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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왜 그래? 답답하게

다양한 일상

by khori

지난주 부산에 다녀왔다. 빨간 직인이 들어간 하삼동이란 이름이 무슨 의미일까? 낙관과 같은 이름과 벽에 그려진 캘리그라프가 좋아서 무작정 커피를 한 잔 마셔보기로 했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만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업무를 하나 만나는 일들은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며 일 속에서 업체와 사람들을 경험하면 문득 두 가지 생각이 앞선다. 한 가지는 나도 예전에 저랬나? 다른 한 가지는 앞으론 어떻게 변해갈까? 사실 걱정이 앞선다. 쓸데없이. 나이가 드는 건 확실한데 그 속도가 빨라진 듯.


유럽 초일류 기업과 업무를 하며 시험견본(prototype)을 만들기로 했다. 구매, 기구, 회로, 관련 부품 담당자, 프로젝트 리더가 한 자리에 모여서 스크럽을 한 번에 돌린다. 각 분야에 대해서 각각 책임감 있게 정리한다. 의사결정을 하는데 2주도 안 걸린 것 같다. 요구사항은 높고, 일부는 오차범위 요구사항을 맞추기 어려운데 최종적으로는 자신들이 부족한 오차관리는 감당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일부 가공처리는 자기들 장비가 더 좋으니 자신들이 하겠다고 한다. 잘못된 지적질을 잘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런 경험은 참 행운이다. 살면서 몇 번 보기 힘든 경험이다. 올해 가장 경탄할 일이 아닌가 한다.


미국 초일류 기업 관련 프로젝트는 가관이다. 원청인 미국 초일류 기업은 높은 요구사항을 보면 유럽 초일류기업과 막상막하다. 국내 기업들이 이런 수준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취급하는 품목은 하나의 핵심부품이고, 중간 업체가 하나 더 있다. 그런데 업무진행을 보면 매일 난리다. 조용하면 불안하다. 오늘은 5분마다 전화를 한다. 사귀자는 건가? 매일 발생하는 변동사항이 너무 많다. 그만큼 확인 검증 일이 늘어난다. 게다가 중간에 사람이 바뀌고, 이력을 다시 확인하느라 엄청난 시간을 소진한다. 본인들도 그게 걱정인지 대신 정리 좀 해주면 안 되냐고 묻기도 한다. 어이가 없다. 프로젝트 리더가 각 부분별 조율과 의사결정이 잘 되어야 하는데 제각각이다. 변경 지시를 쉬지 않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해. 내 잦은 변경에 걱정을 하긴 했었지. 시험생산(pilot) 하기 전에 시견본(prototype)을 보고 점검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정 급하다고 시험생산으로 돌격하더니 크기를 변경해야 할 것 같다고 긴급회의를 걸었다가 직전에 취소했다가 난리도 아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중요하고 바쁠수록 기본 프로세스를 따르고, 정리정돈을 하며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쓰나미가 지나가면 일단 조용한데 무슨 메뚜기떼가 지난 간 것처럼 요란하다. 아직 안 끝났다는 게 크닐이다. 어우.


해외 프로젝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긴 평온한데 불안하다. 문의가 접수되었는데, 본인도 뭘 물어보는 것인지? 무엇을 찾는 것인지 내가 봐도 의문스럽다. 질문은 질문인데.. 예를 들어 내가 전화기 액정을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자꾸 전화기 카메라를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보는 격이다. 기능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화면을 보여주지만 카메라 만드는 것과 액정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 뜬금없이 물어보는 질문을 보며, 검색만 해도 자료를 찾을 수가 있다. 대신 찾아줬더니, 그다음엔 점입가경으로 자꾸 카메라를 깊이 파고들며 물어본다. Chatgpt로 돌려서 알려줬다. 여긴 또 왜 이러는 걸까? 그다음엔 며칠 동안 계속 다른 문의가 온다. 우리가 공급하는 타 회사 정보를 계속 후벼 파고 있다. 비밀유지계약(NDA)을 떠나 상거래 도리 기준에서도 해 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환경에서 짜증은 의미도 없고, 그렇게 불만스럽지도 않다. 상대방에겐 친절하게 해줘야 할 것은 하면 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상대방이 일하는 환경을 상상해 보고, 그 환경에 영향을 받는 미래를 생생해 보면 답답한 생각이 든다. 고맙다고 몇 번 인사를 하니 혹이 붙은 느낌적 느낌이 온다. 아이고.


