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덕 8
요즘은 눈이 퀭하다. 뭔가 정신없이 하는 듯하고, 마음은 급한듯하다. 잘 되는 듯한데 뭔가 허전하다. 출퇴근 길에 읽고 있는 담덕을 읽다, 현실로 돌아와 멍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오늘처럼 눈썹도 거의 없이 구루뿌를 한 무서운 처자가 앞에서 어른거리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텔레비전 안 보고 산지 10년도 넘고, 세상의 변화를 내가 움직이는 곳을 중심으로 보며 소견머리가 짧고 좁아진 것도 같다. 불현듯 세상이 익숙한 듯 많이 변화하는 중이고, 사람들의 결핍이 증폭되는 세상 같다. 오늘처럼 환율이 미친 듯이 상승하고, 얼마 안 되는 주식이 폭포수 포크볼처럼 내려오면 짜증이 겹치기도 한다. 그러다 큰 금액의 확정적인 프로젝트 견적서를 내고, 고객하고 프로젝트 진행이 순항하면 미친년 널뛰듯 기분이 오르기도 한다. 가끔 이런 내가 한심해 보이고, 세상의 변화를 보는 안목이 형편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하고 있는 일이 여러 가지 불확실한 여건에서 그럭저럭 잘 굴러가지만 세상이 대체 어찌 굴러가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보는 미국은 내가 보던 미국이라고 하기엔 맛이 가고 있고, 중국도 내가 보던 못살던 나라가 아니라 이젠 뭔가 도전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럽은 90년대 가장 성대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뭔가 고요하고 힘이 없다. 가끔 세상이 전체적으로 늙어버린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하긴 80이다 된 노인네들이 대통령 하겠다는 것이나, 지지하는 노인양반들이 일 년에 30 만씩 사라진다는 소리나 그게 그 소리지 뭐...
김진명의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은 고사하고 7권에 멈춰 있다. 대신 읽게 된 엄광용의 담덕은 자꾸 기다려지게 된다. 김형수의 칭기즈칸에 대한 소설만큼 엄광용의 담덕이 내겐 재미있다. 각 편마다 그려진 강역도와 상당히 근거 있는 구조, 실제와 같은지 모르지만 지역에 대한 사실적 묘사, 역사적 사실이란 내러티브의 배경, 그 안에 녹여놓은 이야기보따리가 그렇다.
8권을 읽으며 작가의 관점이 담덕을 통해 그려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행위자의 행동은 수많은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이 책을 보며 부국강병이란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부국이 된 후에 강병을 키운다고 해석해석 했다. 이런 주제로 한반도에서 대진국, 서역으로 교역로를 개척해 나가는 담덕의 전략과 원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와 현실의 시대를 한 번 비교하게 된다. 과거를 반추해 현실에서 더 튼튼한 기틀을 마련해야 밝은 미래가 다가온다. 문명의 변화, 시대의 흐름, 시대의 요구사항을 두루 잘 읽어야 한다. 담덕은 부국강병이란 전략, 부국을 위한 혁신 전략을 실행한다고 생각한다. 때론 강수로 때론 협력과 신뢰를 위한 베풂도 있다. 그런 기반에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정복이 아닌 아우름.. 어쩌면 문명의 흡수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현실로 돌아오며 머리가 딱딱 아프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뭔지 의문스러운 현실, 부국을 위한 정책은 고사하고 남의 나라에 굽신거리고 조공 나가는 듯한 모습, 매일 문제를 야기하고 소란이 발생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모습이 개탄스러운 시대다. 농담으로 재벌이 데모할 때란 생각이 드는 시절 같아 참 아이러니 하다. 책 속의 리더 담덕이 그리는 비전과 세상의 안목이 현실과 교차하며 더 아쉬운 대목이다. 역사의 해석 이전에 담덕이 정말 그리한 사유와 실행의 관점을 갖고 있었는지, 작가의 현명하고 뛰어한 안목이 역사와 현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다 현실의 개탄스러운 상황을 만드는 현실이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욕지거리가 나오는 건 막연하지 않고 아주 구체적이란 소리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커피와 책을 즐기다 달봉이 만나서 대충 수영하고 피곤함을 벗 삼아 일찍 자는 게 상책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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