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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Mar 02. 2018

건강검진

쫄리긴 매한가지

 나라님이 등급판정을 명하니 한 번 해보는 수밖에. 요즘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피곤하다. 의사와의 조우는 없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고, 피하는 일이 제일 바보 같은 짓이다. 어쨌든 쫄리는 기분이 뭘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번 등급판정 때 조직검사를 동의했지 피나는 걸 동의한 건 아니다. 의사랑 내시경 검사 사진을 보다가, "어~ 피나잖아요" 했다가 된통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7시부터 병원 도착 8시 반까지 장장 13시간 30분의 간헐적 금식을 하니 웬걸 몸이 훨씬 가볍다. 움직이는 일이 적은 대신 때가 되면 먹어야 한다는 소신이 불러온 참사라고나 할까? 이를 어쩔 거냐는 마나님의 타박에도 "급격히 살이 빠지는 건 큰 병이지. 조금씩 찌는 건 큰 병은 아니라는 말이지"라는 댓구를 했다가 "차~~암 긍정적으로 살아... 할 말이 없다"는 퉁을 먹으면서도 지켜온 살인데. 


 처음 수면 내시경을 해보니, 눈 비비고 일어나니 집에 가라는 소리에 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깨어 있었는데. 왠지 개운한 기분도 들었다. 텔레비전에 누가 이걸 상습적으로 맞는다는 소리가 조금 이해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시작부터 좀 다르다. 


 대개 문진표를 작성하고 마무리에 의사 선생이 잔소리를 한다. 운동하고, 담배 끊고, 술도 작작 먹고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특히 회사에 오시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은 그냥 마구 혼낸다. 우리 회사 지정 병원이 그럴 수도 있다. 나라님 지정 병원은 좀 달랐다. 특히 오늘은 내가 머리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근수 재고, 잘 보이나 검사하고, 소피 검사도 하고, 상세한 검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피를 4통이나 뽑았다. 중간에 키를 재는데 "신체 계측"이라는 말이 거슬린다. 계측이라니.... 뭔가 물건이 된듯하다. 이런 애매한 기분을 안고 내시경 전 관문인 8호 방에 갔다. 아주머니 의사 선생이 친절하게 맞아 주신다. 


 "이게 딱 한 번만 맞으면 되는 거예요.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는 평생 가는 좋은 거예요! 18세부터 맞아도 되고요"

 "얼만데요?"

 "13만 원이에요. 한 번만 맞으면 된다니까? 감기만 안 걸렸으면 돼요"

 "감기 기운 있어요!"


 이때 퍼뜩 떠오른 생각은 "약장수인가?"라는 말이다. 잘 생각해 보니 약장사가 맞다. 병원에서 의사가 처방전을 줘야 약을 사니까 말이다. 그런데 딱 한 번만 맞으면 된다는 것에도 의문이 든다. 무슨 약이 평생 간다는 말인가? 간염백신도 얘가 사라지면 다시 맞으라고 하던데. 뒤집어보면 한 번만 맞아보니 소비자.. 아! 환자는 알 수가 없지 않나.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친절하게 다가온다는 말이 촥촥 몸을 감싼다. 아끼는 사람은 이런 상황에 잔소리를 하기 나름이니까. 어째던 삐뚤어지기 시작한 듯하다.


 내시경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흉부검사가 남았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재미있다. 


 "아버님 배를 여기에 대시고요?"


 가슴을 대는 것 아닌가? 배가 엑스레이 찍는 대에 달리가 없는데.. 아니면 가슴과 배의 경계가 애매한가. 멍 때리면 앉아 있는 것보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때가 있다. 그때 다시 웃움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허리뼈 다친 곳은 없으시죠?" 


 허리뼈라... 딱히 틀린 말은 아니데 어감이 상당히 멀고 웃음이 난다. 척추, 디스크 이런 게 익숙한데... 아니다 다를까.


 "디스크 수술을 했어요"

 "그럼 철심 박으신 건 아니지요?"

 "아니요"


 내 관점이 좀 묘했던 것 같다. '철심을 박다' 이런 표현은 매우 어색하다. 목소리로는 두 분 다 여성분들이신데.. 이런 묘한 소리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타시더니 1층이 어디냐고 자꾸 물어보신다. 현관 로비를 확인하고 눌러드렸는데도 자꾸 물어보신다. 얘는 여러 층을 싸댕기는 애인데 어쩌라는 건지.. 하여튼 일층에서 황급히 내리시고, 나는 내시경 검진센터에 도착했다. 일층부터 웬 할아버지라고는 뭐하고 그즈음되시는 분이 고개를 삐딱하게 하시고 계속 나를 쫒아오신다. 뒤로 잠깐 물러서니 앞서 가신다. 차트를 안 들은 것을 보니 검사 대상자는 아니다. 그리고 다시 대기표를 뽑는 나를 제치고 앞에 서셨다. 환자분을 찾더니 검사실로 막 먼저 들어가신다. 


