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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Jun 28.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13, 채계산

너와 같지 않다면?

  순창으로 주말마다 일하러 가지만 채계산은 처음이다. 강천산은 여러 번 간 적이 있으나 채계산은 생소했다. 수업 첫 타임이 취소되자 몇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우리나라 최장 출렁다리’가 있는 곳인 채계산을 가보기로 했다. 블로그를 검색했더니 소요 시간도 2시간 내외였다. 산행 후 바로 일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최근 조선 후기 명창인 김세종의 이야기를 쓰고 있어 선택했다. 또한, 내 고향이 고창이라 순창은 조금 친밀감이 들기도 했다.


  채계산(釵笄山)은 전북 순창에 있는 산이다. 적성 강변 일대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 달을 보며 창을 읊는 미인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풀이도 채(釵), 비녀이고 계(笄)도 비녀라는 뜻이다.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소리꾼들이 많이 나왔으며 그중에서 조선 말기 명창 이화중선이 유명하다고 한다. 수 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형상이어서 “책여산(册如山)”, 적성 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赤城山)”이라고도 불린다.

<채계산 입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입구에 섰다. 출렁다리 등산 코스는 총 5코스가 있는데 그중에서 선택해서 가면 된다. 나는 망설이다 제1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출렁다리를 지나 송대봉까지 갔다가 회귀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첫 시작은 계단부터 시작된다. 900여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출렁다리 입구가 보인다. 높이 75~90미터쯤에 자리 잡은 출렁다리는 길이가 270m 나 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라고 하니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잠깐, 사실 나는 흥미를 잃어버렸다. 출렁다리는 장성에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다른 곳에서도 많이 봤던 거였기 때문이다.


  국내 최장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순창군이 한 노력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출렁다리 때문에 섬진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강변과 들판도 볼 수 있었다. 그 위엄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나는 왜 이런 좋은 풍경을 두고도 시시하다고 생각했을까? 여행지에서 처음 겪는 일이다.

<출렁다리를 지나 송대봉으로 가는 길에서 본 풍경>


  아무리 생각해도 출렁다리에 대한 흠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나는 명성이 높은 채계산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와 상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도 그렇다.


  요즘 나는 지인에게 실망하여 미운 마음을 키웠다. 그 마음은 미움을 받고 쑥쑥 자라 절교하고 싶은 만큼 커져 버렸다. 딱히 다투는 일도 없었고, 이해관계가 엇갈려 갈등하는 일도 없었다. 거리가 멀어진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데도 나는 지인이 싫어 피했다.


  어떤 철학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니체인듯)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단절은 가장 큰 고통이다, 라는 식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문장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내 안의 갈등으로 인해 연락이 끊기고 그 단절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 감정이 든다고 해도 나는 결코 연락할 수가 없었다.


  아니 연락하지 않았다.


  여러 달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라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보고 살 수 있다면 좋으랴만 같은 지역에 살고 있고, 같은 일을 하고 있으므로 안 볼 수도 없는 사이이다.


  채계산에서 맛본 그 짧은 허무와 실망감이 온몸을 감쌀 때쯤, 생각 하나가 또 하나 떠올랐다. 나는 실망했다는 표현조차 쓰기 힘들어한다는 걸 말이다. 다들 좋다고 하니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괜스레 이상한 사람, 불평이 많은 사람, 괜한 트집을 잡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남에게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나’라서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면 좋은 거로 착각하고 살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좋네라고 훌훌 털어버리면 되는데 그 생각에 낚싯줄에 엮인 붕어처럼 떠오르는 다른 생각.


  ‘내가 실망했다고 하면 상대 쪽에서 널 비난하지 않을까?’


  '그냥 감동받은 척해?'


   바보 같은 생각이 줄줄이 이어져 더는 다른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송대봉으로 가는 길>


  채계산에는 많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중에서 나는 고려말 무신이었던 최영 장군의 전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영 장군이 무술을 익히며 장수군에서 화살을 쏜 뒤 채계산으로 달려왔다. 자신이 쏜 화살보다 말이 늦게 도착한 줄 알고 말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런데 화살이 바위에 꽂힌 걸 보고 경솔한 자신의 모습을 후회했다고 한다.


  아닌 것은 아닌 거라고 말하기로 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늘 제자리에 있다. 거절하는 것도 분명한 의사를 전달하기도 어렵다. 능력 밖의 일을 해주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해놓고도 그 약속을 지키려 전전긍긍한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줬을 때, 내게 돌아오는 것은 ‘칭찬’뿐이다. 칭찬을 듣자고 난 나를 너무 틀 안에 가두지는 않았을까? 그러다 보니 주변의 기대에 신경 쓰고 나도 모르게 남을, 여행지를, 누군가의 소설을 기대 이상으로 생각하고 기대에 차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았을까?


  이 또한 나의 경솔함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산행이었다.     

<채계산 송대봉>

*산에 대한 정보는 블로그나 관광지 자료를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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