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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Jul 21. 2019

기억, 현실, 망각의 혼돈

나도 그러하다

 책은 좀비라는 표현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업체의 부장님이 사무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지하철이 토해내는 가방 멘 사람들이 좀비같이 보일 때가 있다. 나도 그 무리에 동참해서 걸어가는 중이지"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낸 단절, 소외라는 말은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매트릭스 네오가 눈을 뜨는 장면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이해했다. 낯선 것을 보면 이성이 동작하듯, 갑자기 눈을 뜬 네오는 환각의 세상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그 현실에서 다시 환각의 세상을 오고 가며 노력하지만 네오도 결국 죽고 만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아도, 내가 삶을 마감하면 그것도 세상과의 실질적인 단절이다. 종교를 믿는 이유도 '다음 생엔!'이란 기대와 바램 아닌가?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신의 존재 없이 해석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종교는 나약한 인간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옛사람들은 지겹도록 말한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좀 더 아날로그적인 감성적 과거를 동경하며 왜곡하기도 한다. 동시에 현재를 살아내기도 세울 수 없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다양한 방법에 심취한다. 또 내일을 위해서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삶을 만들어 간다. 그런 작은 희망이 사람들이 종종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다.


 책을 읽는 내내 대단히 불편하다. 내용적으로 음습하고, 침울하고, 한번 시작된 문장은 3-6줄을 되어야 겨우 한 문장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내일의 희망에 대한 부분이 없다. 문화적 차이 때문일 수 있지만, 도통 공감되지 않는 비유와 맥락 없이 전개되는 말 잔치가 사람의 인내력을 시험한다. 내 문학적 소양의 부족인가?


 역병이 시작된 날의 참혹한 기억을 갖은 마크 스피츠.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 나는 지극히 평범할 수 있다면 현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디에도 평범한 사람은 드물다. 평범이란 특정한 분야로 한정할 때 유효할 가능성이 많다. 인간이 하는 다양한 분야로 넓히던,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구분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평균이란 현인을 제외하면 수준 이하와 수준 이상으로 나뉜다. 이렇게 보이는 것을 그대로 봐야 놀라지 않는다. 칸트의 말처럼 천재는 알아서 하고, 바보는 어쩔 수가 없고, 중간에 힘쓰자는 말에 훨씬 미래를 지향적이지만... 그러나 제1구역은 '감염되지 않는 자'와 '감염 된 자'로 구분한다. 정확하게는 '감염된 자'와 앞으로 '감염될 자'의 염세적 구분이 훨씬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수색대로 거리에 처박힌 감염된 자를 청소하지만 궁극적으로 생존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기억과 추억을 조금씩 교환한다. 의식과 기억을 갖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왕좌의 게임처럼 망각의 무리들은 생명을 부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의 말과 이야기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행동이 남아있다. 동시에 절박한 생존의 상황에서 현실과 과거를 자꾸 비교하게 된다. 망령들이 돌아다니기 전부터 세상은 벌써 역병에 돈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생각이 그렇다. 


 완벽하게 희망을 제거된 세상이라면 사람은 포기라는 결정을 한다. 이 책도 그렇다. 하지만 그때까지 살아있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추억,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해운대란 영화에서 고난을 뚫고 올라가 건물 정상에서 바라본 해일을 본 느낌 같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침울하고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운 맥락의 전개가 싫다.


 화가 나는 이유는 가까운 미래에 내가 바라는 것이 안될 확률이 높을 때다. 사람마다 그 작은 정도 차이를 인내의 수준으로 장벽을 만든다. 가식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러나 혹시나 했던 문제가 현재 내 앞에 기가 막힌 자세로 출현한다면 그 문제는 보이는 대로 다가서야 한다. 받아들이던가, 대책을 세우던가. 그래야 이런 염세적인 관점보다 세상의 가능성을 더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내가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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