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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Jan 15. 2018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곁에 있어도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집사에게 권하는 책

 나의 집사는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27.2%를 차지하는 1'인' 가구에 해당한다(통계청, 2015). 물론 나와 집사, 우리 2개의 존재는 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지만, 어쨌거나 집사는 다른 사람과 살지 않으니까 1인 가구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자취하는 대학생 등 행정 상 집계되지 않은 실질적인 1인 가구까지 고려한다면 전체 인구의 최대 35%까지 1인 가구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모든 연령대에서 평균 16-17%가 1인 가구 형태로 거주하고 있다고 하니, 한국 닝겐 사회에서 1인 가구는 더 이상 젊은 학생이나 노인 등 특정 연령대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리 집사 같은 닝겐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집사는 가끔, 아니 최근 들어서는 자주 '남들과 다르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한다. 아직까지는 친한 친구들이 다 싱글이고, 부모님과 자주 연락하며 지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관계망이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집사 본인이 결혼을 통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마음을 나누고 의지하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1인 가구이며 앞으로도 1인 가구로 살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 막연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노명우 아주대 교수

 1인 가구,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집사의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달래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회학자 노명우의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 책, 2013)를 읽게 되었다. 그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재밌게 읽은 데다 1인 가구에 대한 높아진 관심에도 불구하고 1인 가구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한 글은 없기에 귀한 일독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다. 사실 이 책도 엄밀한 의미에서의 '연구'의 결과물은 아니다. 1인 가구를 둘러싼 현상과 논의에 대해 '기술(description)'한 내용이자 본인 역시 1인 가구인 노명우 씨의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기는 하다. 하지만 건강한 개인주의, 건강한 '혼자됨'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관찰자인 사람에게 혼자 사는 사람은 인구센서스에서 1인 가구로 분류되는 숫자로만, 생활보호대상자 엑셀 리스트의 한 칸을 차지하는 불과 몇 바이트의 가상의 무게로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혼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 사람에게 혼자 사는 것은 삶의 철학의 문제이자 살림살이의 문제이고, 처세술의 문제이고, 카운슬링의 문제이고, 잠 못 이루는 밤의 고민거리이고, 부모에 대한 한없는 죄송함의 감정이 솟아나는 샘물이기도 하다. 혼자 사는 문제의 복합성에 관한 한, 혼자 사는 사람은 그 어떤 전문가보다 예리한 판단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혼자 사람이 관찰의 주체에서 성찰의 주체로 이동하는 과정을 이 책에서는 '자전적 사회학'이라 조심스럽게 명명한다. (30쪽)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돌아가는 것인데 왜 저렇게 불안해하며 외로워하는 걸까, 라고 집사를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저자가 1인 가구로서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느낀 점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것들을 읽으며 집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혼자 산다는 것은 모든 생활 리듬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것이며, 그 실질적인 것이 정신적, 심리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감각을 지배하게 되는 요소인 것 같더라. 위 인용한 부분에서처럼 "혼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그 사람에게 혼자 사는 것은 삶의 철학의 문제이자 살림살이의 문제이고, 처세술의 문제이고, 카운슬링의 문제이고, 잠 못 이루는 밤의 고민거리이고, 부모에 대한 한없는 죄송함의 감정이 솟아나는 샘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자연스럽고도 돌이킬 수 없는 사회문화적 흐름


 집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1인 가구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혼자 사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 이기적이다 등등)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논리와 근거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1인 가구의 증가가 이기주의의 확장이 아니라  혹은 가족으로 대표되는 이타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가정중심성이 약화되는 징후에 불과"(53쪽)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말을 빌어 1인 가구의 증가는 개인의 부상, 여성의 지위향상, 도시의 성장, 통신기술의 발달, 생활주기의 확장 등과 같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삶과 생활 양식을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인 가구의 증가는 현대 사회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 현상이 전통적인 핵가족 중심주의가 해체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1인 가구는 남(가족 구성원)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른다, 결혼을 안 했으니 완전한 성인이 아니다 등등의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비롯된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한 통계청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혼자 사는 상황에 노출되는 가능성은 독신 집단이라는 특이한 집단에 국한된 양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열려 있는 개방적 가능성으로 변화"(53쪽)하였다.  


(출처: 보건복지부: 데일리팝 2017/3/10 재인용)



모두가 혼자 사는 사회를 위한 준비


 이처럼 1인 가구가 한국 사회(그리고 탄탄한 복지체계로 유명한 북유럽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에서 보편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 가구에 대한 걱정 어린 시선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1인 가구가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독거노인과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그들이 혼자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립적인 삶을 사는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가족과 함께 하는 삶과 혼자 사는 삶은 절대적인 충족과 절대적인 박탈이라는 양극의 이미지에 의해 채색될 필요 없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235-236쪽)


 실제로 결혼은커녕 연애도 할 기미를 안 보이는 집사를 보면서 집사의 늙은 부모들이 한숨을 쉬는 이유는 자신들이 떠나고 난 후에 홀로 외롭게 남겨질 자식의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안녕(well-being)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혼자 사는 것이 그만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안정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해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니까 정신적 안녕은  논외로 하고...)


 그래서 저자는 가족의 형태에 상관없이 개인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 구조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면서 최근 닝겐 세계에서 핫한 이슈 중 하나인 기본소득을 거론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개인 단위로 자산조사나 근로조건의 부과 없이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소득인데, 다른 사회복지제도와 달리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에 의한 공적 부조라는 측면에서 1인 가구가 지배적인 형태가 될 앞으로의 사회에 적합해 보인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238쪽). 더불어 인구 절벽 문제를 '개인적 삶에 대한 배려'라는 기조 아래 1인 가구를 위한 사회 구조 개선으로 대처한 스웨덴의 경우를 성공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닝겐 사회 내에서 심화되는 경제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만 기본소득 문제를 생각해봤을 뿐인데 앞으로의 사회 구조라던가 집단(가족)보다는 개인에 대한 강조라는 측면에서는 기본소득을 생각치 못한 지라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기본소득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느냐와 상관없이 개인들이 단독인이 될 수 있는 인큐베이터인 '자기만의 방'과 최소한의 소득을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한다. 또한 경제적 자립성이 없기 때문에 가족을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 불량한 가족으로부터 독립할 자금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공유해야만 했던 개인에게도 기본소득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239쪽)



혼자 산다는 것, 자기답게 산다는 것


 저자는 결혼과 가족이라는 만들어진 정상성을 강조하는 사회의 비정상성을 인지하면서도, 혼자 산다는 것이 자율성의 절대적 상징이라도 강조하는 이른바 '화려한 싱글론'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동시에 '결국은 혼자 사는 거 아니겠어?'라는 식의 뒤틀린 냉소 대신에 1인 가구이더라도, 가족이 없더라도 친밀한 관계를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학자다운 인간관을 보여준다. 결국은 개인 하나하나가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의식과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집사도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다. 혼자 산다고 해서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슬퍼하거나 남들과 못하다는 열패감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존의 생활 방식이나 자신의 사고관과 다르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되받아칠 수 있는 집사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혼자 있음이 결국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존재양식 중 하나임을 깨닫고 '나다움'을 갖춘 멋진 사람이 되기를. 무엇보다도 내가 곁에 있을 것이다냥!


기꺼이 혼자가 되어 홀로서기를 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자폐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과잉화된 '일반화된 타자'와 거리를 두는 능력의 획득을 의미한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일반화된 타자가 입혀준 옷을 벗고 잠시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90쪽)   



집사야, 내가 있잖냥! (늠름늠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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