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빨대

by 김호섭

빨대가 귀여운 새벽이다.


지극히 소소롭거나 흔하디 흔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는 빨대가 귀엽다니.

본인의 애정결핍을 별의별 사물에 이입하여 애써 애정다정하려는 걸로 보아하니 외로움을 에둘러 표현하려는 어느 한 인간의 애절함이 애잔하거나 애처롭거나 그러기도 하겠다.




공원에서의 새벽운동 (걷기 + 에어로빅댄스)을 마치고 생생은 참새 방앗간 들리듯 편의점에 들어선다.

그래서 생생은 CU라 안 부르고 TB라 부르니(True Bird), 일명 TB 편의점이다.

이 새벽의 멍한 정신을 산뜻하게 풀어주는 건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사계절 원탑이니까.


그걸 사러 문을 열자 졸고 있던 알바생이 부스스 눈을 뜬다.

지극히 자동적인 동작으로 커피와 얼음을 집어든 후 계산대에 올려놓고 리더기에 체크카드를 꽂는다.

알바생의 계산처리를 기다리면 된다.

상호 간에 아무런 말이 필요 없다. 서로 간에 눈길도 마주하지 않는다. 편의점의 알바생이 새로 와도 편의점의 사장님이 새로 바뀌어도 어떤 변화가 와도 이 동작의 변화는 없다.

그러다 갑자기 기가 막힌 변화가 일어난다.


알바생이 말한다.

"저기... 빨대가 작은거 밖에 없어요. 어쩌죠?" 하며 커피빨대가 아닌, 작은 빨대 - 일명, 바나나 우유 전용

빨대를 내민다.

"아이쿠, 귀여운 빨대군요." 0.5초도 안 걸린 생생의 멘트에 스스로도 흠칫 놀란다. 멋쩍어한다.

(아니. 귀여운 빨대라니. 내가 이리도 표현력이 다채롭고 풍부한 녀석이었나?)


이제 서서히 변화의 순간이 온다.

졸음인지 걱정인지 수심가득하던 알바생의 표정이 순식간에 활짝 피며 킥킥 거린다.

"귀엽...^^" 그러더니 좀 더 크게 웃기 시작한다. "큭큭큭큭"

"아니. 웃겨요? 귀여운 아저씨가 빨대에게 귀엽다 했거늘 뭐가 그리 웃겨요?"

이어지는 알바생의 웃음은 빵 터진 웃음이다. "꺄르르 꺄르르"

생생도 따라 웃는다.

(이선희가 부릅니다. 한바탕 웃음으로)


적막하던 편의점이 웃음과 미소로 가득하다. 밤샘으로 피곤에 절어있던 알바생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래. 그럼 된 거다. 고단하지만 웃을 수 있다는 건 사피엔스만의 특권이다.

짧은 유머 하나로도 웃을 수 있는 알바생은 역시 청춘이고,

귀여운 빨대하나로도 커피를 마실 줄 아는 생생은 다시 청춘이다.




이렇게 사사롭고 흔하디 흔해 굴러다니는 사물을 통해, 고단하고 피곤한 우리네 일상의 시간속에서

잠시나마 유쾌함을 선사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미리 준비를 못해 손님에게 미안한 마음이거나, 사장님께 혼날듯한 걱정스러운 알바생의 예감을 간파하고

빨대에 귀여움을 선사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과 그 되지도 않는 유머에 깔깔 웃어줄 수 있는 열린 마음.

그 마음이겠다.

그 마음은 소소하거나 흔하지 않다.

그 짧은 유머는 별로이거나 노잼이지 않다.

그 짧은 문장은 어설프지가 않다.

말은 글이 되고 다시 글은 말이 될 터이니, 글도 말도 어느 것 하나 소소하거나 흔하거나 무쓸모하거나

그러지 않고 소중하다. (예외 : 타인에게 상처, 부담, 슬픔을 주는 말과 글)


이미 힘내고있는 청년들에게 더 힘내라는 건조한 말보다 한꼬집의 웃음을 선사하는 어른은 꼰대보다는 유쾌한 아저씨, 귀여운 아저씨에 가깝다.


그러하니, 독자님들이여

이 글이 너무 억지 춘향이라고 타박하지 말지어다.

말과 글로써 어떻게든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 발그레 발그레 생생의 절절함을 그저 어여삐 여겨 주소서.


"귀여운 빨대로 커피 한잔 하실래요?" 초롭 * ~

한줄요약 : 매일 행복하고 싶다면 작고 귀여운 기쁨을 채집하라는 얘기가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의사항 : 귀여운 빨대라는 표현은 아무나 써서는 안 된다. 귀여운 사람만이 가능하다. .


* 초롭 : 귀여운 의성어를 선사해 주신 @구자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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