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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

가야금 연주자가 공연 전날 잠을 설치는 이유

by 가야금 하는 희원

'자 모두 조용'


이 문장은 내가 꼭 공연 전날, 취침 시간에 하는 말이다.

바로 소란스러운 설렘이라는 감정들에게 말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관객들을 만나기 전날이면, 소개팅 전날처럼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일쑤이다.


내 음악으로 어떤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내 음악이 과연 어떤 에너지를 줄 수 있을까?

내 음악이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어떤 날은 잠을 설치기도 한다.

공연을 하기 전 관객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공연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공연이 끝나고 난 후 밝게 웃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설레는 감정으로 붉게 물든 공기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내 이불을 덮을 때면

난 싱긋 미소를 짓는다.


좋은 컨디션을 위해서라면 잠을 자야 하는 데 하면서도

혼자 신이 난 나는

마치 아이가 양 1마리, 양 2마리 세듯

허공에 닿아있는 여음들을 차분히 따라가 보며 잠을 청한다.


물론, 잠을 많이 자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신이 잔뜩 나서 잠을 청한 날에는

세상 모든 존재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차에 악기를 싣고

한복을 챙기고, 악기 받침대와 악보를 챙기고

살짝의 번거로움은 있지만, 이 번거로움조차도 달콤해 보인다.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사랑하는 이와 데이트를 하는 날, 여행 가는 날 등등

이런 중요한 날에 화장이 잘 되면 몹시 기분이 좋은 것처럼

화장까지 멋들어지게 잘 되는 날에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무심한 듯 흘러가도 되는 순간일 수 있지만,

내가 이 기분 좋은 호흡들에 반응하는 건

작은 조각이어도 모이고 모이면, 연주하는 내 음악에 좋은 에너지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때문이다.


녹아들어 있는

스며들어있는 내 호흡, 내 이야기, 내가 그동안 품고 있던 조각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살아갈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 희망을 영원히 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이 글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내 희망에 머물다가 자신의 희망을 마음껏 찾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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