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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Oct 21. 2022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20, 함양 황석산

전설과 괴담 사이

  특정한 곳에 갈 때,

  낯선 곳에 갈 때,

  익숙한 곳에 갈 때 등.

  문득 이상한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청각과 후각이 예민한 탓도 있으나 장소마다 특이한 기운이 느껴진다.      


  함양 황석산은 안의면과 사하면의 경계에 있으며, 삼국시대에 쌓은 전북 진안과 장수로 가는 길목에 산성이 있다. 조선 시대 정유재란 때는 이곳 황석산성에서 함양군수 조종도와 안의 현감 곽준 등이 왜적과 격전을 벌여 500여 명이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피바위의 전설,

  황석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피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선조 30년 정유년(1597년)에 조선을 다시 침략한 왜군의 가또, 구로다 등이 황석산을 공격해 왔다. 이때 안의 현감 곽준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는 고을의 주민들을 모아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한다.      


  고을 사람들은 활과 창칼, 투석전으로 격전을 벌였으나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만다. 이때 여인들도 나서서 돌을 나르며 부서진 병기를 손질하는 등 함께 싸웠다. 황석산성이 함락되자 여인들은 왜적의 칼날에 죽임을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는 쪽을 택한다.      

  높고 높은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 그 바위 일대가 피바다가 되었다고 해서 전해지는 피바위의 전설. 그들의 피가 바위에 새겨져 아직까지도 그 흔적이 남았다고 해서 피바위라고 한단다.     


  전설 때문인가, 피바위 앞을 지나는데 서늘하고 묵직한 기운이 발목을 잡았다. 마치 누군가가 내 발목을 붙잡고 멈춰서서 자신을 봐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 동안 서 있다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마친 후에야 벗어날 수 있었다.


  “죽음은 개인 자신이 인륜적 공동체를 위해서 떠맡는 완성이자 최고의 노동이다.”라는 헤겔의 문장을 읽고 만난 전설이라 죽음과 공동체에 대한 물음이 더 깊어졌다.      


  나는 요즘 ‘나’에 빠져 있다. 매우 친절한 과에 속하는 내가 친절을 포기하고 나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친절할 때도 나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욱더 ‘나’를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타인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미로 속을 걷는 길과 같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건 늘 깨닫게 되는 사실인데도 늘 잊게 되는 사실 중 하나이다.


  함양 우전마을 사방댐에서 피바위 쪽으로 올라 정상 가는 만나게 되는 황석산의 매력은 산성인 것 같다. 홀로 존재했던 돌이 함께해 산성이 되었을 것인데, 산성이 어찌나 단단하고 튼튼히 쌓였는지 잘 닦인 고속도로를 걷는 느낌이었다. 돌을 하나하나 쌓으면서 들어갔을 정성을 생각하면 마치 내 손가락이 돌에 찧은 것처럼 아픔이 밀려온다.      


  지금 나도 농사 지을 손으로 돌담을 쌓으며 세금에 폭리 당하는 백성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기록에 남은 것을 참고로 소설을 쓰는 중이지만, 쓰면서도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선의를 베풀거나 내가 아닌 나라를 위해 성을 쌓고 싸우는 일은 내게는 너무 먼 당신이다. 나는 나라가 전쟁이 일어났을 때 과연 목숨 걸고 싸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거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과거의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꽤 즐긴다.     


  어렸을 적 ‘전설의 고향’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신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서우면 안 보면 될 것을 굳이 이불 밖으로 두 눈만 내놓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 꽤 쾌감을 느낀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이상하게 나는 전설이나 민담을 들으면 마치 그 일을 내가 겪은 것처럼 감정이 동일시되어 가슴이 저린다.     


  예전에도 말했듯 나는 산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마다 누군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기록에 남은 역적이다. 역사란 게 승리자의 기록이고, 패배자는 역적으로 남는다. 그 역적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며 소설을 쓰는데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역적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모임을 잘 하지 않는다. ‘안’하는 것은 ‘못’하므로 포기하고 하지 않는 거다.

 학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쉬는 날이 맞지 않고, 퇴근 시간도 안 맞다.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은 한참 일할 때라 부르면 달려가기 쉽지 않다. 그래도 좋은 기운을 얻고자 몇 번 수업을 빠지고 달려간 적이 있으나 모든 게 시절 인연이라고 그 인연도 끝이 났다.     


  만남이 자연스러웠듯 끝도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끝은 항상 진통이 따른다. 무리에서 나왔으니 언제부턴가 나는 역적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내 선택이 옳은 것 같다. 무리이기 때문에 나보다 현명한 판단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인정하면서도 서운한 것은 그 판단이 내게는 무리를 지어 권력을 만드는 일로 보였다. 나는 그들의 권력에 따를 수 없고 휩쓸리기 싫었다.     


  무리에서 나온 나는 숱한 괴담에 시달린다는 착각이 든다. 함께 있을 때는 모임이 전설이 될 수 있으나 혼자라면 괴담을 만들기 좋다. 그건 어디에든 있는 일이니까. 한동안 내가 괴담의 주인공이 될까 봐 불안했고, 그들이 원망스러워 잠을 설쳤다. 그들 틈에 아름다운 전설로 남을 것인지 망설이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발길을 돌렸으나 지금은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정유재란으로 돌아가 보면 그 당시에 피바위는 괴담으로 번졌을 것이다. 수많은 영혼의 핏자국이 낭자한 산길을 오른다는 것은 전설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괴담이 퍼진 그 길을 건너지 못하고 돌아가거나 아예 포기하며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피멍이 들고 밤마다 찾아오는 불쌍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울었고, 그 울음은 산짐승의 울음과 섞여 괴상한 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괴상함이 시간이 흘러 흘러 잊히게 되고, 전설이 되면서 다시 그 길을 추앙하며 죽은 사람들이 남긴 정신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았을까?     


  황석산성을 지나 황석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내 머릿속에는 온통 전설과 괴담만 존재했다.     


  황석산 정상은 꽤 가파르고 사진을 찍기에도 위험하다. 정상석 바로 밑이 낭떠러지라 발을 헛디디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겨우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밧줄을 잡았다가 그만 밧줄이 벗겨진 쇠 부분에 손가락 세 개를 다치고 말았다. 순간 번개 같은 통증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다친 부분보다는 쇠밧줄에 쓸린 느낌이 더 끔찍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손가락은 아팠으나 해발 1192m에서 김밥을 먹었다. 해발 고도 높은 곳에서 비를 맞고 김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오늘 비가 내려 잠깐 고민했으나 산을 올랐던 이유는 전설 때문이었다. 피바위의 전설이 아니었다면 비 오는 데, 굳이 산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에 응어리진 감정을 풀고 김밥까지 먹으니 내 문제에서 더는 그들과의 이별이 전설이든 괴담이든 의미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4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서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고 온전히 그 문제에 집중하는 일은 산이 최고의 방법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산을 오를 때마다 한 짐의 고민거리를 들고나온다. 노력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그냥 괄호로 묶어두고 나중에 생각하거나 그냥 묵혀 두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산이라야 가능하다. 그건 죽도록 몸을 힘들게 해서 얻어지는 포기에서 비롯된 생각들이 해답이기 때문이다.          


*산에 대한 정보는 표지판이나 네이버를 보고 참고 했음

*코스 : 함양 우전마을 사방댐-> 피바위-> 황석 산성-> 건물지-> 정상 -> 회귀

*블랙야크 100대 명산 : 100분의 29

*소요시간 : 약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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