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책으로(매리언 울프 지음/전병관 옮김/어크로스 -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어느 광고에서 전화기 영상으로 수산시장 생선 가게의 생선을 보여준다.
퇴근 길 남편이 생선을 사 가기 위해 집에 있는 아내에게 어떤 걸로 살지 묻는다.
영상 통화다.
그때 생선 가게 할머니가 젊은 남편에게 묻는다.
"그게 뭐여?"
"아~~ 디지털 세상이잖아요!"
남편이 대답한다.
"뭐! 돼지털?"
2001년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의 광고 장면이다.
"뭐! 돼지털?" 라는 할머니의 물음에서 나는 '빵!' 터졌었다.
아마도 처음 본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빵' 터졌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디지털 시대 이야기를 할 때 이 광고 이야기를 종종 한다.
하지만 이 광고의 기발함과 재미는 무뎌질데로 무뎌졌다.
그건 아마도 이제 디지털이 우리 생활과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어 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광고가 나왔을 그 시절에도 우리 생활 대부분은 아날로그였다.
지하철을 타면 아직 신문을 읽는 사람들과 책을 펼쳐 읽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던 시절이다.
그리고 우리가 종이에 기록된 것이 아닌 디지털화된 문서를 내 생활 전반에서 보게 될 거라는 상상을 몇사람이나 했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19년 현재,
재래 시장의 생선 가게 아주머니도 스마트 폰으로 세상을 본다.
지하철 안에서 커다란 종이 신문을 펼쳐 보는 사람을 찾기란 가뭄에 콩나기 보다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종이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 또한 찾기 쉽지 않다.
오히려 아이패드나 갤럭시 노트와 같은 태블릿 또는 크레마 같은 e-book 전용 기기 등으로 전자책 읽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바야흐로 세상은 디지털 시대다.
아날로그가 차지했던 자리를 디지털이 야금야금 먹어 들어 오더니 이젠 안방을 거의 모두 차지하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의 학교 교실에는 종이로 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디지털화 된다고 한다.
어쩌면 아날로그의 멸종이 그리 멀지 않은 듯 하다.
그런데 종이책, 종이 신문으로 읽던 것을 디지털화된 문서로 읽는 것 뿐이지 뭐가 달라질거냐....
정말 그럴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킨다.
'용불용설'
'사용하는 기관은 발전하고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라마르크가 주장한 진화론 중 하나이다.
(현재 받아들여지는지 아닌지를 여기서 논하고 싶진 않다)
종이책으로 읽던 것이 디지털화된 문서로 읽게 되면서 우리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그리고 그건 뇌과학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디지털 환경으로 세상이 진화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한 번쯤 이런 질문에 대한 사색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질문과 사색에 도움이 될만 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2019년 5월에 출간한 따끈따끈하면서 사고의 밑거름으로 충분한 책, '다시, 책으로(매리언 울프 지음/전병근 옮김)' 이다.
저자인 매리언 울프는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이면서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이다.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급격한 디지털 기반의 문화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책을 읽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종이책을 읽는 것이 우리 뇌 활동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젠 종이로 된 인쇄물을 들고 다니며 읽는 사람을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종이가 쥐어져 있던 손에는 저마다 모두 스마트 폰을 들고 있다.
엄지 손가락이 스마트폰의 화면을 열심히 쓸어 올리거나 양 옆으로 정신없이 밀어 낸다.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디지털 매체 속 정보를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까?
그리고 그건 종이 인쇄물을 읽은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매리언 울프의 이 책, '다시 책으로'는 뇌 과학적 측면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세계의 엄청난 정보 속에서 읽는 뇌가 어떻게 기능을 잃어 가는지 이야기 한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전에 나는 두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보려 했다.
한 가지는 같은 내용이라도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서 읽은 것과 종이 인쇄물로 읽은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다른 한 가지는 디지털 읽기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아날로그 읽기를 택할 것인가? 우리의 뇌를 위하여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가?
소설이든 에세이든 아니면 시든, '디지털 기기에 쓰여진 문장이나 종이 책에 쓰여진 문장이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는 실제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느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하지만, 종이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한 점이 많다. 그 중 하나는 종이책은 디지털 책보다 부피가 크다. 디지털 책의 경우, 종이책 한 권보다 훨씬 얇은 기기에 적게는 수 십권에서 많게는 수 만권 또는 수십 만 권을 넣고 다니며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종이책은?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책을 보라. 900 페이지가 넘는 그 책은 솔직히 가지고 다니는 그 자체가 짐이다. 단 한 권인데...
