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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 May 21. 2017

Frankfurt

출장 후 동네 마실 

 짧지만 중요한 출장을 다녀왔다. 어긋난 돼지발톱처럼 교차하지 못하는 인연을 다시 묶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과 일은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매번 어긋나던 서로의 시도와 바람이 돌고 돌아 다시 만났다. 일정 부분 잊고 지내던 일에 대한 사업제안과 기대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준비는 사람을 흥분되게 한다. 매번 까칠하던 사람들의 호의적인 배려에 감사하게 된다.


 물론 그들의 사정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이익을 위해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효율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사업에는 때가 있고 이때를 서로 오래가기 위해서는 베풀고 보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파트너와 손잡고 오래갈 수 있는 길이다.  예상보다 큰 요청과 기대를 안고 돌아가게 됐다. 사무실에서 온 연락에는 망했다고 전하고 동네 마실에 갈 생각이다. 난 주말에 일하고 있는데 뭘 자꾸 물어보니까.. 심통이라도 부려봐야지.


 게다가 작년에 진행하다 다 죽은 줄 알았던 프로젝트까지 다시 시작하게 됐다. 경제 사정이 어렵다 보니 프로젝트의 발주가 변경되고, 다시 진행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통해서 그때가 왔을 때 잡는 확률을 올리는 방법이 최선이다. 이번 출장은 걱정으로 시작해서 일이 잘 풀려간다. 같이 간 직원에게 그의 노력과 꾸준함에 감사하게  된다. 


 요즘은 하늘 보는 일이 많다. 특히 출장을 오면 하늘을 많이 본다. 나 스스로 바라는 것이나 꿈이 많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보다는 파란 하늘과 구름을 보면 기분이 아주 좋아지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요즘 독일 날씨는 더욱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일도 잘 되었으니 이젠 동네 마실을 한번 가볼까요?

 20여 년 전에 Frankfurt에 왔었다. 친구랑 둘이서 덜렁 배낭 하나 메고, 역에서 얻은 지도가 전부였다. 화이트 소세지의 맛에 GG를 치고, 결국 찾지 못하는 괴테의 집을 뒤로하고 떠났다. 프랑크푸르트보다는 뉘른베르크의 멋진 광장이 훨씬 좋았다. 그 후 출장으로 몇 번오기는 했지만 잠시 짬이 나서 동네 마실을 댕겨보기로 했다.


 호텔 예약 시 매일 방값이 올라서 무슨 일인가 했다. 중앙역 앞쪽의 도로를 막고 음식을 판다. 우리나라 전통시장 골목의 먹자골목처럼 시내가 변했다. 봄의 시작을 알리듯 요란하지 않지만 모두들 즐기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소시지와 맥주, 와인을 팔고 거리의 식당까지 테이블로 도로를 채워 아주 신선하다. 사진처럼 어마 무시한 프라이팬을 보는 것도 재미다. 소시지를 사지는 않았지만 하얀 머리의 어르신이 활짝 웃어주신다.


 지나다 보니 와인도 시음을 해줘서 RIESLING이란 동네 와인을 두 병 샀다. 사무실에서 짹짹거리는 우리 팀 동료들과 회식과 자축을 위해서라면이야.. 팀장이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동료들이 팀장이 되도록 지원하고, 전체에서 필요한 부분에 잘 하는 사람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리더십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리를 좀 더 지나면 광장이 있다. 오른쪽 전통 가옥 모양의 식당 음식이 꽤 괜찮다. 족발 같은 학센보다 돈가스 같은 슈니첼을 더 좋아하는 어린이 입맛이지만. 독일의 음식을 보면 꽤 검소하다는 생각을 한다. 화려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투박하지도 않고. 

