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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Apr 28. 2021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12, 속리산

중간 즈음

  


소백산은 충청북도 보은에 있으며, 태백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이다. 784년(선덕여왕 때) 진표(眞表)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진표?     


  도도해 씨는 ‘진표’에 대해 검색한다.


신라 경덕왕 대 활동했던 승려로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하였으며 속리산에 길상사를 짓게 했다고 한다. 또한,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선 인물이란다. 진표는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았다고 한다. 11세 때 사냥을 나갔다가 밭둑에서 홀로 개구리를 쏘아 잡았는데 버드나무 가지에 개구리를 꿰어 물속에 넣어 두었다. 다음 해 봄 개구리 30여 마리가 꿰인 채 그때까지 살아 울고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참회하여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도도해 씨는 진표의 이야기를 읽다가 씩, 웃었다. 산이든 야생화든 숨겨진 설화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은 법주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세조 길을 지나 문장대까지 올라갔다 올 예정이다. 코스를 검색하다 찾은 제일 빠른 코스이다. 도도해 씨는 길을 나설 때 가장 먼저 코스를 확인한다. 익숙한 산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낯선 곳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행여 시간을 예측하지 못하고 산행을 했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혼자 나서는 길이니 준비물도 꼼꼼히 챙겨야 했다.     

<세조가 걸었다는 세조 길>

  이번 산행은 서울과 장성의 중간 즈음인 충청도에서 만나자던 친구 때문에 생각하게 되었다. 거리가 있다 보니 한 사람이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합의를 본 게 ‘중간 즈음’이었다. 이상하게 약속을 잡으면 비가 왔다. 서로 바쁘다 보니 내 일정에 맞게 약속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혼자라도 가겠다고 결심하고도 여러 번 비가 내렸다. 또 한두 번은 다른 일정 때문에 미뤄졌다. 오늘도 비 예보 소식이 있었다.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날을 샜다.     


  며칠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던 도도해 씨는 오늘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운이 넘쳤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잠을 자지 않아도 의식은 더 또렷해진다. 상태가 좋으니 발걸음도 빨라지고 삶에 활력이 넘친다. 작년부터 경험하게 된 현상인데 오래도록 체화된 불면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나 싶어 걱정되다가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부족한 시간으로 못했던 걸 하게 되었다.     


  도도해 씨는 툇마루에 앉아 잠깐 눈을 감았다. 잠을 자지 못해도 눈을 감고 있으면 쉬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잿빛이다. 이번에도 못 가면 한동안은 바빠서 산을 못 가게 된다. 오전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하늘만 우중충한 걸 보니 많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비를 맞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스멀거렸다. 그래서 가방만 들고 나섰다.     


  2시간 30분을 운전해서 법주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산행로를 확인하는데 예상했던 거리보다 길다. 7㎞를 예상했으나 10㎞가 넘는다. 무슨 생각에, 어디서 보고 7㎞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먼 길을 왔으니 문장대까지는 가기로 하고 세조 길을 걸었다.  

   

  도도해 씨는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峯)을 가고 싶지만, 혼자라서 문장대(文藏臺)까지만 가기로 했다. 혼자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산행 시작 시간이 오전 11시라서 하산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봄이니까 해가 늦게 지겠지만 산속에 혼자 오래 있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친구가 있었더라면 천왕봉까지 갔을 것이다.     


  도도해 씨는 길을 걷는 내내 속상했다. 최고봉에 못 간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서 친구에게 ‘중간 즈음’이라는 말을 듣고 설렜던 마음을 생각했다. 늘 정상만을 바라보는 자신을 탓했다. 최고봉을 가려면 주변 풍경보다는 정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산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들, 풍경이라든가, 풍경을 보며 마음을 다진다거나, 산행할 때마다 잔뜩 싸 들고 간 생각 보따리들은 풀 수가 없다. 그런 게 싫어서 산악회도 떠나고 혼자 다니면서(가끔은 친구들이랑 가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정상을 바라보니 한심하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 산책로를 바라본다. 요즘에는 산행하기 딱 좋은 철이다. 연두와 초록 때문에 마음마저 초록이 된다. 세조 길은 세조가 직접 걸어 다녔다고 하는 길인데, 법주사로부터 세심정까지 약 2.4km 구간이다. 중간에 눈썹바위와 목욕 소가 있다. 도도해 씨는 목욕 소 앞에 선다. 피부병을 심하게 앓던 세조가 약사여래 명을 받은 월광 태자가 복천암에 머물던 세조에게 나타났다고 한다. 세조는 월광 태자의 말을 듣고 목욕 소에서 목욕을 하니 몸에 나 있던 종기가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세심정으로 가는 길>


  도도해 씨가 잠을 못 이루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상황이 왔다 갔다 해서이다. 이상하게도 3월에는 좋은 일들만 일어났고, 4월에는 불안하고 지치고 짜증 나는 일만 많았다. 좋고 나쁨의 틈이 너무 커서 힘들고 지쳤다. 중간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힘들고 지친 날 중간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속리산행을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자꾸만 안 좋은 일이 생긴 게 꼭 속리산을 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산을 가겠다고 결심하고 못 가게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여러 번 실패하게 된 속리산을 가야 불안이 사라질 같았다.     


  극단적인 성향이 있는 도도해 씨는 요즘 마음을 쓰는 일에는 중간만 하려고 한다. 걱정하는 마음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정복하려는 마음도, 자식이나 남편에 대한 마음도, 타인에 대한 마음도. 모든 것을 중간만 하고 싶다. 예전에는 중간이라는 단어가 어중간하고 애매해서 싫었다. 하지만 애를 써도 안 된다는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자 이상하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성격상 대충 할 리는 없다. 다만 그동안 애쓰던 마음을 조금은 놓고 싶어서, 그걸 놓으려고 한다.


  법주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세조 길을 걷고 할딱 고개를 넘어 문장대까지 갔다 왔다. 예상했던 시간은 3시간이었는데, 5시간이나 걸렸다. 올라갈 때는 인적이 드물어 무섭기도 했으나 문장대 앞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려오는 길에도 인적이 드물었으나 뒤에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자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랬다. 진짜 산꾼은 정상이 아니라 산을 즐기는 거라고. 그렇다면 도도해 씨는 이제 산꾼이 되어가는 건가?      

<할딱고개를 넘으면 숨이 차서 할딱인다>


  ‘중간 즈음’.


  도도해 씨는 산을 갔다  뒤로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이 말을 되새긴다. 가끔 인간관계에서 관망만 해서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거리 두기를 해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도해 씨의 이런 마음도 딱 중간이었으면 좋겠다.

<문장대를 3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고 한다>


*산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를 참고했음.


*코스 : 법주사 입구 -> 세조 길 -> 세심정 -> 할딱 고개 -> 문장대 -> 회귀

(총 14.96km/ 5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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