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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Jun 22. 2019

점, 선, 면, 공간, 이야기, 삶

마음의 시간도 다르게 흐른다

 출장 중 읽어 보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 보겠노라고 답신했다.


 김정운 교수의 책, 여섯 권을 본 것 같다. 이번에 본 책이 가장 편안하게 읽힌다. 그만의 스타일과 유머가 남아 있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아동 심리학과 여성 심리학은 존재하고, 남성 심리학이 없는 이유가 아이와 남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은 한 편으로 옳다. 그러나 큰 아이들은 기분이 나쁘다. 그의 책을 보면서 공감이 가는 것은 유려한 독일어나 심리학에 대한 지식은 아니다. 큰 남자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감정, 생각, 호기심을 말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한 십여 년 앞선 노인 양반(나이 들면 잘 삐진다) 형님들의 생활을 읽는 것이다. 똑같다고 할 수 없지만, 애들이 하는 일이란 공통점이 있기 마련이다.


 일본에 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미술을 하는지 몰랐다. 그의 도전을 보면 가수 조용남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중년의 남자가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그 나이까지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성공하지는 것은 확언할 수 없고, 어떻게 되면 망하는지는 빠르게 알아간다. 그런 인생의 딥러닝이 사람들을 보수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어 간다. 생존과 안전에 대한 본능이다. 이를 탈피하는 용기, 신념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막상 무엇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면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존재한다. 그의 생각과 글을 통해서 여수 여자만, 미역 창고를 품은 섬, 뱃길은 그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세심하게 느끼고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세세한 것들을 들여다보면 생각을 담고,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애정을 품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진, 그림, 글 속에서 베어나는 가족, 친구, 사소한 신변잡기, 주변 풍경과 사물에 대한 기록이 그렇게 남지 않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도 흑산도에 유배를 갖기 때문에 물고기도 관찰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관직을 떡 하니 차지하고 살았다면 다산의 저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꿈처럼 김정운 화가가 여수 여자만에서 인생의 역작을 보여줄 것인가는 아직 진행형이다. 내게 이런 재미있는 사람과 동시대를 살며 책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얼마 전까지 책은 깨끗하고 소중하게 읽고 관리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책이 나를 위한 것이지, 내가 책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 나면 책에다 적는다. 기억력이 예전만 못한 이유도 있다. 


 시간은 기울어져 흐른다. 시선은 마음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점은 사람의 시야를 응집시킨다. 그리고 시선은 점과 점을 맥락이란 끈으로 이어간다. 이어진 선이 면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남고, 그 면이 이어져 공간이 된다. 공간은 사람의 마음, 이야기, 주제를 품고 있다. 자아성찰, 메타인지, 추상이란 말로 탈맥락화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세계에서 탈맥락화는 일종의 단절,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은 정신세계에서 가능하고, 3차원적 세상에서는 필요할 때만 꺼내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흘러가는 시간의 의식을 벗어나기도 힘들다. 그런데 책을 읽다 마음의 시간은 물리적 시간과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제목과 같은 이야기는 책에서 그려지지 않지만 그런 생각은 또 제목 때문일지 모르겠다.


 놀다와 공간이란 슈필 라움을 나는 놀이터쯤으로 이해한다. 큰 남자아이들에게 놀이터란 아이들이 그리던 꿈을 품고 있는 그런 공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나중에 집을 지으면 모듈라 하우스, 러시아처럼 높은 천장, 두툼한 벽을 통한 패시브 스타일, 모듈라의 효율과 작은 아치가 들어간 공간, 치장보다는 바닥은 나무, 벽은 벽 그대로의 심플한 느낌, 1층은 좌 레고 & 우책을 놓고 가운데 뻥 뚫린 공간에 넓은 책상을 놓고 싶은 것과 같다. 레고도 미래에 살 나의 집을 디자인하던 것을 멈춘 지 10년쯤 되어간다. 그렇다고 그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읍내와 달리 시골의 시간도 전혀 다르게 흐른다


 나는 동네 공터가 사라지고,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사라진만큼 세상이 삭막해졌다고 말한다. 그 사라진 공간이 큰 아이가 되어서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공간과 이야기, 내가 살아온 삶이 현재에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것을 만드느냐 마음속에 품고 사느냐는 내가 결정할 문제다. 하고 후회한 일과 하지 못해서 후회할 일에 대한 셔틀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참고 살기도 하고, 지르고 해 보는 것이 또 살아가는 당연한 과정이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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