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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Jul 31. 2019

그 화가의 영혼을 통해 걷는 법을 배우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아이들이 어려서 고흐 중기의 작품전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맛나게 먹은 스테이크의 기억이 더 날지도 모른다. 그때 도록이 비싸서 사지 못하고, 직접 그림을 봤다는 그 느낌과 기분만을 갖고 있다. 그러다 몇 년 전 독일 서점 앞에서 잘 팔리지 않는 고흐의 화집을 엄청난 가격에 할인해서 두 권 샀다. 엄청난 무게로 비행기를 탈 때 곤란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펼쳐보게 된다.



 예술가들의 생각과 시각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글과 말로 설명하는 분야라면 좀 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음악, 미술과 같은 분야에서 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하나의 추정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흐처럼 동생화 나눈 엄청난 량의 자기 기록(편지)은 그를 좀 더 이해하는 좋은 배경이 된다.

상화

 책을 읽는 초반부에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고흐의 생각을 알게 된다. 사실 생각이라기보다는 하소연에 가깝다. 자신이 열망하는 것으로 다가가기 위한 욕망과 동생에게 의탁하는 자신의 모습, 불편한 아버지와의 관계가 나타난다. 재미있는 것은 고흐가 그림을 그리고, 대상을 관찰하면서 생각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림을 이해하는 법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 눈에 보이는 데로 그려, 그 속에서 내게 느껴진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있다. 그러나 감자를 먹는 농부의 가족 그림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힘들에 감자를 키워낸 농부의 손이다. 그 손을 통해서 농부, 그 결과물을 가족이 함께 하는 모습을 더 진솔하게 표현하려고 한다. 조금 더 지나면 우리가 말과 글로 정의한 대상이 그림에서도 그러하길 바란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솟아나는 감정, 느낌을 얹는다.


 그의 생각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가는 길을 보면 얼마나 세상의 작은 진실을 세밀하고 바라보고, 분류한다. 마치 우리가 무엇을 조사해서 정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순간순간 빛에 따라서 변화하는 대상과 색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의 수리적 한계를 온몸으로 극복하려는 노력과 같다. 인상파 화가협회를 만들려는 노력은 요즘 클라우드 펀딩과 비슷하다고도 생각한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그 시대에 익숙하고, 하도록 교육받은 것을 넘어서야 한다. 쉽게 말해서 그것과 다른 방식과 사고를 선택해서 도전해야 하는 부담이 존재한다. 고흐는 그런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림에 대한 혼을 싣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길을 걷게 된 것 같다.


 테오와 고흐를 보면 형제라고 하지만 참 보기 어려운 관계다. 형을 하나의 잠재적 화가로만 바라보면 뒷바라지를 하거나, 형이기 때문에 의무적인 보살핌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헌신적인 모습이 고흐에게는 또 하나의 행복이며 빚이고 고통이다. 참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고흐가 세상이 신이 제정신이 아닐 때 만들어 놓은 상태라는 말에 공감과 웃음이 난다. 


 나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내가 가야 할 길, 그 길을 가기 위해서 감수해야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음의 소리를 듣고 나의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길을 그처럼 또박또박 걸어갈 수 있을까? 


 그 가 삶을 스스로 마감한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를 확실하게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삶을 살아가는데 위험하다. 하지만 그의 건강, 그림에 대한 열정, 가족들에 대한 생각, 동생에 대한 많은 부담과 애정.. 그는 혹시 그렇게 세상에 그림처럼 스스로를 남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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