어제는 새로운 유럽 프로젝트 요청이 왔다. RFI, RFQ도 없고, 작년에 잠깐 논의한 걸 문의해서 내년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에 프로젝트 하나가 잘 완료되어 올해 사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항상 기대와 차이를 만든다. 본인들이 지금 사용하는 제품과 새로 검토하는 핵심부품을 보여주고 여기에 필요한 부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당연히 콘셉트가 정해져 있을 것이고, 회로, 기구등 디자인이 나왔다면 대략적인 정보가 있을 텐데.. '일단 대충 검토해봐 봐. 그 결과 보고 판단해 볼게"라고 회신이 왔다.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다가 '장난하나?' 그런 감탄사가 나온다. '애들이 이런 애들이 아닌데, 왜 이렇게 된 거지?' 하는 의문도 든다. 대충 만들면 대충 검토하고, 실제 일이 시작되면 문제점과 수정사항을 재조정하느라 재탕, 삼탕 재작업을 해야 한다. 요구사양, 크기, 필요사항은 최소한으로 문서 접수를 해야지 나중에 분명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니?'라며 시간 소진만 생긴다. 모르는 건 도장 찍는 게 아니듯, 불확실한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얼마만 한 게 필요한지 알 수가 없으니, 기본정보를 정중히 요청했다. 그냥 아주 크고 비싸게 디자인하라고 본사에 한 번 해볼까? ㅎㅎ


우리 본사는 글쎄다. 하루 종일 같은 질문을 6-7번 반복해서 '어디서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배워와 갖고 왔는지 모르겠만 별로다. 뭘 모르고, 뭘 아는지 분간이 안 가는데.. 질문하지 말고 뭘 모르는지가 알고 싶은 것인지, 무엇이 알고 싶은 것인지 좀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서 보내봐'라고 잔소리를 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당사자가 내용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진도는 나가야 하고 횡설수설을 하기 일쑤다. 그래도 하늘아래 같은 간판 아래 있으니 하나씩 찾아서 떠 먹여주는 수밖에 없다. 대환장이라도 뭐 할 수 없지. 그런 와중에 한 녀석은 항상 '저는 프로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혼내줄까? 명절도 다가오고, 명절 지나면 푸닥거리도 해야 하는데 참아야지.


살면서 자기 입으로 프로라고 떠드는 자들 중에 진정한 프로는 드물다. 많은 공통 분야의 타인이 프로라고 하는 사람이 프로일 확률이 훨씬 높다. 자기 회사도 아닌데 회사 이름 앞세우고, 자기 직책을 앞세우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회사 이름 팔고 강짜 부리가 혼나기 일쑤고, 직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나 00야'라며 자신보다 직책이 낮은 사람에게 볼썽사나운 꼴을 보인다. 한 직급 높은 사람만 와도 바로 깨갱 인 것들이. 예전 정말 괜찮은 이사님이 '000 대리' 그랬더니 눈알 부라리며 '저 과장입니다'라고 하는 상태 불량한 녀석이 대답을 했다. '아하. 그럼 과장처럼 일 좀 하게'라고 멋지게 먹이시던 모습이 생각나네.


그 보다 '내가 무엇을 수정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메일을 보낸 고객사 직원의 글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그 위에 선배나 상사, 리더는 뭘 하는 거지?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모르는 것을 알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귀책사유가 생긴다. 특히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책임과 관련된 분야라면 어디라도 그렇다. 그래서 자리를 차지하고 무지하면 죄가 되기도 한다. 하여튼 저 메일에 들어있는 많은 사람들은 뭐 하는 걸까? 그게 더 어이없는 일이다. 직무적인 협조와 처리를 떠나 최소한의 배려가 없다면 한 울타리에 있다고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참 답답한 일이다. 예전에 고객사에 불필요한 제품을 발주했다는 내용으로 보낸다는 걸 'you have bought useless products'라고 보내서 고객은 뚜껑 열려서 과장한데 전화 오고, 왕뚜껑 열린 과장은 담당 불러서 취조를 하고 다시 고객 열린 뚜껑 닫느라 용을 쓰고 영문학도 담당은 맛이 가고.. 하긴 맛이 갔으니 저렇게 보냈겠지만... 요즘은 옆에서 뒤지든 말든 안 보는 건가? 명절 코앞에 참 착잡하고 답답하네.


그래도 명절이 온다. 긴긴 한 주 잘 쉬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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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ori #천상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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