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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Nov 05. 2018

싫은 건 싫은 거

 개에 비해 어렵기는 하지만 고양이도 훈련이 가능하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개들과 함께 자란 한 고양이는 개처럼 행동한다는 얘기도 인터넷에서 보았다.

허스키들과 자라서 자기가 허스키인 줄 안다는 고양이 로지 (출처: 인스타그램 @lilothehusky)

 내가 부족한 탓이 크겠지만 우리 집 고양이는 훈련이 안된다. 굳이 내가 즐겁자고 던지는 물건 집어오기나 손 내밀기 같은 건 훈련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병원 방문을 위한 외출, 양치질, 약 먹기 등 고양이 건강 관리 및 유지를 위해서 꼭 해야하는 몇 가지 일에 고양이가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정도다.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조금 더 즐겁게 하면 좋지 않은가 말이다.

양치 타임에 곧잘 숨어 들어가는 거울 뒤

 일년에 한두 번 하는 병원 나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 하는 양치질은 정말이지 매번 힘들다. 맛있다고 소문 난 치약 공수, 다른 집사들의 양치 자세 따라하기, 양치 후에 보상(간식) 주기 등을 통해 고양이를 훈련시키려는 혹은 적어도 덜 힘들게 양치하게 만드려는 노력을 계속 해오고 있다. 하지만 칫솔을 욕실에서 들고 나오자마자 시작되는 술래잡기나 칫솔을 철벽방어하는 고양이의 앙다문 입과의 씨름 역시 계속되고 있다. 아무리 닭고기 맛이 나는 치약으로 양치를 하건, 조금만 참으면 츄르를 먹을 수 있건, 고양이는 그냥 양치가 싫은 것이다. 영영 좋아할 수 없는 일인 거다.



어차피 해야하는 일이라면 즐기면서 하라는 내용의 격언들이 몇 개 있다. 말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 그 상황에 처한 본인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삶의 지혜 중 하나로 빠지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하기 싫은 일도 웃는 낯으로 해내는 게 '어른스럽다'의 척도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 앞에서 볼멘소리 먼저 나오는 나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울 때가 많다. 아, 또 어른스럽지 못했네, 난 언제쯤 철 드나.


 하지만 가끔은 그냥 싫은 건 싫다고 하면 좋겠다. 어차피 안할 수 없는 일이고 안할 것도 아닌데 꼭 억지로 웃으면서까지 해야 하나?안 그래도 힘든데 좋은 척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자괴감 느끼는 것도 스트레스다. 조금 솔직했다고 해서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하는 거라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숨기고 눌러야만 어른이라고 한다면, 어른되는 건 조금만 더 늦추겠다. 싫은 건 싫은 거지. 닭고기 맛 치약을 쓰건 끝나고 츄르를 먹건  어떻게 해도 싫은 양치질에는 무조건 싫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고양이만큼은 아니어도, 조금만 더 솔직하게 살고 싶다. 어차피 이 생에서는 고양이만큼 귀엽기는 어려우니 그냥 미움 받을 것도 감내하고 마음껏 솔직해지련다. 싫어, 싫어, 싫어!


... 그치만 우리는 오늘 밤에도 양치질 할 거야, 벼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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