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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Nov 14. 2018

그 다정한 눈짓 하나에 나는 그만

 고양이와 나의 물리적 거리는 상시 조정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고양이는 나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언제나 조금씩 바꾼다. 나야 항시 고양이와 최대한 가깝게 지내고 싶으니, 우리 둘 사이의 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팩터는 고양이님이 되시겠다.


 나를 대하는 고양이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다. 한동안은 시도 때도 없이 옆구리에 파고 들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잠도 따로 잔다. 이렇게 변덕을 부리는 와중에도 내게 보이는 일관된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마중 인사다. 회사나 요가원 등에 다니러 길게 혹은 잠깐 외출하고 돌아오면 문 앞까지 고양이발로 뛰쳐나와 반겨준다. 상냥한 목소리로 야옹거리는 건 기본이고 화장실까지 쫓아들어와서 반갑다고 부비댄다. 바닥에 철푸덕 누운 채로 자기를 쓰다듬으라고 눈치를 주며, 한동안 함께 냐냐거리며 수다 떨고 한참을 쓰다듬어주고 나서라야 옷을 갈아입고 씻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다정한 인사 - 잘 다녀왔냥? 왜 이제 왔냐앙, 기다렸다냥! -만은 우리 관계의 다이내믹스에서 고정 요소다.

올해 최고 행복했던 순간. 내 옆에 착 달라붙은 고양이의 체온을 느끼면서, 그리운 리스본을 보면서, 박정현과 악뮤 수현이의 노래를 듣던 주말.

 우리 관계가 친밀하건 소원하건, 일관되게 보여주는 고양이의 이런 마중 인사는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보이는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생활 햇수가 늘어날수록 공적, 사적 인간관계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다정함 스킬'도 늘어난다. 크게 마음 쓰지 않고도 다감하게 행동하는, 모순적인 상태를 무리없이 유지할 수 있게 된달까. 이 스킬 덕분에 어떤 지인들에게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소중했던 누군가를 꽤 오랜 시간 기만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 같다. 내 마음이, 우리 세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차마 입밖에 낼 용기가 없어서 그저 습관일 뿐인 말 몇 마디와 행동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일이 생긴다. 그 다정한 인사가 실은 텅 빈 말 한 마디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저 습관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서 그만 혼자 남겨져 버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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