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쁘게 변했는데 조금 섭섭하네
"아니 고등학교 때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나이 먹고 참나. 다녀와요"라고 말하던 주인님 말이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이런저런 나만의 이유로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무슨 자격증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데, 독서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10대는 사춘기고, 40대는 팔춘기냐는 농담을 하던 때에 역풍 노도의 시기도 아니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읽었다. 돌아보면 살면서 몇 안 되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눈도 아프고, 읽어도 몇 페이지만 넘어가도 뭘 읽었는지 가물가물 하다.
일 년 정도 지났을까? 동네 체육관에서 수영을 하다 출장이 잦아 신청을 안 하다 보니 계속 안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동네 도서관에 간지 정말 오래된 것 같다. 아침에 도서관에 간다고 하니 그러려니 한다. 마지막 갔을 때가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고 했었는데.
입구 초입에 있던 경비실 대신에 작은 정원이 생기고, 창문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다. 환하고 산뜻해지고, 많은 키오스크가 생겼다. 무인반납, 스마트 도서관도 늘어난 것 같다. 안내를 보니 층의 배치도 많이 바뀌어서 그런지 최신식의 깔끔한 실내가 좋아 보이고 또 어색하다.
그런데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든다. 우리 집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쯤이었을까? 퇴근길에 문득 '동네 공터가 사라지고, 골목길에 아이들이 사라진 만큼 세상이 좀 각박해진 듯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려서 유치원 가는 아이들도 많지 않았던 시대니까. 지금도 그 생각은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매주 도서관에 다닐 때 주말이면 이젤 위에 A3에 인쇄한 동화책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있으면 아이들도 보게 되고,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야 할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와 아이들이 책을 보던 어린이 도서관이 사라졌다. 당연히 이젤 위의 그림책 구경도 사라진 듯하다. 그 자리에 카페테리아라고 쓰인 테이블에 지정석을 기다리는 어른들이 있고, 젊은 친구는 노트북을 열고 열심히 주식 차트를 보고 있다. 안쪽의 카페테리아에는 '라면금지'라는 팻말과 자판기만 덩그러니 있다. 그곳에 간단하게 자판기에서 산 음료를 마실 공간도 있다.
아이들의 숫자도 줄어들지만 아이들 공간이 없어진 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서 입구에 AI로 만든 동화 같은 그림들이 있었나? 사실 아주 섭섭하다. 스스로 나이 들거나 죽거나 하는 일에 겁이 나거나 싫거나 그런 생각은 없다. 나이가 들어가며 섭섭한 것은 어려서 쪼그만 아이들 추억이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이젠 다 커서 말도 안 듣고, 담배도 피우고 에휴. 애들이 빨리 크는 게 좀 섭섭한 걸까? 사실 중학생만 돼도 말은 참 안 듣죠. 나도 그랬고. 추가로 섭섭한 것은 이젠 매점도 없어지고, 매점에서 백반이나 식사를 팔던 사람들도 없다는 것이다.
새롭게 장식된 도서 열람실 곳곳에 캘리그래프의 한 구절들이 이쁘게 장식되어 있다. 섭섭함을 조금 달래주는 선물인가? 매번 입구 앞쪽에 있던 신간 도서 코너도 창문 쪽으로 옮겨져 있다. 책을 온라인으로 사게 되니 오프라인 서점을 자주 가기 어렵다. 대신 길을 가다 곳곳에 생기는 중고서점은 오며 가며 들러보게 된다. 직원이 가르쳐준 대로 입고된 신간 도서 코너에서 분야를 떠나 요즘 세상의 주제가 뭔지 책 제목으로 살펴보게 된다.
도서 검색을 해보려고 하니 마우스가 없다. TAP키로 움직이다 '이거 엄청 불편하게'라는 생각과 '설마 터치가 된다고?'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된다. 입구엔 마우스가 있었는데 도서 검색 모니터는 터치 스크린이다. 역시 아이들의 키높이에는 안 맞는다. 완전 어른용이다. 관심이 있는 도서를 찾아 출력을 하고 찾으러 나섰다.
