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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해 Aug 22. 2022

도도해 씨는 이래서 산으로 간다 018, 치악산

악(惡)이 악(樂)이 될 때까지

  산에 ‘악(惡))이 들어가면 악(岳)이라 힘들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악! 소리 날 것 같은 험한 산. 산과 ‘험하다’, ‘힘들다’가 같이 붙어 다니는 단어인데, 거기에 ‘악(岳)’이 추가된다면 얼마나 힘들까? 더군다나 우리나라 지형 중에 가장 험한 강원도에 있는 치악산과 설악산을 가겠다고 결심한 뒤로부터는 끊임없이 ‘포기’를  되새김질했다. 산에서 얻을 수 있는 편안함과 야생화를 즐길 수 있는 소소함마저 ‘미리’ 포기했다.     

<입석대>


  치악산은 1984년 12월 31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 국토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의 허리에서 남쪽으로 내리닫는 차령산맥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강원도 원주지 소초면 무쇠점 2길 26) 유달리 지형이 험하고 골짜기가 많아 곳곳에 산성과 사찰, 사적들이 널리 산재해 있다. 나는 원주 황골탐방지원센터를 거쳐 입석사, 신성대 쪽으로 비로봉에 올랐다.      


  치악산 황골탐방지원센터 입구에서 가장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입산 시간제한 간판이었다. 겨울철에는 12시, 여름철에는 2시까지 입산 제한이 되었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일행을 만나 강원도 인제까지 도착하자 오후 12시였다. 입산 시간을 지키기 위해 점심도 간단하게 먹어야 했다.     


  치악산은 처음부터 돌산이었다. 물론 다른 길도 있었으나 광주광역시에서 출발해 하산할 때까지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가장 짧은 코스를 탔다. 그래도 조금은 흙길이 있겠지, 기대했으나 끝없이 이어지는 돌길은 정상인 비로봉에 오를 때까지도 이어졌다.  

    


  산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나는 산 입구에서 이제 막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하산하는 사람들이다. 여름철, 장마철, 휴가철이라서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산을 오르려는 사람보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물론 늦게 시작한 점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올라가는 사람은 우리 일행 외에 다른 팀만 있었을 뿐 산이 텅 비었었다.     


  나는 산을 잘 타지 못하는 사람이라 처음 시작은 몸이 풀리지 않아 발걸음이 더디다. 속도를 내려해도 몸은 움직이지 않고 숨도 가쁘다. 몇 걸음 안 가서 쉬고, 또 몇 걸음 안 가서 쉬는 유형인데 그걸 보고 하산하는 분이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이라고 외쳤고, 그 뒤를 따르던 무리도 “안산(안전한 산행)”하십시오, 라며 힘을 주었다.      


  ‘내가 그렇게 힘들어 보이나? 내가 뚱뚱해서 산을 못 탈 거로 생각하나? 내가 지금 블랙야크 100대 명산을 25개 이상 찍고 다른 산도 많이 탔다고 사람들을 불러서 설명해야 하나?’


  가볍게 고맙다, 라는 말만 하고 지나치면 서로 좋을 것을 굳이 자신을 비하하며 고민에 빠졌다. 그건 얼마 전 모임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지인은 늘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다른 대상과 비교해서 자기가 생각한 것이 맞다, 라며 확신하려 한다. 그의 신념이기 때문에 비난할 생각은 없으나 비교당하는 대상이 ‘나’가 되니 모임 때마다 여러 번 불편했었다. 그러다가 폭발하는 계기가 된 게 그가 모임에서 꺼낸 이야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통통하다. 통통하다는 개념은 뚱뚱하다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 피티 강사는 예전에는 살이 쪄서 정말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은 더는 빼지 말라고 한다. 운동한 티가 역력한 몸이 보기 좋다며 자꾸만 개인 지도를 받으려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아주 아름다우세요.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니 그만하셔도 될 것 같아요.”

  “더 빼려고요.”

  “왜요?”

  “제가 생각해봤는데, 저는 인생을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모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외모 강박 관념이 심해서 놀리는 사람도 싫고 자존감이 낮은 것도 견딜 수가 없어요.”     


  나는 코치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지만 요즘 ‘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불편하다. 나 하나만을 놓고 이야기는 하는 것도 기분 나쁜데, 그걸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놀리듯 말하는 사람은 정말 싫다.     

  물론 스스로가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어 마냥 상대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비교라는 개념도 모른 채 비교를 해서 순위를 정하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악 소리가 나게 바위를 밟았다. 정상인 비로봉에 올랐을 때는 간간이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땀이 푹 절은 나를 위해 지인이 냉커피를 타 주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든 순간 그때까지만 해도 산 아래가 보였는데 운무 때문에 사라졌다. 커피 맛보다는 운무 때문에 보지 못한 산 정상의 풍경을 놓친 것이 안타까웠다.     

  정말 찰나의 순간에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경험하기 위한 장소는 산이 최고이다. 눈을 깜빡하면 다른 세상이 보이면 이제는 어떤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순간에도 내 마음은 돌밭이었다. 그 돌밭을 걷는 내내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발톱이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고통을 헤쳐 나오기도 지금 당장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또 어쩌자고 생각에 빠져 풍경을 놓치고 말았던가?     


  이상하게 요즘은 예전과 달리 숲 속이 아니라 산을 둘러싼 풍경이 보고 싶어 진다. 길만 따라 걸으면 자꾸만 속 좁은 나를 보는 것 같다. 앞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의 풍경을 보면서 넓은 마음을 기르고 싶은데도 내 눈은 여전히 비로봉에서 만난 안개이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앞이 보이질 않으니 삶의 발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나를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일도 나는 왜 넘기지 못하고 큰 산을 오르는 것처럼 ‘악!’ 소리를 지르는지 모르겠다.


  악(惡)이 악(樂)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 코스 : 원주 황골탐방지원센터 -> 입석사 -> 신선대 -> 비로봉 -> 회귀

* 소요시간 : 약 4시간 30분

* 산에 대한 정보는 네이버에서 참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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