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02, 내장산

내장산(內藏山)에 갔다가 내장(內障)만 깊어지다

by 도도해

새해 ‘첫’ 산으로 내장산에 올랐다. 내장산은 가까운 곳에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오르지 못한 산이다. 간혹 산 근처에서 드라이브하거나 밥을 먹던 곳, 어느 가을 친정 부모를 모시고 밥을 먹으러 왔다가 아버지의 잔소리에 실망하고 밥을 욱여넣었던 곳이기도 하다. 첫날부터 내장산을 선택한 것은 새해지만 찾아갈 곳도, 만날 부모님도 안 계시기 때문이다. 헛헛한 가슴을 채워줄 대상이 필요했다. 시골집은 빈집이 되어 숨이 멎은 채 냉기만 뿜고 있어 갈 수가 없었다.


내장산 안에 있는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 영은 대사가 세워 ‘영은사’라 불렸었는데, 조선 중종 때 사찰 철폐령에 따라 불태워졌다고(1539년) 한다. 명종 때(1567년) 회묵 대사가 법당을 짓고, 정조 때(1779년) 영담 대사가 대웅전을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고 한다.


내장산도 ‘영은산’이라고 불렸지만, 산 안에 감춰진 게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에서 ‘내장산(內藏山) 산’이라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장산은 단풍이 고와 조선 8경에 속한다. 백악기 말의 화산암인 절리(節理)도 유명하고 산 경사면에는 애추(崖錐)도 발달되었다. 그 외에 신선봉을 비롯한 장군봉, 연지봉,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령봉, 까치봉, 문필봉이 거리이다.


그 많은 정보를 가지고도 난 주차장에서부터 내장산 단풍터널을 거쳐 바로 신성봉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폭설이 내렸기 때문에 산의 풍경을 볼 수 없었다. 눈은 볼거리와 외면하고 싶은 풍경까지 모두 덮어버렸다. 그래서 무조건 다른 사람이 낸 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낭떠러지나 움푹 파인 위험한 곳도 볼 수 없으니 엇나가는 발걸음을 모아야 했다.


풍경이 눈에 가리어졌으니 아무리 아름다운 산일 지라도 그저 산에 불과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용굴’이었다. 산행 코스가 아니라 그냥 지나치고 싶었는데 ‘조선왕조실록 보존 터’라는 말에 눈길이 갔다.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장산 단풍길 전경>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네 군데 나누어서 보관했었다. 춘추관, 성주, 충주, 전주 사고에 보관했었는데 전주 사고만 빼고 모두 불타버렸다. 오직 전주 사고에 보관된 실록만 보존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정읍의 선비들이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손홍록이라는 선비는 왜군이 전주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주 사고의 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산으로 옮겼고, 내장산 안에서도 용굴암, 은봉암, 비래암 터로 이동하여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내장산 용굴-조선왕조실록 보관 터>

여기서 잠깐, 사비를 털어 실록을 옮겼을 유림의 충정을 생각하다가 어제 막 끝낸 의병장에 관한 소설로 돌아갔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도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개인과 사회를 위한 ‘성찰적 분노’를 하고도 왜 그게 온전히 와 닿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망한 소설이 아닌가.


‘나라’를 지킨다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 중이다. 중편 소설이 완성되는 내내 딱따구리처럼 내 머릿속을 쪼는 생각. 과연 나는 외세의 침입을 받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 재산과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해서였는지 나라를 위해 실록을 옮겼던 선비들의 마음이 더 거룩하게 느껴졌다.


산행을 하는 5시간 가까운 시간, 산행을 끝내고 글을 정리하는 지금이 이 순간까지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은 외적의 침입으로 의병장처럼 목숨 걸고 싸우는 시대는 아니다. 적은 바로 ‘나’이다.


경쟁이 심한 시대에 자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가끔 나를 감당하기 어려워 쩔쩔맨다. 산행할 때마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해도 그 결심은 말 한마디로 금세 묽은 것이 된다. 탄탄하지 못한 나의 세계가 금방 무너져 내린다. 산행할 때처럼 숨이 턱턱 막힌다. 길을 앞에 두고도 헤매는 꼴이 된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 지키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나는 생을 살면서 나를 위해 무엇을 지키고 싶을까? 막연한 생각이어서 그랬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사는 동안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자존심’이다. 나는 자존감은 낮으면서 자존심은 세다. 어떤 사람은 나 같은 부류를 열등감이 심한 사람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내 안에 응축된 콤플렉스가 자존심을 세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자존심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남이 내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건 또 무엇일까? 그건 내 삶에 대해 함부로 농담하거나 비꼬지 않는 게 아닐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거나 모든 사람이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은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에 포함된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용굴 앞에 길쭉하고 날카로운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최근 내 삶에 날카롭고 위협적인 자세로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있다. 딱히 친하지도 그렇다고 친하지 않다고도 말하지 못하는 상대가 차갑게 군다. 나와 달리 차가운 영역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특징이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만 내 삶에 대해 참견하고 농담을 한다. 난 농담이라는 것은 서로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뢰가 없으면 그건 우스갯소리를 넘어서 모독이 된다. 삶의 풍경을 바뀌게 한다.


맵찬 겨울바람 같은 사람이 한번 스치면 내 자존심은 무너져버린다. 흐물거리는 자존심 때문에 마음이 상해 그동안 겨우겨우 쌓아놓았던 자존감까지 증발한다. 불쾌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천성이 공격적인 사람이라 피하게 된다. 어쩌면 이 또한 내가 못나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새해가 되었지만 올해의 삶도 작년처럼 힘들 것이 예상된다. 올해의 목표는 소설을 더 열심히 쓰겠다고 말했으나 인물들이 살아있지 않고 조형물처럼 딱딱하게 군다. 정상에 오를수록 잔가지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미끄러져 발걸음이 엉켰다. 생각도 엉켰다. 산행하는 시간 내내 생각에 집중하며 답을 찾으려 했지만, 눈이 풍경을 가렸듯 생각 위에 ‘생각’이 눈처럼 쌓여 버린다.

<내장산 9봉 중 하나인 신선봉, 해발 763미터>

산은 가끔 이렇게 내게 더 많은 고민을 준다. 대숲이라도 있으면 임금님은 당나귀처럼 시원하게 흉을 보고 싶지만, 그마저도 안 된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자존심이라고 말하지만, 자존감이 낮으므로 자존심을 들먹거리는 것은 아닌지. 마음껏 욕하고 네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내가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내장산(內藏山)에 와서 산 깊숙이 숨어있는 것들을 봐야 하는데 내장(內障)만 깊어진 날이 된 것 같다.



* 산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나 안내문을 참고하였음


* 내장(內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번뇌의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