그런 이유로 나도 아이패드에 몇 권의 디지털 책을 넣어 읽어 보았다. 이제 독서가 습관화 된 나 이지만 디지털 책은 몇 페이지를 읽지 못하고 앱을 닫아 버렸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역시나 종이책을 읽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 내가 디지털 책 읽는 것을 끝까지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분명히 디지털 책을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에 대한 차이를 느꼈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 '다시 책으로'에서 그 이유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학생들에게 똑같은 단편 소설을 한 그룹은 디지털 기기인 킨들로, 다른 한 그룹은 종이책으로 읽었을 때 차이를 소개한 실험이다. 결과는 종이책을 읽은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로 읽은 학생들 보다 상대적으로 '줄거리를 시각적으로 제구성하는 능력이 더 뛰어 났다고 한다(p126). 즉, 디지털 기기로 읽을 때는 종이책으로 읽을 때 보다 그냥 훑고 지나가는 부분이 더 많다는 얘기다. 그런 연구 결과에서 인쇄물로 읽은 학생들의 이해도가 더 높게 나왔다는 것(p127)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것이었을까?
나의 경우에도 똑같은 내용의 책인데, 디지털 기기로 읽으면 왠지 읽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로 하여금 디지털 기기로 책 읽는 것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서 조차 우리는 디지털을 멀리 해야 하는 것인가?
이 책, '다시 책으로'에서 저자 매리언 울프는 여덟번 째 편지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이야기 한다.
이것은 나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종이책으로 읽는 뇌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뇌를 동시에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매리언 울프는 이것에 대하여 어린 아이들의 교육에 촛점을 맞춰 이야기 한다.
매리언 울프가 '다시 책으로'에서 이야기 하는 '양손잡이 읽기 뇌'를 가진 사람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바라는 인간상은 무엇일까?
(p257)
종이책이 뇌과학적 측면에서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니 디지털 매체와 인쇄 매체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종이책을 읽은 것은 '거북이'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는 것은 '토끼'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토끼가 되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편하고 쉽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저자 매리언 울프는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를 모두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어린 아이들에게 제시한다.
첫 번째로, '인쇄물의 역할'이다.
저자는 '5 ~ 10 살 사이에는 종이책과 인쇄물을 주로 사용해서 읽기를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p258).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인쇄물을 읽는 법을 처음 배우는 입문 과정을 통해 읽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이야기를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남는 생각거리를 돌려준다는 것을 배우길 바라고 있다(p259).
종이책을 읽는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하지만 이 시간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기대감을 불어 넣어주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인생에 기초가 될 무엇인가를 얻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생각을 도와주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종이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느리다.
이건 거북이가 아니라 달팽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생각의 깊이를 더하기엔 최고의 방법이다.
읽는 뇌는 종이책으로 읽으며 글을 쓰는 것. 바로 이것으로 발달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디지털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더 정확하게는 아이들이 취해야 할 디지털 도구는 무엇일까?
저자 매리언 울프는 이 책, '다시 책으로'에서 '양손잡이 읽기 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디지털 도구로, '코딩'을 이야기한다.
코딩은 아이들이 다른 사람이 만든 소프트웨어로 상호작용하는 대신에 스스로 컴퓨터로 뭔가를 만들고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아이들이 코딩을 하는 과정에서 순서에 따라 사고하고 원인과 효과를 탐구하고 설계와 문제 해결 기술을 개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좋은 디지털 도구인 것이다 (p263).
즉, '코딩'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사고의 도구'로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종이책으로 읽는 뇌를 발달시킴과 동시에 디지털 기기를 사고 확장의 도구로 사용할 경우, 종이책으로 읽는 동안 스스로 이해한 것을 규칙적으로 점검하고, 인쇄물 읽기에서 배운 유추와 추론의 기술을 온라인 콘텐츠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이다.
"뭐, 돼지털?"
이라는 광고문구에서 빵터져 웃었던,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아날로그가 더 익숙하던 시절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도 있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종이책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시대의 흐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종이책을 떠나 보내면서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꼭 간직해야 할 그 무엇인가를 잃어버리진 않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그렇다고 또 디지털을 포기할 수도 없다. 디지털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세상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겠다는 것과도 같다. 비약이 좀 과했다 생각할 지 모른다. 그만큼 이제 우리는 디지털이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인쇄물을 읽는 것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것은 이제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인 것이다.
매리언 울프가 쓴 '다시 책으로(어크로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그 디지털의 수동적 종속물이 아니라 그 디지털의 주인으로서 사고의 확장을 위해 우리는 지금 다시 종이책의 책장 한 장을 넘겨야 한다.
다시 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