 그 앞에서는 아주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계속 앉아서 젊은 간호사 처자에게 이것저것을 계속 물어본다. 이거 검사를 어떻게 받냐, 괜찮냐, 안 아프냐, 받아봤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젊은 간호사가 어르신에게 또박또박 대답을 하며 자기 일을 본다. 대단하다. 대답하는 자도 대단하지만, 끊임없이 걱정이 태산 같은 할아버지의 다양한 질문공세도 대단하다.


 내 순서가 돼서 들어가니 간호사가 쩍벌 자세로 앉아서 손은 뒷자리를 가리키며 "검정 의자에 앉으세요!"라고 말해서 의자를 한참 찾았다. 뒤는 소파요 검정 의자는 간호사 앞에 있다. 인지 감각 테스트인가? 하여튼 어렵다. 내 뒤 사람도 소파에 앉았다. 그다음 사람도 소파에 앉았다. 한 명도 음성이 우선이지 손동작을 따르지 않는다. 앉자마자 기계적인 똑같은 질문을 한다. 저런 건 녹음해서 용달차처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굴을 보면 간호사들은 아침인데도 지쳐 보인다. 사람은 어째던 손이 많이 가나보다.


 침이 안 나오는 약인가를 주고, 손등에 주사를 꽂는다. 수면 내시경 할 때 가장 관리하기 쉬운 곳에 주사를 놓는단다. "어우~~ 엄청 아파요!!!?"했더니, "거기가 제일 아파요"라고 대답한다. "헐~~" 언질을 줘야 할 거 아녀.. 아직도 손등에 연필에 찔린 것처럼 자국이 선명하다. 나쁘다.


 마지막 관문인 내시경 검사대 앞에 터를 잡았다. 입에 재갈을 채우고, 뭔가 태연하게 만지작 거리는 병원 사람들을 보면 내가 무슨 고기 같다. 이젠 아까 높은 주사 자리에 마취제를 놓으려고 한다. 젊은 의사선생 왈 "아파요, 묵직할 거예요"한다. 젠장 더 아프다. 처음엔 했을 땐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주 기분이 나쁘다. 차가운 젤리 같은 것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그런데 아프다. 캐비닛에서 의사선생이 여러 개 걸린 호스 중에 하나를 턱 잡는다. 


 눈을 뜨니 찌부등하다. 그 차가운 느낌과 살아 있다는 느낌은 다르다. 왠지 기분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기분과 생각이 되었다. 난간을 잡고 앉으려고 하니 새파란 남자 간호사 녀석이 "누~워 있어요!!"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놀랬잖아 이 녀석아!'라는 말을 삼키며 조용히 누웠다. 재수읎는 자슥..소리는 왜 질러 쪽팔리게...


 그러더니 다가와서 뭐라고 옹알옹알 떠들어 댄다. 거시기 조직검사를 동의했으니까 했다는 것 같다. 세 개나 했다. '뭐라고 피를 세 군데나 봤다고!! 이 자식을!!'이란 생각이 들 때 이 훌륭한 젊은 총각 간호사 왈 "일어나서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이 자슥은 내가 미운가 보다. 얼나나 누워를 연습시키는 걸 보니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시면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실 거예요~"


 어질어질한 게 마취 때문인지 아까 뽑은 아까운 피 4통 때문이지 몽롱하다. 의사 선생님이 사진을 보여주면 용종은 없고요 좀 부었어요. 부운데를 세 군데 떼어서 조직검사를 했고요, 나이가 있으시니 위벽이 얇아져서 혈관이 조금 보일 수도 있어요. 이건 쉽게 말해서 '기계가 삭으면 이 정도는 있을 수도 있는 일 아니겠어요~'라고 나는 해석이 된다. '자넨 혈관이 안 보여서 좋겠소'라는 멘트를 꾸욱 참고 가려니 간호사 언니가 부른다.


 조직검사를 해서 처방전을 받아가란다. 아까 젊은 의사가 이야기했다. 조직 검사를 했으니 돈을 더 내란다. 아까 꼼꼼히 읽어 볼걸. 조직검사를 동의했지 내가 돈을 내겠다고는 동의한 기억이 없는데 쬐멘한 글씨들 중에 그런 게 있었나... 자세히 볼걸..


 쩨쩨하게 몇 천 원밖에 안 하더구먼. 다시 2층 원무과로 가라고 한다. 검진을 받으면 손님이자 환자인데 자꾸 이리가라 저리 가라 그런다. 별로 안 아픈 환자는 걸어 다니라는 말인 것이다. 서비스 정신을 외치고 싶지만 배가 고프다. 2층에 갔더니 원무과 표시판이 안 보인다. 접수처만 보여서 "원무과가 어디예요?"라고 했더니 직원이 한참 웃으며 눈을 똥끄랗게 뜨고 "여기요 여기"라고 손가락을 가리킨다. '잘났다 잘났어.. 돈 내고 얼른 갈꺼야!'라는 말도 참고, 위산과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다. 괜히 아침부터 갔더니 검진이 끝났는데 환자가 먹을만한 밥집은 열지도 않았다.


 심통이 배가되는 걸 보니 쫄리긴 했나 보다. 다음 주엔 등급판정을 한다던데.. 별일 없는데 피를 3군대나 냈다고만 해봐라.. 그리고 누가 나이들면 참을성이 좋아진다고 하거야. 그런건 절대 없다.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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