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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Nov 09. 2018

말하자면

 나는 조리있게 혹은 재치있게 말하는 능력이 남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자기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여러 회사 및 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이 업무의 대다수인 광고대행사와 토의가 자주 이루어지는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그나마 좀 들어줄 만한 말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생각을 온전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능력은 매우 부족하다. 이렇게 된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내가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 버릇하다보니 구술 언어로 내 생각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쌓지 못했고, 능력이 부족하니 말을 계속 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던 것이다.

 

 여전히 말수는 남들에 비해 적은 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와 함께 대화하는 사람과 서로 어색해지지 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는 스킬은 쌓기는 했지만, 내가 맺고 있는 대다수의 인간관계에서 나는 청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말수가 적은 이유는 매우 간단하고 분명하다.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딱히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다. 보통 자기가 경험한 것 중에서 인상 깊은 일을 대화 소재로 가져오기 마련인데,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감정의 역치가 매우 높은 편이어서 살면서 딱히 크게 즐겁거나 슬프거나 화나는 일이 없다. 좋은 것도 별로 없고 싫은 것도 별로 없는 터라 내 마음과 감정에 각인되는 에피소드가 없고, 그러다보니 딱히 남한테 뭐라 할 얘기가 없다. 말 그대로 할 얘기가 없다. 사교적 자아로 무장해야 하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면, 하루종일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낼 수 있을 텐데. 얼마나 편할까.


 할 말이 없음에도 남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야 되는 데서 오는 나의 스트레스획기적으로 줄여준 것이 바로 고양이다. 고양이에 한해서는 나는 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매일 할 얘기가 있다. 지금도 매일 고양이를 엮어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고양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도 무던한 내 감정을 자극하고, 고요한 내 생활에 크고 작은 파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출근길 현관에서 뒤돌아볼 때 보이는 고양이의 앉은 자세는 매일 같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내 서글픔과 미안함과 슬픔도 매일 새롭게 갱신되는 식으로 말이다. 다행히도 주변에 반려묘/견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해나갈 수 있다.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남들과 이야기하는 데 얼마나 기운이 빠졌을지, 생각만 해도 기운이 쭉 빠진다. 매일 글도 이렇게 고양이에 대해서만 쓰고 있는데, 대체 고양이 없으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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