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에 위치한 산이다. 최고봉인 상왕봉은 해발 1430미터이며, 소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우두산이라고도 불렀다.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고대 국가인 가야의 가장 높고 훌륭한 산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만물상 가는 길
가야산을 가기로 할 때마다 이상하게 취소되었다. 친구랑 약속한 지 거의 1년 만에 성사되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와 장성에 사는 내가 시간을 맞추는 게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혼자 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혼자 갈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예전의 속리산의 경우에는 혼자 갔었다. 그때는 혼자라도 괜찮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가야산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둘 다 처음 가 본 산이지만 느낌은 달랐다.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 주차를 하고 만물상 코스로 갔다. 만물상 코스는 기묘한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어느 글에서는 조선시대 '택리지'를 쓴 이중환이 만물상을 석화(돌로 만든 꽃)라고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만물상 코스는 바위, 꽃이 피었다. 바위와 바위틈을 비집고 우뚝 솟은 소나무도 있었다. 바위의 굳센 힘과 소나무의 굳센 힘이 합쳐져 바위들이 소뿔처럼 보였다.
그런데 워낙 코스가 험하다 보니 안전에 힘써야 했다. 1972년에 가야산은 국립공원이 되었는데 만물상 코스는 2010년에야 개방되었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서였는데 말 그대로 이 코스는 바위가 너무 많아 단단한 등산화를 신었는데도 발바닥이 아팠다. 바위 산은 바위꽃을 보는 눈은 즐거우나 발은 힘들었다.
등산을 하려면 발, 특히 발바닥과 앞 발톱이 중요하다. 온몸의 힘을 싣기 때문에 오래 걸으면 발바닥부터 발가락이 아파 걷는 게 힘들다. 특히 바위가 많은 산은 더더욱 힘들다.
만물상의 바위, 꽃
어려운 만물상 코스를 지나니 상아덤이 있었다. 상아덤은 상아(달에 산다는 미인)와 바위를 뜻하는 덤이 합쳐진 말이다. 상아덤을 지나 서장대를 거쳐 칠불봉과 상왕봉에 올랐다. 상왕봉 옆에는 우비정이라는 우물도 있었다. 우비정은 가야산 19명 소 중의 하나이다.
상왕봉에 있는 우비정
상왕봉 밑에 있는 칠불봉에는 가야 건국 신화가 전해져 온다. 가야산은 예부터 정견모주라는 산신이 머무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정견모주는 천신인 이비하에 감응되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고, 뇌질청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김수로왕이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 중 한 명은 허황후의 오빠인 자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 칠불봉 밑에서 도를 닦았다는 전설도 있다.
대가야의 전설이 내려오는 칠불봉
내려올 때는 서성재를 거쳐 백운암지 쪽으로 왔다. 만물상에 비해 길이 잘 닦여졌고, 그토록 애타게 찾던 엘레지도 봤다. 처음에는 하나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군락지였다.
엘레지 군락지
내려오는 내내 꽃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백운암지는 가야산에 있던 사찰에 부속된 암자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한다. 백운암지의 창건 시기와 폐사 시기는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알 수가 없으나 군데군데 남아 있던 와편과 분청사기 등이 이 자리에 암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백운암지
총 산행 시간은 6시간 30분이다. 남들보다 더딘 것 같지만 바위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노라면 빨리 갈 수 없는 산이었다. 하지만 다시 가도 질리지 않을 것 같고, 갔다 온 지 한 달 정도 되어 가지만 아직도 만물상 바위들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가야산을 가기 전까지, 가는 동안, 갔다 오고 나서의 모든 과정이 이토록 오래 걸린 산도 없다. 사람으로 치자면 다가가고 싶지만 망설여지고, 만나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두고두고 생각나는 사람 같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마 최근에 내 책을 보내준 사람 중의 한 명일 것 같다.
이번에 책을 출간하면서(금파: 조선의 마지막 소리) 정말 소중한 사람한테만 책을 보냈다. 물론 소중하지만 책이 부족하여 다 보내지 못한 사람도 있다. 책을 보내는 순서는 내 첫 책을 읽어준 사람, 소설 쓰는데 조언을 해준 사람, 작품을 읽어주며 격려를 해 준 사람, 첫 책을 읽어준 사람 등등이다.
첫 작품과 달리 두 번째 책을 보낼 사람을 생각하니 그동안 내가 아는 사람들이 참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장편 공모전에서 큰 상을 받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전국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산이 제일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정상인 상왕봉
산행의 단점은 '시간'이다. 특히나 가야산처럼 이동 시간과 산행 시간이 오래 걸리면 하루를 온종일 써야 한다. 읽어야 할 책이나 다음날 수업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길을 나서는 게 쉽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시간이라는 점도 발목을 붙잡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굳이 모든 걸 감수하고 길을 나서는 것은 산행을 하는 시간이 내게는 염원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너는 잘 될 수밖에 없어."
친구가 바위나 나무, 산 정상에 오르면 무조건 비는 내게 한 말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요즘 뭔가에 빌게 되는데 그 안에는 간절함도 있지만 산 앞에서는 겸손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마음들이 모여 잘 되지 않았겠느냐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산행 내내 소원을 빌고 또 빌고 또 빈다.
한번 산을 오르면 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 끝없는 반복과 절대 한 걸음 한 걸음 오르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걸, 그 뻔한 걸 산은 몸으로 일깨워 준다. 그러니 어찌 산을 오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