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것 이상을 맛보게 해 준 발걸음

26킬로를 걸어 만난 대자연의 풍경

by 김청

드디어 맞이한 일요일.


계획해 두었던 것이 있어 고대했던 날이었다. 삿포로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에 친구랑 같이 오타루라는 운하도시까지 걸어서 갔었던 적이 있었다.


오타루라는 도시는 삿포로에서 약 45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인데, 버스로도 가보고, 전철을 타고도 가보고, 렌트를 해서 차를 타고도 가봤던 곳이다.


다양한 경로로 가봤던 곳이라 새롭게 가볼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걸어서 가보기로 했던. 당초 계획은 혼자서 가려했었으나, 친구가 함께 걷자고 해서 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었다.


그 기억에 이왕 삿포로에 왔으니 기억을 살려볼까 싶어 다시금 오타루에 걸어가 볼까 했는데, 친구가 이왕 걷는 거 다른 곳으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오타루와는 반대쪽으로 가야 하는 이시카리시에 있는 등대. 역사를 찾아보니 홋카이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사람들이 꽤 많이 찾는 장소였다.


구글 지도를 통해 목적지를 찾아본 결과


사람들이 올려둔 사진들을 보니 갈대가 쭈욱 늘어선 광경이 실제로 보면 너무나도 멋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행선지를 정하고 출발을 했다.


일요일이라 친구는 내일 다시 출근을 해야 하기에 21킬로라는 거리가 덜 부담스럽다고 했고, 돌아오는 버스도 있어서 올 때는 버스를 타고 오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쨍쨍해서 몸을 잘 태울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상태로 집을 나서려 했는데 친구가 그래도 얼굴은 보호해야 한다고 모자를 빌려줘서 모자를 쓰고 출발을 했다. 신의 한 수였다.


이시카리 등대를 향해 걸어가는 길


이렇게 계속되었던 맑은 날씨로 인해 직화구이가 되어 버릴 뻔했는데, 친구가 모자를 빌려준 덕에 다행히 얼굴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로스팅이 잘 된 커피콩이 되었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친구는 목걸이가 계속 뜨겁게 달궈져서 목을 공격하는 바람에... 작은 화상을 입었다. 분명 선크림을 나만 안 바른 줄 알았는데, 친구도 같이 안 발랐었던... 몸에 바르는 것을 찾다가 못 찾아서 그냥 나왔었다고 한다. 얼른 가라앉기를...


삿포로 중심가에서는 보기 어려운 한적한 넓은 도로


한걸음 한걸음 걷는 길목마다 새로운 풍경들이 우리를 반겨줬고, 우리는 이에 응하듯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걷고 또 걸었다.


가는 길이 어렵지도 않았다. 큰길을 따라 쭉 가다 보면 오늘의 목적지가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는 그저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국도 231번을 따라서.


큰길을 따라가다 보니 안쪽에 나무 그늘이 있어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보였다. 내리쬐는 태양을 비해 우리는 어서 빨리 옮겼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송골송골 맺힌 두 뺨 옆으로 스치니 시원해서 또다시 열심히 걸을 힘이 생겼다.


다리를 건너면서 찍은 풍경


이 날은 내가 사진을 어떻게 찍든 상관없이 모든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솜씨도 중요하겠지만, 피사체가 좋으면 뭔들.


그 어떤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었어도 작품이 되었을 그런 하루였다.


나는 연신 “좋다”, “와 진짜 좋다”, “와 좋다”를 남발하며 친구와 걸었다. 걷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좋다고 하는 바람에 거짓말 살짝 더 보태서 오늘 하루 좋다는 말을 200번 이상은 한 듯하다.


그만큼 좋았다. 날씨도, 풍경도, 함께 걷고 있는 친구도, 같이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포퓰라 나무가 늘어선 어느 길목


걷던 길이 끊기는 바람에 다시 큰 차도 옆 길로 걷기 시작했는데, 맞은편에 있는 소프트아이스크림 집을 친구가 잘 찾아냈다.


