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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Jun 13. 2019

애절함을 넘어야 행복이 쌓인다

신파는 본성이다

오직 그대만 (★★★★+1/2)

 

 신파란 말은 가부키에 대비되는 말이다. 내게 신파는 너무나 당연한 구조속에서, 사람의 감성적 자극을 통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드라마라고 각인되어 있다. 너무나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드라마와 눈물을 강요하는 그 느낌이 불편하다. 액션, 스릴러, SF 장르를 선호하는 이유다.

 손이 많이 가는 시절에 접어들며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소지섭을 보면 멋지다. 역할이 다양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기에 맞는 역할을 잘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간략한 설명을 예상이 빗나가지는 않지만, 짧은 청나라행 비행기에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세상의 큰길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남자, 우연한 사고로 세상을 큰길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 속에 상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이 존재한다.

 우리는 남의 불행과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체험에 기반한 인식은 그만큼 강력하다. 시력을 잃어가는 여인이 갑자기 삶의 한 구석에 자리한 이유부터 재미있다. 주차장 아르바이트 할아버지와의 관계로 시작된 인연이, 역할 대체자인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역할에서 관계의 대체까지 넘어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또 구구절절하다. 이쁘게 이야기를 만들고 절실하다. “살아야 하니까”라는 외침이 그래서 참 인상적이다.

 여인과 남자는 각자의 삶에서 서로의 삶에 서서히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정이 든다. 그 정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고, 남자도 세상의 큰길로 다시 돌아오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의 풍랑은 그런 가련한 연인에게 시련을 준다. 신파에서 좌절과 고난은 전형적인 복선이다. 심청이처럼 연인의 눈을 띄우기 위해 사지로 들어선다. 눈을 뜬 여인은 잃어버린 반을 지키며 수절하는 춘향이처럼 꿋꿋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다시 인생을 돌아 돌아 다시 만난다.

 손에 당신이라 생각하고 꽉 쥔 돌멩이가 타인의 존재이자 의지를 함께 담고 있다. 이런 질풍노도의 시절에 있던 감성이 가끔 부자연스럽다. 그저 그런 이야기인데 끊이지 않고 리바이벌되는 이유가 있다. 역풍 노도의 시기에 이런 영화사 주는 감성이 나쁘지 않다. 늙나 봐 ㅎㅎ

#오직그대만 #소지섭 #한효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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