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린다. 집을 나섰을 때 약간 흐리기는 했었다. 그런데 광주에 들어서자마자 이슬비가 내렸다. 집을 나온 뒤라 다시 돌아가기도 뻘쭘했고, 이왕 나온 김에 걷자는 생각에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릴 것 같지도 않았다.
어등산 정상인 석봉은 해발 338m밖에 안 되지만 낮은 산에 비교해 가파른 편이다. 우선 광주 여대 입구에서 오르는 길에는 167개의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절반은 산을 탄 것처럼 숨이 차다. 계단을 오르면 팔각정이 보이고 팔각정에서 약수터로 가는 길은 완만한 편이다. 약수터 입구인 절골 사거리에서 석봉에 이르기까지는 거의 오르막길이다.
<어등산 입구에 있는 167 계단>
대부분 사람은 어등산 입구에서 약수터까지만 걷는다. 그런데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어등산은 쉬운 산이다’. 물론 내가 그들의 말에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대부분이 석봉이 아닌 약수터까지만 가보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약간 억울한 면이 있다. 남들이 뭐라 하건 상관없는 일이지만 어등산은 내게 ‘단골 산’이다.
광주에서 자주 가는 산은 무등산과 어등산이다. 무등산은 사는 곳에서 멀기 때문에 한 번씩 가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어등산은 집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
<절골 사거리를 지나 석봉으로 가는 길>
지금은 광주여자대학교 입구 쪽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예전에 그곳에는 낡은 포장마차가 있었다. 칡즙이나 라면, 국수나 붕어빵도 팔았고 무등산 막걸리를 파는 곳도 있었다. 포장마차 옆에는 그 주변 지역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아침부터 밭에서 캐온 감자나 배추 같은 것들도 팔았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시장을 봐가는 맛도 쏠쏠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오누이가 했던 포장 마차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산행을 끝내고 지인들과 먹는 막걸리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막걸리는 마트에서나 다른 산 밑에서든 얼마든 구할 수 있는 품목이다. 하지만 50대 중반의 주인 여자가 담근 묵은 김치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만큼 새콤달콤했다. 막걸리보다는 김치 맛을 보러 간다고 말해야 한다. 게다가 두 사람이 얼마나 친절한지 모른다. 손님과 주인으로 만난 사이지만 가게에 들르지 않아도 인사를 나눌 정도로 친분이 쌓였었다.
몇 년 전 팔각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으나 팔각정에서 말다툼이 일어났고 그걸 신고하려다가 칼에 찔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또 그즈음에 제주도에서도 혼자 걷던 관광객이 피살된 사건이 있었다. 두 사건의 여파는 컸다. 나 같이 혼자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민감한 문제였다. 결국, 한동안 산을 타지 못했다. 또 광주에서 장성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어등산을 가지 못했었다.
다시 어등산에 갔을 때, 단골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아파트가 생겼다. 보기만 해도 비싸 보이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보자 사람들이 왜 산을 개발하는 걸 반대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점은 여러 번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곳이 바뀌는 순간 더 공감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포장마차의 주인은 오누이가 아니라 부부였다. 남자가 연하였기 때문에 그걸 감지하지 못했었다. 그걸 안다고 해도 바뀌는 사실은 없었으나 내가 그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친분을 쌓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게를 차렸지만, 문을 닫았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 뒤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
요즘에 또 어등산을 자주 가게 되는데 나는 그때마다 포장마차가 있었던 곳을 짐작하며 여기쯤이냐며 중얼거린다. 없어진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마음속에서는 지난날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나 보다. 아니면 촌스럽게 한낱 바람 같은 추억 거리를 나 혼자만 쌓아놓고 살지는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 봐도 추억은 추억이다. 예쁘고 좋았던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다.
가끔 포장마차처럼 단골집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많고 많은 가게 중에 꼭 그 집일 리는 없다. 다른 곳에 가면 더 맛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실내 장식이 좋거나 주인이 더 친절할 수도 있다. 왜 단골집이 좋냐고 물으면 산에 올랐던 ‘시간과 추억’까지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장소애'가스민 곳이다.
단골집이라 부르는 것은 아무 곳이나 할 수 없다. 특히 나같이 까다로운 사람한테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단골집이라 부르는 집은 대부분 음식 맛도 좋지만 친절하거나 하나 같이 고생하며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이다.그들의 말은 거칠지만, 속에는 정이 듬뿍 묻어 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법도 없다. 작은 친절만 베풀어도 금세 모든 걸 내줄 정도로 마음을 연다.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그런 사람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며 서로 토닥여주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시인인 류시화 시인이 그랬던가? ‘지금 알고 있던 걸 그때도 알았다면.’이라는 말로 기억한다. 나도 그렇다.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다정했더라면 좋았을걸. 그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걸 좋아했는지 물어볼걸. 수많은 생각이 미련으로 남는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거나 모든 사람의 사연을 듣는 건 꽤 괴로운 일이겠지만 난 아직도 어등산을 오를 때마다 그들이 생각난다.
단골 산에서 단골집을 잃었다.
다시는 오누이를 못 보겠지만 어디서든 잘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그런 미련들과 아쉬움이 이슬비가 폭우가 되어도 참고 어등산을 오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