그래서 건널목을 찾아 건너가며 어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팔지 기대됨과 동시에 지금까지 느꼈던 더위를 시켜주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가 아이스크림 맛을 보기 전부터 마음에 들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앞에 서있는 차들이 왜인지 다들 아이스크림 집 앞에 서있는 것 같았다.


웬걸, 진짜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줄 선 차들이 3~4대가 있었고, 5~6명이 들어가면 꽉 찰 법한 가게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가갈수록 기대가 되었던 어글리덕 아이스크림 가게


숨겨진 아이스크림 맛집을 찾았다며 가게 메뉴를 둘러보는데, 오늘의 메뉴에 홍차 소프트가 있어서 둘 다 고민도 하지 않고 선택을 했다.


사실 나는 처음 가는 소프트집은 바닐라를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홍차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가 없었던 일. 이땐 알지 못했다. 두 가지다 먹었어야 했었다는 것을...


기다림 끝에 아이스크림을 받았고, 계산 후 가게에서 나와 맛본 소프트의 맛은.... 극락이었다.


홍차맛의 소프트 아이스크림


이렇게 맛있을 수가. 은은하게 퍼지는 홍차향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아이스크림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햇빛이 내리쬐는 거리를 걷다가 만난 꿀맛 같은 시원함이었기에 더 극대화된 맛을 느꼈을 것이다.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은 친구 덕분에 이런 맛을 보았다며, 친구는 흔쾌히 가던 길 돌아 건너가자고 한 나에게 고맙다며 하이파이브로 마무리하고 걷던 길을 또 걸었다.


동네 골목길을 걷기 위해 다리 건너는 중


시원 달콤한 맛을 보고 걷는 길이 조금 지루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하겠지만 골목골목을 돌아가보기로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았고 여유로웠으니까.


조용한 주택가에 지어진 예쁜 집들과 관리가 잘 된 집들이 다양하게 늘어서 있었다.


깨끗한 거리에 정돈된 듯한 동네의 느낌이 이곳에 와서 살면 시끄러운 내 마음속이 조용하게 잠잠해질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용한 동네, 잘 관리된 집들


그렇게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 목적지까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걸으니 4시간도 5시간도 거뜬하게 걸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이야기는 사회, 정치, 경제, 인간관계, 우리의 현재와 미래 등 정말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뻗어 나간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하다 보니 마주한 바다.


해가 떨어지는 중인 바다


오늘 우리의 발걸음이 이곳에 닿을 줄 알았던 것 마냥 석양이 지고 있는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좋다는 말이 닳아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이었다.


또 좋았고, 또 감탄했다.


설명이 필요없는 장관


오타루에서 보던 바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바다. 삿포로 사람들은 좋겠다는 말이 입에서 쉬지 않고 나왔다.


도시의 편리함도, 차로 3~40분 거리만 나가면 대자연의 위대함도 느낄 수 있는 운 좋은 사람들.


그렇게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해가 다 떨어지기 전에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등대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등대 앞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드디어 마주한 등대. 역시나 카메라로 다 담지 못함에 아쉬움이 남았으나, 마음과 머릿속에 새겼다.


그리고 친구랑 애국가를 불렀다. 저 풍경을 보니 그냥 갑자기 그러고 싶어 그리했는데, 둘 다 부르고 나서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자연에 감사하며, 동행해 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며 인사하고는 막차를 타기 전 뭐라도 먹기 위해 부지런히 식당을 찾아 나섰다.


출발할 때 간단하게 먹은 것 외에는 오늘 먹은 것이 없었기에, 뭐라도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우린 7시 16분에 있는 막차를 타야 했기에 이제부터는 서둘러야 했다.


엄청 큰 그릇에 한 가득인 카레


근처에 온천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식당이 있어 제일 빨리 먹을 수 있는 카레를 시켜 먹었다.


카레를 다 먹고도 시간 여유가 좀 있어 아이스크림까지 완벽하게.


밀크맛, 헤이즐넛맛 아이스크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시간에 버스를 타고 집 근처 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도착. 시작부터 끝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완벽하게 흘러간 하루.


덕분에 이렇게 또 잊지 못할 추억이 쌓인다.


내일은 또 어떤 삿포로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p.s. 26킬로 걸음 인증

걸어간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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