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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Aug 31. 2022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19, 설악산

길 위에 길 있고, 길 아래에 길 있다

     설악산은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라는 뜻에서 설산(雪山), 설봉산(雪峯山)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은 해발 1708m로 한라산 1950m, 지리산 1915m에 이어 남한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산맥의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을 내설악, 동쪽을 외설악으로 나누는데, 남설악이라 하여 오색지구를 추가하기도 한다. (산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에서 가져옴)


  우리 일행은 오색 그린야드 호텔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남설악탐방지원센터를 거처 대청봉에 올랐다. 풍경이 좋은 공룡능선 쪽으로 가고 싶었으나 이틀 전 치악산을 다녀와서 15시간 이상 걸린다는 쪽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또 하산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시간을 아껴야 했다.


  숙소에서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준비하고 오색 그린야드 호텔에 오니 6시쯤 됐다. 이른 새벽이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어 어두컴컴했다. 오색 그린야드 주차장을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는데, 그 사이 날이 밝았다.


  ‘하늘이 열리고 설악산이 우리를 받아주는구나.’


  문득 하늘을 보는 순간 열린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구름이 걷히면서 하늘이 열렸고, 이제 막 산 입구로 들어가려던 순간이라, 나는 구름이 걷힌 걸 산이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오랫동안 산을 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산이 열리고 우리가 들어가면 입구가 닫히고, 우리는 산 일부가 되어서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산짐승이 될 것 같았다. 8시간 이상 걸린다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것일지는 모르나 오늘 산행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뿌듯한 감정이 먼저 밀려왔다. 산에서는 절대 교만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전날 예상 코스와 시간을 계산하면서 8시간 이상 걸린다는 말에 나는 먼저 ‘포기’를 떠올렸다. 오늘 하루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포기, 도망칠 수 없고 도망쳐도 안 되고, 쉽게 산을 오를 거라는 기대, 기타 등등. 이런 모든 것을 포기한 순간 굉장히 편안해졌다. 하루만 포기하고 버티면 되는 거니까. 그러면 내가 원하는 정상에 오를 수 있으니까. 산에서는 이런 게 잘되는데 왜 일상에서는 포기하지 못하고, 버티지 못하는지 알 수 없다. 그냥 산은 산이어서라는 말로 퉁 치고 싶다.

  우리는 일행이었으나 경기도 가평에서 혼자 온 60대 여성 분이 있었다. 이번 산행은 일행이 있었지만, 가끔 혼자 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는 이들이 많다.


 여성이라는 굴레가 아직까지 남아 있었고, 여성이 혼자 산에 가면 범죄와 연루되는 줄 아는 사람. 난 그런 사람들은 산을 자주 다녀보지도 않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산에 가면 요즘에는 젊은 여성들도 혼자 오는 경우가 많다. 국립공원은 인적이 많아 위험하지도 않다. 물론 뉴스에서 흉흉한 사고를 접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게 무섭다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지도 않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 친구 중에는 여행 작가들이 많다. 그중에 어떤 분은 20여 년 동안 혼자, 때로는 일행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페북 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디제이가 혼자 다니면 무섭지 않냐라는 식으로 질문했는데 그분은 차분하게 당신이 가는 길은 ‘제비뽑기’라고 생각한단다.


 위험한 일은 내게 닥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제비뽑기에 걸린 거라고. 그렇지만 항상 안전을 위해 혼자 길을 나설 때 시간이나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고 길을 걸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길은 끝임 없이 오르막이었다. 돌도 많았고 가팔랐으며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올라가는데 이른 시간에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중청 대피소에서 하룻밤 자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가쁜 숨을 고르며 쉬고 있는 동안 올라가지 말라고 장난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산에서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했다. 올라가는 우리 일행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들 눈빛 때문에 그랬고, 우리가 하산할 때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인사말을 건네줘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산에 다니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사한 산은 처음이지?”

  “응.”

  “설악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인사를 하네.”

  “인사 안 하게 생겼냐? 다들 지쳐 죽겠구먼. 그 동지애가 발휘된 거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인사하는 것도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다 보니 익숙해졌고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나는 오색약수터 쪽에서 올랐는데 어떤 분은 다른 쪽에서 출발하여 공룡능선을 탄 사람이 있었다. 같은 산을 가더라도 길이 여러 개 있음을 실감했다. 내가 오르고 싶은 길이었으나 오르지 못해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같은 정상에 올랐으나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대의 감정이 같은 정상에서도 달랐을 것이다.

  등산 기록을 하면서 페북에 기록하는데 가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겠으나 나는 그 질문이 제일 현명하지 못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산에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코스와 시간이 달라지는데, 또 같은 길이라도 속도가 다르면 시간이 달라질 텐데…. 하는 생각. 하지만 탓할 생각은 없다.

  산에서도 갈림길이 나왔을 때 왼쪽으로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도 있다. 그럴 경우 대부분 양쪽으로 가다가 정상 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예 다른 길로 간다고 해도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있다. 그런 걸 알고 있으면 갈림길에서 선택하는 것도 쉽고, 일행과 길이 달라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길을 잃는다고 해도 그 길에서 연락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산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 후, 글을 쓰는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인터뷰를 해 줄 수 냐는 전화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쓴 지인을 보고 글쓰기 강사 제안을 해온 모양이다. 그 지인은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아 망설였고, 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나는 지인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어, 그녀를 도울 수 있어 다행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개이듯 우리의 삶에서도 여러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꼭 남들이 가지 않아도 내가 갈 수 있고, 내가 가지 않아도 남들이 간다. 하지만 나는 꼭 가던 길만 가려는 습성이 있다.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물론 어느 길은 꼭 한길로만 가야 하는 길도 있으나 그 외의 길은 여러 방면으로 걸어야 한다.


  내가 가는 길이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가는 길이 맞나 확신을 하고 싶을 때, 외골수적인 성격으로 나만 잘못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두려울 때.


그때마다 나는 산을 오르며 길을 살핀다. 여러 갈래의 길이 맞닿아 정상에 오르는 길을 보면서 어떤 길을 가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지금, 나는 또 다른 장편 소설을 쓰면서 소설가로서의 길을 생각한다.


  제1회 고창 신재효 문학상이라는 커다란 행운을 얻었음에도 그 행운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시 설악산을 오르는 길처럼 작가로서 돌산을 걸어야 하고, 끊임없이 계단도 올라야 한다. 산을 오를 때처럼 쉬엄쉬엄, 때로는 포기도 하면서 오르고 싶지만 조급함 때문에 쉽지 않다. 그 조급함을 꾹꾹 누르기 위해 오늘도 나는 산에 오른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100분의 28

*코스: 오색 그린야드 호텔-> 남설악탐방지원센터-> 대청봉-> 회귀

*소요시간: 8시간

*산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를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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