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07, 조계산
정상, 그 언저리
소백산 끝자락에 솟아 있는 조계산은 해발 884미터의 산이라고 한다. 동쪽 기슭에는 선암사가 있고, 송광사로 가는 길도 있다. 이번에는 조계산 정상에 오르려 했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미뤄야 했다. 그런데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지인이 산 정상 언저리에 보리밥집이 있는데 거기에 가는 길도 1시간쯤 걸어야 하니 가보라고 했다. 1시간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바로 순천으로 달렸다.
순천시 송광면 장안 마을에 차로 끝까지 가다 보면 중간쯤에 이정표가 있다고 했다. SUV 차량은 보리밥집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일반 승용차는 거기서부터 걸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산행 대신이다.
장안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했다. 차를 주차하고 내렸을 때, 가장 눈에 띈 건 개울물이었다. 마을은 개울 물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갈라진 상태였는데 수백 년, 수천 년 흘렀을 개울물 소리에 경건해졌다. 게다가 물이 부족한 사주이니 물을 좋아하는데 먼 산까지 가지 않아도 주변 풍경은 이미 정상에 있는 듯 편안하고 상쾌했다.
가을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감나무에 감이 열려 있었다. 게다가 마을 담에 핀 줄기 식물도 볼만했다. 다들 가을걷이하러 나갔는지 동네는 인기척이 없었다. 사람의 발걸음이 그리운 강아지들만이 짖어댔다.
<장안마을 입근>
마을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가니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였다. 갈림길에서 한 번 망설였는데, 그 길을 지나니 오로지 한 길만 보였다. 길도 포장이 된 거라서 걷는 데 편했다. 이정표도 없어 어디만큼 갔는지 어디에 있는지 조금은 불안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선명한 길 때문에 그러한 불안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처음에 가졌던 희망과 편안함은 금세 사라졌다. 그러자 서서히 불안이 다시 솟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길로 가야 했는지, 이렇게 먼 거리라면 어떻게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는지 등등. 불만이 쌓이니 걷는 길도 편하지 않았다. 괜히 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조계산 보리밥 아랫집’은 산 중턱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보리밥을 파는 집이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왔던 집이란다. 등산도 식후경 편에 소개되었는데 파전과 도토리묵, 보리밥 등이 소개되어 인기가 많았었다고 한다. 나는 혼자 왔기 때문에 이것저것 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보리밥만 시켜서 먹었다.
보리와 잡곡이 섞인 밥에 도라지 무침, 콩나물무침, 열무물김치 등 11가지 반찬과 된장국이 나왔다. 밥은 일반 보리밥집에서 먹는 정도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산 중턱에서, 평상 위에서, 탁자도 없이 쟁반째 그냥 내려놓고 숲 속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이 집의 밥은 밥맛이 아니라 어쩌면 풍경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근처 밭에서 기른 채소로 김치와 채소를 대신하니 건강식이겠지.
밥 먹으러 가는 길 1시간, 밥 먹는 시간 10분, 다시 내려오는 길 55분. 게다가 장성에서 순천까지 왕복 3시간을 생각하면 차라리 인근 산에 가도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갔다 오니 그동안 체증을 앓아온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황량하다. 나도 올해 글 농사를 망친 것 같아 우울했다. 등단까지 했으면서 또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글을 향한 도전이 거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이 길을 맞게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그건 그냥 말일뿐이다. 물론 작가가 어떤 대가를 바라고 글을 쓴다거나 지인들이 하는 말이 선의의 거짓말일 수도 있다. 글에 대한 내 자부심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농사꾼에서 농산물은 한해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이다. 그보다 더 깊은 세월의 증거일 수도 있다. 글 쓰는 작가에게는 글이 그 증거가 된다. 누가 인정하든 안 하든 쓰면 되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작가인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는 때가 있다. 작가의 길에 대한 확고한 생각에도 온기가 없다. 글을 쓰다가 스스로 지쳐 우울해하거나 쓴 소설을 다 불살라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우울과 충동을 잠재울 수 있는 건 보상이 아닐까?
농사꾼이 농사를 지을 때 큰 것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정성을 쏟은 만큼 잘 자라주고 수확물이 생기는 걸 바란다. 평생 농사꾼의 딸이었으니 직접 큰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사꾼의 마음을 잘 안다. 나도 글을 짓는 글 농사꾼으로 내 글에 대한 결실을 다시 한번 맞보고 싶다.
대단히 큰 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네가 가는 길이 네 길이고, 지금까지 잘 걸어왔고, 앞으로도 이 길을 따라 쭉 가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 싶을 뿐이다. 아직은 가을걷이를 하기에는 미숙했는지 소식이 없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든 생각은 보리밥집이 있다는 걸 알고 걷는 길은 설렜으며, 길이 나오지 않을 때는 두렵기도 했다. 분명 길은 나 있는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서 불안했고, 마지막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허탈함이 잠시 밀려왔지만 길을 맞게 찾아왔다는 생각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길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편백숲을 걷는 재미도 쏠쏠했고 은행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도 온몸으로 스며들어 기분이 좋아졌을 것이다.
<보리밥집 >
오늘 나는 다시 글을 쓴다. 결실은 보지 못하더라도 오늘 갔던 정상 언저리처럼 정상에 닿아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그 기대 때문에 다시 쓸 힘을 얻는다. 다음에는 진짜 조계산 정상을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