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나의 불안한 마음을 마주하는 것, 무너질까 굴복할까 도망갈까 일단 붙어볼까 라는 선택지 중에서 고르다 고르다 결국에는 일단 붙어보자 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 그래서 또 도망갈 수도 있는 아주 좁고 좁은 문을 마련해 두는 것, 그런 게 글쓰기가 아닐까.
힘들면 글을 쓰세요, 아프면 토해내세요, 괴로우면 뱉어내세요라고 말하던 글쓰기를 뒤돌아본다. 아, 너무 힘들고 너무 아프고 너무 괴로우면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꿈틀 댄다면 그건 내 마음이 정리를 하고 싶다는 것, 꽤 용기가 생겼다는 것. 그러니 그럴 때는 져주는 척하며 글을 써주자. 알아차림으로 나를 돌아보고 안아주고 일으켜주자. 글쓰기가 그런 힘이 있다는 건 나도 너도 우리도 다 아는 거니까.(쌀로 밥 짓는 소리인 거죠?)
나의 고민덩어리는 아직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무엇이든 명확하게 결정된 건 없고,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일들만 가득할 뿐이다. 이런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글을 쓰고 싶어진 건 어쩌면 내 마음이 조금은 용감해지고 싶고, 또 언젠가 비빌 언덕을 마련하고 싶어서일지도. 그런 마음에 기대어 못 이기는 척 손가락을 움직여본다. 타탁타탁 키보드의 응원을 듣고 나니, 여전히 복잡하긴 하지만 싱긋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 글은 이 맛에 쓰는 거지. 쓰다 보면 길이 보이고, 쓰다 보면 또 무엇이든 하게 되는. 그러니 일단 쓰고 보자는 이야기. 너무 힘들면 넣어두어도 되지만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꼭 꺼내어 바짝 말리고, 단비를 내려주기를.
그래서 오늘도 글쓰기 완료.
이제 꿉꿉한 내 마음을 널어볼까.
글쓰기 빨랫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