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바쁨
지난주 지인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곧 대만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하셨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안부 인사를 하고 있다. 어제 콘퍼런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부친상이라고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가기 전부터 걱정을 하셨는데, 아침 일찍부터 들렀다. 벌써 알게 된 지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손님들이 오셔서 차리를 피하고 돌아왔다.
이런 일이지만 오랜만에 학교 근처에 가니 좋긴 하다. 이젠 많이 변해버리고 길의 흔적들이 그때 거기가 여기임을 알려준다. 그래도 아직도 남아 있는 식당을 보니 한 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시험인가 도저히 길을 헤치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메일을 보니 order가 왔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가 하면 주말에도 베이비들이 소란스럽다. 콘퍼런스 결과 준비를 한다고 부산을 떨다가 갑자기 자기들 자료를 왜 나한테 달라고 하는 건지? 원래 남의 집 애들은 건강하게 부쩍부쩍 크고 우리 집 애들은 손이 많이 가는 일만 많다.
이번엔 또 다른 전화가 온다. 업무적인 부분은 별 일이 아닌데, 걱정 많은 우리 형님은 또 이런저런 걱정이 많다. 나이 들면서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 희망회로 불씨가 약해지나 걱정을 한 움큼씩 삼키는 듯하다.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나 생각해 봐야겠다.
지나가다 보이는 중고서점에 들렀다. 최진석 교수의 책을 하나 사고, 2만 원 채우면 할인을 해준다고 한다. 원래 이런 거랑 안 친한 운빨인데 김영수의 사기 책을 하나 더 골라서 돌렸다. 분명 3천 할인에 갈듯했는데, 주인장이 새운 거 같은 의심이.. 그래도 이런 불경기에 천 원이라도 할인해 주니 이게 어디냐.
이럴 땐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친정 다녀오시는 마나님의 귀환시간을 확인하고, 머리도 깎고, 목욕탕에 갔다. 세신을 해주시는 어르신이 자세를 딱 잡고 안경을 쓰신다. 벌거벗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고맙다는 생각과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는 스스로 감겠다고 하니 아니라며 꼼꼼하게 감겨주신다.
개운하게 나와서 좋아하는 밀크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고 집으로 향했다. 어찌나 꽝꽝 얼려놨는지 먹다가 이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우유의 부드럽지만 밀도 높은 씹는 맛이 아니라 뚝뚝 부러트려 먹었는데 누가 본다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한다.
후배 녀석이 카톡이 왔다. '삼각 고인의 명복을 비옵니다"... 이게 뭔 소리야? 형님한테 다녀오니 왜 내 명복을 비냐고 잔소리를 했다. 요즘은 보낸 사람한테도 한다면 꼰대가 아니냐고 대든다. "그려 거울보고 네 것도 많이 빌어라! 안 놀아줄 거다"라고 했다. 하긴 너도 이런 소리 듣기 싫은 나이가 돼 가는구나. 손 많이 가는 녀석.
집에 와서 마나님이 주는 밥 먹고 전화기를 보니 또 콘퍼런스를 하나는 사람이 나타났다. 옛날 사람들은 만나자가 일이고, 요즘 사람들은 네트워크 원격미팅이 재미있나?
안전한 집에 돌아왔으니 이젠 건조하고 딱딱해서 읽다 보면 도 닦는 기분이 드는 '윌든'이나 봐야겠다. 이 번에도 안 읽히면 딱지를 접어야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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