 조금 모퉁이를 돌면 유럽연방은행이 있다. ECB라는 이름이 조금 우스꽝스럽다. 보통 중앙은행은 BOK(한국은행), BOJ(일본중앙은행), FRB(미연방은행)인데 발음 때문인 듯하다. 여기도 양적완화 이후 대처와 Brexit와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으로 요란하다. 작년 영국에서 Brexit를 직접 맞이했는데, 6월 8일 선거 여파가 별일 없길 바란다. 그나마 예상과 다른 달러 약세가 유럽시장을 공략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 별 값만 좀 잘 해주면 좋겠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 햄버거를 사 먹었다. 두툼한 감자와 손으로 다진 햄버거 패드가 프랜차이즈와는 다르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감자는 반이나 남기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떠나는 날 아침 호텔에서 check out을 하고, 나는 돌아가는 짐을 꾸렸다. 직원은 다시 옆 나라로 이동해야 한다. 아침에 노닥거린 시간이 아쉬워서 찾아보니 박물관이 꽤 많다. 건축박물관을 가보고 싶었는데, 동료도 자주는 와봤는데 그런데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때가 곧 찬스다. 시간이 났을 때 해보는 것이, 시도할까 생각해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의 희망과 나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서 괴테의 집을 가보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MAP을 한탄하며 돌아섰지만, 지금은 google map, apple map이란 기술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괴테의 집을 보면서, 이 하라방 꽤 갑부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었다. 이를 뒤로하며 뢰머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사진의 오른쪽에서 보듯 우리 과장 왈 "엄훠,...동상이 없네요"한다. 와본 것도 같은데 기억도 잘 안 난다. 특별한 사건이 없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항상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기억이란 사건과 함께 더 선명하게 남는다. 저기에 원래 정의의 여신이 칼과 천칭을 들고 있는데 정의가 없어진 것이다. 엄훠

 노란 파라솔이 이쁘게 생겼다. 그 이유만으로 식당을 골라서 자리에 앉았다. 파라솔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사람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 아마 다시 파트너들과 지지고 볶고를 했다면 한숨만 팍팍 나올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따라 바라보는 하늘이 다르게 보이겠지만 항상 그러한 하늘이 있어 의지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즐거움도 잠시...호텔에서 짐을 찾아서 움직여야 하는데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주문을 안받는다. 불러도 지나치고, 자꾸 다른 손님한테만 주문을 받는다.. ㅡㅡ;;;;;;;; 뭔가 이유야 있겠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자리를 일어나서 저 멀리 건너편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필스너라는 맥주(우리나라 생맥주)와 둥켈이라 불리는 흑맥주, 헤페바이젠과 같은 밀맥주 중에 그냥 생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메뉴판의 음식이 꽤 괜찮아 보인다. 피자냐고 물어봤더니 피자는 아니란다. 빵이 아주 얇다고 설명해 주는데 그럼 크리스피인데.. 치즈와 양파를 곁들인 맛이 아주 괜찮다. 맥주 사진을 찍는데 독일 처자들이 자기들 자신 찍는 줄 알고 엄청 의식한다. 어차피 거긴 포커스가 안 맞는데 말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이 보인다. 독일어도 할 줄 모르는데 종종 어딜 가나 기회가 되면 서점을 들른다. 고흐의 화보집을 14.5유로에 판다. 재고이기 때문에 61.5유로짜리를 이 가격에 팔겠지만 좋은 가격이다. 돌아와서 보니 무려 2005년판이다. 모네와 람 브란트도 있었는데 책이 워낙 무거워서 고흐 화보집만 하나 샀다.  전시회도 봐었고, 한번 보고 나면 장식품이 되겠지만 말이다.

 체크아웃하기 전 호텔방에서 이런 자세로 뒹굴거렸는데, 움직이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직원도 괴테의 집도 보고,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나 보다. 마음의 여유와 노고에 대한 보답과 자주왔던 곳을 자세히 보는 즐거음이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하늘나라에서 배달된 이쁜 딸이 엄청 보고 싶을 텐데, 다시 짐을 싸서 다른 곳에 보내야 하니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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