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시간의 미세한 떨림
얼어붙은 숨결의 춤사위에 웃음을 내던진다.
선선하고 담백한 바람이 빛처럼 번진 한적한 오후
우리는 그저 그렇게 걸었다.
조용히 얌전하게 그동안 함께 한 시간을 그리고 또 그린다.
그리다가 보고 싶어질 때면 문뜩 그리기를 멈추고
말꼬리를 붙여 생각하기를 시작한다.
놀랍게도 그림을 그릴 때와 생각할 때 느낄 수 있는 번거로움은 동일하다.
옆에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
헤어질 수 없지만, 왠지 이별에 대한 불안만큼 불안감을 주기도 하는 존재
사실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호흡은 참 숨 가빴다.
정확히는 내 쪽에서 재촉했다.
늘
영원을 말하지만 난 편안하지 않았다.
약속을 말했지만, 난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약속이 금방 거짓으로 탄로 난 도깨비처럼 숨이 가빠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깨닫고 싶었다.
사실은 그와의 시간이 내 인생의 시계 중
가장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말이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내가 그를 비추는 빛이 살아있는 한
그는 나에게서 멀어질 수 없다.
덕분에 기적을 여러 번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
마음을 내려놓고 기적을 여러 번 반복했더니 그가 찾아왔고
나는 이것을 '기적'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떠나는 법을 모르는 그는 말하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경청을 위해 태어난 듯
듣기를 갈구하고
듣기만 한다.
내가 이래서 좋아하나 보다.
자세히 진솔한 경청을 마주하는 순간,
언어를 붙이는 건
의미를 붙이는 건 사치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말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가, 이치가
듣는 것만으로도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그의 이름은
바로
'가야금'이다.
가야금 덕분에 울고 웃은 시간은
내 영원을 말할 수 있을 만큼
특별했다.
아니, 과거형보다는 현재형과 미래형이 더 어울리겠다.
동사의 시제마저도
초월하는 이 사랑이 영원히 흘러넘치도록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