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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Jul 22.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15, 덕유산

마음이 가난한 자

  산에 가기 전 블로그를 먼저 찾아본다. 자주 가는 산은 모르지만 낯선 산은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 블로그의 정보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꼼꼼하게 기록된 것도 있지만 잘못된 기록도 많아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자기중심적으로 기록하다 보니 등반 시간이 다른 것도 있고, 코스를 잘못 기록한 것도 많다. 그 사실을 알고 ‘예측’하다 보니 정보를 활용해 나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의 산이라 하여 붙여진 덕유산. 경상남도 거창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과 설천면의 경계에 솟아 있으며 향적봉이 있는 북덕유산과 남덕유산으로 나뉜다고 한다.


  덕유산은 최고봉인 향적봉이 1614m라고 한다. 아무리 검색해봐도 7시간 코스였다. 무주까지 갔다 왔다 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를 다 써야 해서 망설여졌다. 뒷날은 수업도 많아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고민 끝에 가기로 했다. 10시간 정도의 고민거리를 끌고서.      

<구천동 33경의 일부>


  나는 한 자리에서 10년이 넘게 학원을 운영했다. 프랜차이즈 학원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나는 상대를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잘 안다는 식의 전화도 받아봤고, 자기네 학원과 결합해서 할인도 해주면서 상부상조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전화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다. 그게 반복이 되다 보니 알려진다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친절해야 하는 직업이니 친절이 몸에 배어 있는데 그걸 또 오해해서 내가 마냥 착한 사람일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전주 터미널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는 혼자 가는 위험하다며 휴가를 내고 동행해 주었다. 친구를 만나 무주구천동 야영장으로 갔다. 산 입구에 마트 하나가 있는데 5천 원만 주면 종일 주차를 할 수 있다.     


  주차하고 구천동 탐방 지원센터를 지나면 구천동의 33경을 구경할 수 있다. 사주를 볼 때 내게는 물이 부족하다고 했었다. 물을 자주 보거나 물소리를 듣기 위해 집 안에 어항을 두라는 말을 들었다. 사주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 뒤로는 유독 산에 오를 때마다 물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구천동 계곡은 비가 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물소리가 명쾌했다. 물속에 있는 돌 하나, 물고기 한 마리가 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구천동의 33경중 일부>



  33경을 지나 백련사에 오를 때까지도 산책길이 잘 나 있었다. 속리산에서 세조의 길에서부터 세심정까지 가는 길을 닮았다. 계곡을 중심으로 한쪽은 도로이고, 한쪽은 산책길이다. 나는 도로보다는 산책길을 선택한다. 숲에서만 맡을 수 있는 상쾌함과 야생화를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련사를 지나 정상인 향적봉까지도 길이 잘 나 있었다. 거의 계단으로 이루어졌는데 너무 무난해서 살짝 지루했다. 산이란 능선을 타기도 하고 돌이나 흙길을 밟으며 언덕을 올라야 한다. 덕유산은 그런 것도 없이 거의 계단이었다. 돌길은 거의 정상에 오르기 100m 정도만 되어 있었다.


  올라가는 데까지 3시간 30분이 걸렸다. 위험한 산이 아니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10시간분의 고민거리가 담겨있기 때문에 머리가 무거웠다. 등산 가방에 있는 간식을 빼먹듯 고민거리를 하나하나 빼다 보니 머릿속이 가벼워졌다.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고지대에서 만난 야생화>


  오늘의 고민은 ‘마음이 가난한 자’이다. 스토커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결론은 그들이 마음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 말했던 사람들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내 정보를 알고 아는 체하는 사람은 모른척해도 상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잊을 수 있다. 그래도 자꾸 연락하면 차단이라는 최후의 방법도 있다.


  인간관계의 문제는 꼭 잘 아는 사람으로 시작된다.     


  최근에 어떤 이, 적당한 사회적 위치가 있고, 적당한 재산도 가진 사람 때문에 고민이다. 그는 항상 나를 보면 물질적인 것을 원한다. 내 신조는 ‘가난해도 가난하게 보이지 말자’이다. 가난한 티를 내면 비굴해질 뿐만 아니라 가난하게 행동하게 된다. 그렇다고 분수에 맞지 않게 산 적도 없다. 가난이라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꾸만  돈이 있어도 남에게 빌붙으려 한다. 그게 싫어서 있는 척할 뿐인데 돈이 많은 줄 알고 무조건 사달라고 한다. 의도를 알고 난 후 그 사람을 만나기가 거북스러워졌다.


  또 다른 이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만나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생각은 자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면 먼저 잘해주고 싶고, 그들의 사정을 알기 때문에 먼저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싫다. 그건 내 선택이다. 그들을 만날 때 그 선택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이 싫어서(이건 오지랖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만나기가 조심스럽다.


  향적봉에 오르는 동안 아무리 그들을 대할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향적봉 앞에서 점심을 먹었다. 까마귀 두 마리가 날아와 같이 해주었다. 그런데 밥을 먹다 보니 어디선가 우리가 온 쪽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부분 등산복도 입지 않고 운동화 차림에 물병 하나만 달랑 들고 올라왔다. 곤돌라를 타고 온 사람이었다.     

<향적봉에서 만난 까마귀>


  그들은 사진만 찍고 다시 내려갔다. 하산하는 길도 3시간 이상 걸려야 한다는 생각에 잠깐 1분 정도 고민했다. 쉽게 내려가는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해? 그러다가 다시 회귀하기로 했다. 산에 온 목적이 쉽게 오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동안 남은 고민거리를 풀었다.     


  고민거리를 풀었으나 풀리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다시 묶었다.      


  다음 산행에는 두고 가고 싶다. 도전하고 있는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다 올라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산 정상에서 곤돌라를 타고 싶듯 가끔은 인간관계에서도 빠른 길을 찾고 싶다. 빠른 만큼 부작용도 클 것이다. 알면서도 가끔은 요행을 꿈꾼다.     

<정상인 향적봉 1614미터>


*덕유산에 관한 정보는 네이버를 참고했음.

*코스 : 무주구천동 야영장 -> 구천동 탐방 지원 센터 -> 인월담 -> 호탄암 -> 구천폭포-> 백련사-> 향적봉-> 회귀

* 소요시간 : 7시간

*블랙야크 100대 명산 도전 : 100분의 23

* 산의 특징 : 구천동에서 백련사까지는 계곡의 맛,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는 계단의 맛. 소요시간만 많이 걸렸지 산행하기 좋은 조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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