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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Jul 06.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14, 계룡산

'관계'없는 관계 맺기

  일과 소설 쓰기에 집중하는 날에는 유독 우울함이 찾아온다. 소설은 쓰면 쓸수록 마음이 곤궁해진다. 영혼의 바닥까지 훑어서 글로 남기는 것 같아 매번 내가 닳아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우울을 겪지 않기 위해 소설 쓰기를 중단하면 그 또한 우울함이 찾아온다. 어느 쪽을 택하는 내게 소설은 우울이다. 그 우울을 사랑한다. 우울을 사랑하다니? 간혹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이해 못 할 지점이라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요즘에는 금요일에 비가 자주 온다. 금요일이 쉬는 날이라 산으로 가려한다. 비는 혼자 다니는 내 다리를 묶으려 한다. 빗속을 뚫고 혼자 산행하기라는 여간 쉽지 않다. 안개 때문이다.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짙어지는 안개 때문에 우중 산행은 망설이게 된다. 다행히 이번에는 친구가 동행해주기로 했다. 지난번 속리산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게 아직도 미안함으로 남아 있어나 보다.

  “나는 오늘 도를 닦으러 산에 갑니다. 제가 속리산에서 5년, 지리산에서 3년, 계룡산에서 5년이나 도를 닦았습니다.”


  친구가 장난스레 개그 코너에서 나왔던 말을 했다. 나도 똑같이 따라 했다. 별말도 안 했는데도 둘은 죽이 맞아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는 밀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새롭게 시작하는 서울살이에 대해, 나는 새롭게 시작하는 소설에 대해 말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났던 것처럼 친근했다.


  계룡산은 충남 공주시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해 20여 개의 봉우리가 있고 전체 능선의 모양이 마치 닭 볏을 쓴 용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계룡산으로 불린다. 조선 시대에는 풍수지리상으로 한국의 4대 명산에 속해 이 산기슭에 도읍지를 건설하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정감록>에는 큰 변란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 했으며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도참사상으로 인해 한때 유사종교가 성행했으나 종교 정화 운동 이후인 1984년 이후에는 사라졌다고 한다.


  계룡산에서 도를 닦았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안개도 짙어지는 것 같았다. 산 중간중간에는 알 수 없는 방법들의 기도 흔적이 있었다. 나도 그런 흔적이 남은 곳에 돌을 얹고 기도를 했다.


  “난 요즘 세상이 싫다. 밉다. 사람들도 싫다. 밉다.”


  내 입에서 빗낱처럼 무뚝뚝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넌 원래 그러잖아. 세상을 따돌리고도 잘 사는 애는 너밖에 없어.”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 뒤에 계단 200개쯤 오를 시간만큼 이어지는 침묵.


  요즘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와 ‘특별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이다. 특별한 관계라는 것의 범위와 기준이 모호하다. 그렇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오랫동안 만나왔거나 나의 속사정을 알만한 사람들이다. 씨실과 날실처럼 엮인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었’이라는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요즘 그런 사람들을 피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피곤하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관계가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일일이 그들의 상황을 듣고, 이해하고, 걱정하고, 격려하고, 마음 쓰는 일이 싫어졌다.


  ‘이렇게 해줘 봤자 뭐가 남는데?’


  얄팍하고 얄미운 또 다른 ‘나’는 자꾸만 나와 친구들을 이간질했다. 나는 그런 걸 뻔히 알면서도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알고 있었다는 것은 오만이며, 오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내 탓이 크다.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기대가 꺾이자 세상이, 사람이 시큰둥해져 거리를 두었다.


  행복은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하고 싶다. 관계가 좋아야 행복한 것 같다. 물론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야 많겠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좋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일과 소설에 대한 집중으로 오는 우울은 어쩌면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는 나의 과거와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을 만난다.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절대 과거의 나를, 내가 그들의 과거를 이해하거나 현재와 비교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 만나고 내일은 잊고 다시 만나더라도 그게 ‘과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시 현재가 되어 가벼운 일상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간다. 뒤돌아서도 절대 미련이 남지 않거나 걱정하는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만났을 때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묵은 감정도 필요 없다.


  계룡산 주차장 입구(동학사)에서 시작된 산행은 은선폭포를 지나 관음봉까지 이어졌다. 봉우리가 많았으나 오늘의 목표는 관음봉까지였다. 다시 회귀하는 길에도 이야기보다는 침묵이 이어졌다.


   7시간여의 산행을 마치고 든 생각은 관계란 시간의 흐름이 아닌 만남의 깊이다, 그런 깊은 샘물을 스스로 틀어막았으니 나는 나쁜 사람인가, 이기적인 사람인가, 지난번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해결 못했는가, 해결 못 할 만큼 어렵거나 의지가 없는가,였다.


  도인 행세를 하며 도를 닦으러 계룡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도를 닦았을까?


  그들이 찾고자 했던 답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이유로 도를 닦으러 왔을까?


  내 안의 고민과 함께 쉼터에서 쉬는 동안 계룡산으로 눈을 돌리자 수많은 질문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도를 아십니까?라는 소리가 빗물처럼 스며들었다.


*산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를 참고했음


*코스: 동학사 주차장  -> 은선 폭포 -> 관음봉 ->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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