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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Aug 10. 2019

Master, 해볼래? Grand Mater는?

마스터리의 법칙 (Mastery)

 Mastery라고 해도 번역된 책 제목이 '마스터가 되는 법'이라도 쓰면, 더 많은 독자들이 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이란 책을 서점에서 보고 구성이 읽어봄직 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저작물을 보면 마치 신의 계시를 적어 둔 듯 기술, 법칙이란 단어를 그럴싸하게 붙였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떼지 않는다.


 그의 연혁을 찾아보면 40대부터 저서를 내기 시작했다. 전략, 성공 이런 분야의 책을 내고 있지만 사회적인 성과물을 책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분야의 달인인가? 호기심 천국을 취항하기 위해서 마스터리의 법칙, 유혹의 기술, 전쟁의 기술, 50번째 법칙이란 책을 샀다.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오고 있는 과정을 함께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분야의 마스터가 되는 과정은 만 시간이면 충분하다. 만 시간 정도 하고도 서투르다면 교육방식보다 본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똑같은 만 시간을 해내고 우리가 말하는 '전문가'의 수준에 다다라도 차이가 난다. 선천적 신체 조건의 차이, 지적으로 탁월한 분야의 차이가 존재한다. 세상은 normal이란 평범함을 지향하지만, 평범함 속에서 창의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다. 평범함을 지향하는 한다는 말이 현재 모두가 평범하지 않기에 결핍을 채우는 방향의 이성적 활동이라고 생각해도 다르지 않다. 


 그 관점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일지 모른다. 내 안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문득 UX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이 부분이 단순한 그래픽적인 시대의 요구가 아니라 본질적 지향점이 다양한 사물에 적용된다는 점으로 이해했다. 그것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수 십여 권의 책을 읽고, 실무에서 이것저것 적용하다 특허 발명가가 됐다. 그가 하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내가 의도적으로 지향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열정과 몰입, 반복의 과정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하지만 요즘은 인생의 방향에 있어 내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일의 관점에서 마스터리는 효과적인지만, 인생의 관점에서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인생의 관점에서 마스터리의 방향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더 중요한 문제다.


 거인이 어깨를 올라타는 배움의 과정은 중요하다. 이론만 공부를 하면 실전 환경의 능숙함이 없는 책상머리 잔소리꾼이 되기 쉽다. 실전만 하면 깨달음이 느릴 수밖에 없고 또한 거칠다. 나는 선택하라면 실력의 차원에서는 후자가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둘 다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이론은 과거의 지식이 정리된 과정이고, 실전은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에 활동하는 미래 준비과정이다. 그 차이 속에 변화를 어떻게 투입할 것인가가 인간이 당면한 매일매일의 선택과 고민이다. 반드시 이론과 실전은 양립해야 효과가 있다. 이론이 없다면 실전을 통해서 이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대상은 중요하다. 


 내 경험을 스스로 돌아봐도 독특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던 뛰어난 역량 중 일부는 배울 수 없는 것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만의 직관일 수 있고, 타고난 재능일 수 있다. 몇 년을 관찰했지만 그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분야를 조정했다. 영업분야에서 순식간에 간파하는 역량이 훈련, 경험, 지식 습득으로 개선되지만 넘지 못하는 수준도 존재한다. 대신 내가 잘할 수 있는 준비 역량을 강화해왔다. 어쨌든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큰 복이고 안목이다. 책을 읽다가 책에 낙서를 했다.


 "배우고 본받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큰 복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없는 경우도 있고,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보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을 탓하느니 스스로 본받을 사람이 되면 된다"


 이런 말을 쓴 이유는 살면서 지식을 배울 사람은 많지만, 본받을 만한 사람을 많이 본 것 같지 않다. 나의 문제다. 그래서 독학 아닌 독학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배워서 남주자는 생각과 스스로 본받을 만한 부분을 갖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


 4장을 보면서 세상과 내게 주어진 환경을 본다. 바보는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다. 동서양의 현자들도 중간에 힘쓰자는 말을 한다. 그들이 현자인 이유는 중간을 넓게 바라보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더 벗어났기 때문일 수 있다. 나는 아주 얇은 중간과 엄청난 수준 이하와 수준 이상이 정규분포처럼 나눠졌다고도 생각하기도 하고, 8:2의 법칙이란 파레토의 법칙도 생각하고, 멱함수처럼 대부분이 수준 이하라는 생각도 한다.


 최진석 교수의 말처럼 "보이는 대로 보라"라는 말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 맴돈다. 책은 바보 멍청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으라고 말한다. 말은 쉽지만 공자님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고민이 있다. 바보를 감내하고 사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들의 행동을 용납하고 이해하고 설계해야 오차는 적겠지만 그렇게까지 삶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가치가 있는가?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 담보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 때문이다.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의 문제일 수 있고, 그래서 그 완성이 마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실천한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있다 하더라도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성취가 안되고, 두통거리만 늘어난다. 사람은 원래 그렇다.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람으로 보면 또 다르다. 일로 보면 동의하면서도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단편적인 한 예는 당장 빈곤에 찌든 독립운동 후손들을 보면 뭐라고 해야 하나? 


 기술적 역량의 습득 차원에서는 충분히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을 넣으면 역시 마스터리의 길은 험난하다. 결국 나는 세상의 얇은 중간과 절반을 넘어서는 수준 이하 또는 멱함수의 수치를 고려하면 보통의 내적인 역량을 갖고 세상은 살아내기 쉽지 않다. 나도 엄청난 분야에서 수준 이하임을 인정하고 산다보이는 대로 보고 이를 감안해서 대안과 대책을 끊임없이 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보면 무엇인가에 미쳐 돌아가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또 생각난다. 곱게 미쳐야 삶이 아름답다. 결국 맘에 드는 거 하나 딱 잡아서 죽자 사자 해보라는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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