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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Nov 06. 2018

우리의 시간은 다르지만

 판교에서 처음 맞이한 매서운 꽃샘추위과 말 그대로 숨막히는 한여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도, 나만 남겨두고 연말로 달려 가는 2018년이 못내 아쉬운 탓일까? 어쩌다 보니 요즘 읽고 있는 책이나 팟캐스트 모두 시간을 다루고 있다. 주요 내용 혹은 내용의 전제 역시 모두 시간의 상대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 단위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 혹은 약속의 산물이다. 일주일은 굳이 7일일 필요가 없고, 일년 역시 12개월일 필요가 없다. 오늘날 인류 문명에서 십진법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주일도 10일, 일년도 10개월인 게 도리어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 다만 아주 오래 전부터 일주일은 7일이고 일년은 12개월인 달력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그때의 그 약속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잡았을 뿐이다. 실제로도 시간은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았기에 알 수 있다.


너와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를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아주 오래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 같은 시공간에 함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각자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삶이 조금씩 더 쓸쓸해지는 것 같다.

 종일 남동생과 둘이서 놀다가 저녁 무렵에 엄마를 마중 나가던 초등학교 1, 2학년 시절은 하루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즐거웠다. 하지만 엄마는 조금씩 커가는 우리 남매의 학원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섬유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그 시절이 참 지루했노라고, 거의 20년이 지난 최근에야 털어놓았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교환학기를 보내던 시기에 붙어다니면서 친해진 뒤로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내 소중한 친구는 그때 그 하늘이 높고 파란 도시에서 너무너무 외로웠다고, 스페인에서 돌아오고도 몇 년이 지난 뒤에 말했다.

 나는 진로부터 연애까지, 어느 하나도 새롭게 시작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동안 친구들은 포트폴리오를 착실히 쌓고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반반씩 닮은 생명을 잉태하는 등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나의 시간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것들이야 적잖이 쓸쓸하고 더러는 조금 슬퍼지지만, 우리 고양이와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은 자주 슬프고 대개는 가슴이 아리다. 고양이의 평생이 나에게는 십여년 인지라, 머지 않은 시점에 나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의 고양이는 아주아주 늙어버려서 우리가 헤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둘 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는데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5일은 하루 중 반나절 가까이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싫다. 게다가 나의 반나절보다 고양이에게는 훨씬 길게 느껴질 텐데... 이렇게 너와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좋은 건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어쩌자고 너를 만나기로 한 걸까? 참으로 무모했다.

*Felix Gonzalez-Terros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Lovers>. 마주하고 있는 두 시계의 시곗바늘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는데 "we are synchronized, now and forever."라고, 그리고 "I love you."라고 말하는 게 눈물 겹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추억을 가질 수 있었기에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건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 고양이의 시간은 멈추고 나의 시간만 흘러갈 때쯤에라야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아직은 그냥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데에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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