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초대하는 음악을 연주해야하는 이유

공연 후 느낀 점이 에세이가 되는 순간

by 가야금 하는 희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보이는 대로 판단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공연을 마친 지금, 공연을 했던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느꼈던 강력한 한 문장이다.

연말 맞이 파티로 준비한 공연이었고, 약 30분 정도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오늘 내가 해야 하는 행복한 과제였다.


공연 날, 30분 정도 곡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선곡'에 있어서 많은 고민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연말을 마무리하는 사람들,

따뜻한 연말 분위기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속을 내 음악으로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에게 가야금이 어려운 악기라기보다는

'친근하고 한번 더 듣고 싶은 악기', '언제든지 듣고 싶은 악기'로 다가갔으면 했다.

그렇게 여러 악곡을 들어보면서 악보를 정리하고

음을 이렇게 연주해 볼까 저렇게 연주해 볼까 녹음하고 생각해 보면서 준비한 공연이었다.


가장 첫 번째 곡으로 선택한 곡은 '마법의 성'이었다.

음악을 통해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이 곡을 시작으로 moon river, 수고했어 오늘도,

캐롤 메들리 등 8개 정도 되는 곡을 선보였다.


하지만, 후반부에 배치한 곡의 순서가 아쉬웠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캐롤 메들리가 중간에 있고 바로 이어서 '아리랑'과 '섬집아기' 'let it snow'로 연주를 진행하였다. 사실 이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감성을 느끼며

아리랑을 연주했던 연주자로 잔상이 남기를 원했던 나의 의도였다.


이 과정에서 살짝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템포가 빠른 곡, 느린 곡, 다시 빠른 곡

이렇게 되니 관객 입장에서는 박수를 치기가 조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리랑, 섬집아기 등등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고 캐럴로 신나게 끝내는 방식

혹은 나의 의도를 설명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더라면,

울림은 울림대로 느끼고,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사람들을 더 참여시킬 수 있었을 것 같다.

때론 적절한 설명이 혹은 적절한 순서 배치가 이래서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이와 같이 공연을 열심히 준비해서 관객들에게 선보일 때

혹은 제품을 열심히 연구해서 개발했을 때 등등

생산자는 관객 또는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솔직히 이와 같이 브런치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필력이 좋은 글, 문체가 깨끗한 글이어도

독자들의 반응이 '아 그렇구나.''아, 이 사람은 이런 것을 했구나' 건조한 마침표로 끝나게 된다면,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쓸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나'처럼 음악으로 사람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일이라면

내 음악이 그들에게 '마침표'였는 지 '느낌표'였는 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문장에 느낌표를 붙이게 되면,

그 문장에는 생동감이 생기고 이 생동감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느낌표로 맺는 음악

마침표로 끝나는 음악.


그 차이는 바로 '연주자 나 자신'에게 있었다.

우리는 연습을 하다 보면, 그 곡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 의미가 모여 자연스럽게 나만의 이야기와 철학을 만들게 된다.


안타깝게도 관객들은

연주자가 공연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였는지에 대한

뒷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는 그대로 판단하게 된다.

즉, 관객들은 중간 과정을 함께 본 지인 또는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완성본'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주자들은 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시간과 이야기를 관객들이 모두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마스 연말 파티 공연을 준비했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처음 듣게 된 것, 읽은 것, 느낀 것 반대로 끝에 남게 되는 잔상에

그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기도 하고 차갑게 외면하기도 한다.


글로 따지면, 아무리 쉽게 잘 읽히는 글이라도

음악으로 보면, 듣기 좋은 음악이라도

상품으로 보면, 보기 좋은 물건이라도

지나치게 생략되어서 이해할 수 없거나 지루하면 소비자들은 쉽게 등을 돌린다.


그러니, 나의 작품을 한번 더 그 의미를 궁금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이야기만 한다면, 이는 아무도 없는 빈 벽을 보고 외치는 '고요 속 외침'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외침이 빛바랜 소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울림이 있는 메아리로 도달하려면

우리는 독자를, 소비자를 그리고 관객을 우리의 작품으로 초대해야 한다.


앞으로는 그들에게 멀어진 음악,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음악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 속에 폭 안길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와 동떨어져있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채워나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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