찾으려는 책은 안 보이고, 도서목록 번호는 이 근처인데 안 보인다. 300번 대면 경영, 경제 관련 서적 코너인데 PDCA가 보여서 사진을 한 장 찍어봤다. 이것을 잘하면 기계처럼 동작할 수 있다. 기계는 잘하고, 사람은 이걸 계속하면 맛이 간다. 기계를 만드는 이유가 사실 사람이 하기 싫고, 귀찮은 것을 대신 부려먹으려는 목적이니 그렇지만.
가방에 항상 책 한 권은 있다. 읽고 있는 올재의 '손자병법'을 다 읽으려던 참이었는데. 도서관에서 '테슬라 쇼크', '중국 전기차가 온다'라는 책을 찾아서 목차 중심으로 봤다. 이 달인가 스마트카 어쩌고 하는 책도 나오면 사 볼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도 하지만 우선 제목, 목차의 구조, 서문정도는 읽어 본다. 여기서 맘에 들면 전화기를 꺼내서 책을 카트에 담기도 하고, 빌리기도 한다. 사실 한 번 읽으면 같은 책을 두 번 읽지 않기에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마나님은 책하고 레고 좀 치우라고 기분이 안 좋으면 잔소리를 한다. 방구석에 있는 책들은 내 기준에서 '아이들이 나중에라도 한 번 읽었으면'하는 기준이다. 처음엔 새책처럼 읽다가 요즘은 낙서를 많이 한다. 혹시 아이들이 읽더라도 내가 어떤 생각인지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다극세계가 온다'는 받은 책이다. 예전엔 책을 많이 받기도 하고, 서평단도 신청하고 그랬는데 최근에는 거의 없다. 서평단이 좋은 점이라면 강제독서를 하기 좋다는 점이고, 나같이 내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는 사람은 어쩌면 마케팅 관점에서 좋을 때도, 블랙리스트처럼 안 좋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책을 보내줘서 참 감사하다.
라면금지에 사라진 매점을 탓해 뭐 해. 도서관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도시락이 다양하다. 이젠 일본 편의점과 비교해도 종류가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거 차가운데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돼요?"라고 물어봤더니 젊은 처자가 친절하게 비닐은 잘 뜯고 돌리라고 한다. 라면금지라고 해서 컵 라면도 하나 샀다. 요즘 식당들 가격을 생각하면 괜찮다. 그럼에도 전에 팔던 백반은 착한 가격을 떠나 그립기도 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도시락에 어묵, 버섯, 김치 조금, 돼지 불고기, 햄버거스테이크(?), 닭고기, 소세시등 가공육이라도 육류가 너무 많다. 이거 애들용인가? 너무 많이 빨리 먹은 것 같다.
도시락 먹고 옆에 커피숖에 갔더니 일명 MZ라 부를만한 아이들이 많이 앉아있다. 도서관보다 젊은 애들이 더 많다. 밥 먹고 다시 도서관에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전엔 아주 큰 6인용 테이블이었는데 카페처럼 기다란 책상이 맘에 든다. 의자도 좋아졌고. 문제라면 슬슬 졸린다는 점이다. 전화기에 게임이 없는데 하나 받아서 정신없이 오락을 30분 정도 했나 보다.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고,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자리를 비워주기로 했다. 이렇게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를 왕복으로 걸으면 나들이지. 졸려서 일찍 왔더니 나이 먹어서 그렇다고 주인님이 놀린다. 전과 다르다 점이라면 '나도 그렇다'정도.
오늘은 손자병법을 마저 좀 보고, 약속하고 받은 책은 다음 주까지 좀 보고... 읽고 싶은 책은 몇 권 또 사서 보면서 연말을 보내야겠다. 계약서는 모르겠고!! 연말에 자꾸 RFQ를 보내대는 고객님들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부산에도 한 번 다녀와야 하고 은근히 바쁘네. 아이폰 OS업데이트 되서 또 적응하려면 복잡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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