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하기 전, 연주하는 중, 연주한 후
# 1. 연주하기 전
차디찬 공기,
차가운 공기들이 나를 향해 살갑게 다가오지만,
유달리 더 차갑게 느껴진다.
같은 하늘이어도
같은 호흡이어도
모든 것들이 떨려온다.
어떤 선율들이 나에게 찾아올지, 그 선율이 무수히 많은 감정들을 데려올 것을 알기에
당황스럽지 않은 척
옷매무새를 다듬어보지만, 호흡이 급해지고 긴장되는 건 사실이다.
빨리 끝났으면 하면서도
내 순간이 온통 무대 위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주 아이러니한 순간,
악보를 틀릴까 봐 혹시 손이 악기 줄 위에서 중심을 잃을까 봐
고리타분해질 시간 없이 그 시간을 걱정도 해보지만,
이러한 순간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을 알기에 겸허하게 그들을 다스려본다.
# 2. 연주하는 중
차가운 공기, 차디찬 계절
하지만, 따뜻한 온기, 내면에 옹골찬 기운이 나를 다스린다.
왜인지, 그 순간을 차분히 따라가 보는 게 나의 조그만 명상이 되었다.
어쩌면 이는 '명상'중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명상일 수 있겠다.
'가야금과 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내 귀와 내 마음에 초대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으로 만들어진 가야금과 내가
인간과 자연을 품고 있는 하나의 작은 지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이 지구가 나의 우주로 형성되는 건
내 연주가 비로소 관객들에게 도달한 시점이다.
우주가 품은 여음이 그들에게 또 다른 세상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 3. 연주한 후
모든 것을 불태우고 호흡에 열정의 조각이 남아있을 때
관객들의 따뜻한 온기가 곳곳에 끄적여져 있을 때
나는 마치 빗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듯
무대와 함께 했던 순간을 겸허하게 바라본다.
나의 연주로 간지러움을 참고 고요하게 누워있던 가야금을 일으켜 세우며,
그가 영원히 내 간지러움에 빛내주기를 속삭인다
옷을 입혀줄 때면, 포근한 이불에 잠시 쉬었다가
또 좋은 음악으로 나를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나에겐 가야금을 연주하기 전, 연주하는 중, 연주한 후
모든 순간이 프레임에 하나하나 저장하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