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잔칫집에 다녀오다
결혼식 청첩장을 받고도 일이 바빠서 대답도 못했었다. 어제 지인 형님이 같이 가자고 전화가 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나 배은망덕한 무리들은 이럴 땐 이런저런 핑계로 어렵다고 한다니 참 어이가 없다. 오늘도 가보니 예의염치 아는 사람들은 역시나 빠지지 않고 보여있다. 혼주는 연락도 제대로 못했는데 와줘서 고맙다고 한다. 지인 형님이 나나 조금 어려운 여건에 계신 분들을 볼 땐 되도록 참석하고 더 축하해 주려고 한다. 라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다들 행복한 삶을 꾸려가길 기대한다.
요즘 결혼식을 보면 아쉬운 점이 뷔페집 행사 같은 느낌이 있다. 정시에 시작하고, 화촉, 신랑입장, 신부입장, 하객인사, 주례도 드물고 행진하면 15분도 안 걸린다. 다들 기쁜 날이지만 어떤 추억이 남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조금 아쉽다. 하객들에게도 참석 여부와 달리 어떤 기억이 남을까? 뭐 남기면 되지.
은행에 가야 한다는 형님에게 "내 그럴 줄 알고 찾아왔지"라고 했더니 좋아한다. 얼른 이체하시라고 했다. 이체가 된 줄 알고 "감사합니다"라고 하자마자 "아직 비번 안 눌렀다"라고 하신다. 아깝... 옛날 기억이 떠올라서 "자 그럼 두 손을 곱게 모으시고"라고 했더니 형님도 기억이 나셨는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한 장, 두장, 세장, 네 장" 큰 소리로 지폐를 세며 한 장씩 드렸다. 전에 출장 가서 급하게 천 달러를 빌려드렸는데, 사무실에 오셔서 사람도 많은데 나한테 똑같은 일을 먼저 했었지. "내가 용돈 많이 줬다. 인사 똑바로 하고"라는 말씀이 아주 새록새록 난다. 축의금을 내고 결국 식권을 내건 안 받아 오셨다. 분명 두 장을 줬는데! 굶기겠다는 의혹이 모락모락.
신랑 측 자리로 향하며 행진을 위한 런웨이 계단을 지나가야 한다. 형님이 한 계단에 발을 디디려고 할 때 말렸다. "지금 그럴 나이가 아니잖아요? 또 해보려고?"라고 했더니 "그게 아니고!!"라고 레이저를 쏘시길래 '형수님한테 이른다?'라고 할 뻔. ㅎㅎ 혼잣말로 "들뜬 마음에 올라간 뒤 빠꾸도 어렵고 온갖 다양한 체험 생활의 시작이지"라고 했더니 귀도 밝은 형님이 웃는다. 저 두 계단 제정신이 아닐 때 올라가는 거지. 뒷일은 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기쁨과 행복, 현타 사이에는 제정신이 아닐 때로부터 제정신의 자각이 올 때까지 어떻게 지혜롭고 슬기롭게 조율하는가가 필요하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무슨 pop-up store행사나 라스베이거스 결혼식처럼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며 끝난다. 신랑 신부가 행진하며 지나갈 때 마치 짠 것처럼 "좋을 때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부럽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든다. 나이가 드는 건 당연하고, 호우시절처럼 때에 맞춰 살아갈 뿐이니까. 그 좋은 때를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시간을 축적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안 보이던 사람들도 식당에 가면 죄다 만나게 되어 있다. 인사도 하고, 옛날 기억을 더듬는 질문들도 받는다. 좋은 일이야 같이 더듬어 보고, 그저 그런 이야기를 하시면 그냥 요즘 일 열심히들 하라고 했다. 최근 부고장이 쉬지 않고 날아들더니 간만에 결혼식 소식이라 좋은데 갈수록 무덤덤하다. 좀 더 지나면 결혼식 소식이 더 늘고, 돌잔치도 다시 할 거고 그러다 보면 또 상갓집 소식이 돌아가는 패턴이 되겠지. 다 때가 되면 때에 맞춰 돌아가는 거지 뭐. 며칠 있다가 만날 녀석도 보고,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고.
돌아오며 차 안에서 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시는 일로 잦은 출장을 다니시는데 나는 항상 관광여행이라고 우긴다. 1월 관광여행 갈 땐 뭘 좀 부탁을 했다. 좋은 걸 사다 주겠다고 해서 그냥 내가 쓸 거 아니니 그러지 말라고 했다. 작년엔 두바이 1월에 간다고 해서 청바지를 사다 달랬더니 바쁘다고 아무거나 던져주셨는데. 연말 가기 전에 동네에서 식사라고 한 번 대접해야겠다.
다음 주는 월요일부터 협회 행사인데 일 년 내내 협회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골프대회 한다고 요란하기나 하고. 송년회 한다고 어찌나 메일을 보내대는지. 대체 하는 일이 뭔지 정체가 궁금하다. 송년회 가서 밥이나 축내고 내년엔 탈퇴할 계획이다. 협회비를 공부 열심히 하는 사무실 막둥이 뭘 사주는 게 낫지. 협력업체 대표와는 조촐한 식사 약속도 있고, 거래 예정처(?) 담당보고 소주도 한 잔 하자고 해서 약속도 잡아야 한다. 덕분에 읍내에 출몰해 볼 듯. 훼장님도 송년회를 하자고 하고.. 사업주고 시집보내는 녀석 때문에 해당 업체와도 한 번 미팅을 해야 하고. 12월은 이래저래 피곤하도다. 집안일에 힘써야 한다는 소리다. 한 겨울에 소박맞으면 홈리스에 북풍한설을 맞서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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