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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May 09. 2022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16, 두타산

예술의 연원지, 두타산

   두타산은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남서쪽에 있는 산이다. '두타'는 불교용어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 뜻이다. 태백산의 주봉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무릉계곡, 동쪽으로는 고천 계곡, 남쪽으로는 태백산군, 서쪽으로는 중봉산 12 당골이 있다.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청옥산을 포함하여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타산 입구 삼화사

   두타산 주차장에서 삼화사에 이르는 14킬로미터 계곡에는 무릉계곡과 조선시대 쌓은 두타산성, 둥글게 패인 50개의 구멍이 있고, 조선 전기 4대 명필가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사들의 시가 새겨져 있다.

초입에 있는 양사언의 글

  전라남도 장성에서 강원도까지 무려 승용차로 5시간 30분이 걸렸다. 게다가 인솔자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산행 시간은 2시간 30분이 아닌 6시간 30분이 걸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일행을 만나 출발한 시간이 새벽 6시. 11시 30분쯤 강원도에 도착하여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기고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12시.


  우리는 두타산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삼화사를 거쳐 용추폭포를 거쳐 산을 오르려고 했다. 그런데 산행에서 만난 분들이 지금 용추폭포에 들렸다가면 늦는다고 곧바로 정상으로 가라는 말을 했다. 일행은 그분들의 표정을 보고 의아해했다. 지금은 한낮이고, 산행 시간이 2시간 정도 걸리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쳐다봤는데 그분들은 그 짧은 순간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분들은 이미 새벽에 산을 올라 하산길이었는데 이대로 간다면 6시간이나 7시간 걸린다고 했다. 벌써 낮 12시가 넘었으니 꾸물거리면 해가 져서 못 간다고 말했다. 게다가 우리가 타는 코스는 최고로 어려운 코스라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을 거라며 약간은 눈웃음을 지으며 겁을 주었다.


  이번에 당황한 사람은 우리들이었다. 예상한 시간과는 현저히 차이가 났으나 어렵게 온 길이라 물러설 수 없었다.

삼화사에서 학소대로 가는 길

  주차장에서 삼화사까지는 산책 코스였으나 학소대를 지나 백곰 바위, 두타 산성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아니 두타 산성을 지나 정상까지 가는 거의 모든 길이 오르막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중간에 능선도 있었으나 내가 이제껏 가본 산 중에서 가장 오르막이 긴 코스였다.


  불안은 내가 예상했던 거와 다른 걸 느끼면 시작된다. 산행 시간의 차이, 그것도 큰 차이. 우리 일행의 가방에는 간단한 간식거리밖에 없었다. 게다가 짧은 코스라 생각하여 배터리도 별로 없었다.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일행이 전부 그랬다. 평소에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이니 산책 코스로 갔다 올 예정이어서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다.


  중간에 멈추고 돌아서면 쉬울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전라도에서 강원도까지 온 시간이 얼마인데. 가성비를 따지게 되어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정상은 나오지 않고 새벽부터 굶고 와서 배도 고팠다. 간식을 아껴 먹으며 쉬는 동안에도 내려갈까, 를 몇 번이고 생각했었다.

두타 산성

  오르다 오르다 지칠 때쯤은 정상이 어느 정도 거리인지 포기하게 되었다. 많은 산행에서 얻은 경험으로 오르다 보면 정상이 나오고,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이 걸리지만 저녁 7시 전까지는 내려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보다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올 때 다리에 힘이 풀려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까가 더 걱정되었다.


  두타산성에 자리를 잡고 쉴 때 휴대폰 카메라로 높이 솟은 바위를 찍으려고 했다. 강원도에서만 볼 수 있는 깊은 산과 바위들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바위와 가까이 선 위치에서는 바위의 위상을 다 담을 수 없었다. 바위뿐만 아니라 산도 그랬다. 분명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임에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두타 산성에서 보이는 바위

  또다시 시작된 불안, 배터리가 나가서 휴대폰이 꺼지고, 지인의 휴대폰의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간식거리는 떨어졌고, 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리 힘도 점점 풀리고 주변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잠시 길을 멈춰 서서 산신에게 기도를 했다. 무사하게 산행을 마치게 해 달라고, 이전에 산행 시간이 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잠깐 투덜댄 것도 사과를 했다. 오르고 오르면서 기도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정상에 있는 얼레지 군락지

  정상에 올랐을 때 그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얼레지. 지난번 가야산에서 군락지를 봤는데 여기서도 군락지를 봤다. 봄꽃이 남아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군락지라니. 그때부터 불안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위들과 마찬가지로 얼레지도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쉬웠으나 자연이기에 다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챘다.

두타산 정상

  정상을 찍고도 바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와야 했다. 산행을 할 때는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오는 일은 더더욱 중요하다. 잘못하면 다리에 힘이 풀려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밑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내려오는 길도 오래 걸렸다.


  산행이 시작된 학소대 근처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산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이자 그동안 욕심을 부려 자연을 다 담으려고 했던 욕심을 버리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산을 오르면서 가장 불안했던 산이었기에 산행을 마쳤을 때는 그동안 뾰족했던 마음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산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산을 오르면서 두타산을 닮은 사람을 생각했다. 두타산의 경우 제일 먼저 '웅장함'이 떠올랐다. 이곳 사람들이 두타산을 모산이라고 생각하고, 예술의 연원지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웅장하면서도 나의 창작의 어머니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요즘에는 이상하게 그동안 친했던 사람들과 소홀해진 기분이다. 딱히 뭐가 달라졌느냐고 물으면 근거를 제시할 수 없으나 묘한 기류가 틈을 타고 나와 관계를 멀어지게 했다. 기분 탓이라고 하기에는 또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서 남몰래 관계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다.


  두타산을 오르면서 아직은 두타산을 닮은 사람은 찾지 못했으나 내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기존의 관계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이전과 상황이 달라졌,

 지금과 다른 관계를 추구하고 싶고,

 더 높은 이상을 가졌기 때문에,

 결국에는 내 마음이 달라졌기에,

 예술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기 때문에,

 이전의 관계가 서운하게 느껴졌음을,

 그 원인이 결국에는 내게 있음을,

 그걸 아는 동시에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들이 싹 풀렸다.

 무릉계곡

   나는 요즘 50이 되면서 학원을 그만둔 예전의 내 직원을 생각한다. 그녀에게 50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도 그 나이에 가깝게 가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다른 삶이라고 한다면 거창해 보일 수 있으나 조금씩 다른 내 모습을 찾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함도 생기지만 다른 모습을 찾는 동안 나는 성장할 거라는 것을 안다.


 그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났더니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두꺼운 불편들이 사라진 느낌이다.

오랜 세월 두타산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

  마음이 심란하거나 괴로울 때,

  관계로 인해 힘들 때,

  자꾸만 가정과 나를 분리하고 싶을 때는 산으로 가자.


 가다가 힘들면 쉬면 되고,

 후회되는 순간도 있겠으나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 반복되는 과정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과

 차근차근 밑을 밟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산행이 최고인 것 같다.


* 산행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를 참고했음.

* 두타산 코스 : 무릉계곡 주차장 -> 삼화사 -> 학소대 -> 백곰 바위 -> 두타산성 -> 깔딱 고개 -> 두타산 정상 -> 회귀

* 산행 시간 : 6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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