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40년

by 김호섭

저 유학 갑니다.

큰 맘먹고 갑니다. 영국으로요.

공부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학업에 몇 년이 걸릴지 지금은 모릅니다.

오래 걸릴듯한데 시간이 많이 흘러도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공부하러 갈 학교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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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그와트 마법학교.




이런 유머가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해리포터가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완전히 뜨기 전의 시절에 이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많이 보고 싶을 거라는 둥, 벌써 그립다는 둥, 유학기간 동안 못 볼 생생의 부재를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문자를 보내온다. 순수절정의 인간들이다.

이 통보가 단순 유머라는 사실에 허탈해하거나 괘씸해하면서도 다시 만날 생각에 반갑고 고맙다는 순진폭발의 인간들이다. 아무튼 유머로 한번 웃고 넘어간 지난날의 시간이 있었고, 그런 따뜻한 친구들이 있었다.


오늘은 엄연한 Fact를 구독자님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절대 유머가 아니다. 절대 소설이 아니다. 나는 진실만을 말하고 싶거나 말하는 자. 쓰는 자이니까.



사이버대학이지만, 엄연한 대학이다.

나이가 예순이지만, 엄연한 대학생이다.

메타버스캠퍼스이지만, 신입생 OT도 있고 수강신청도하고 교수님도 학우들도 만난단다. 엄연한 캠퍼스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현실 속에서처럼 과팅이나 소개팅이나 이런 것도 있으면 좋으련만...)


어쨌거나 대학생이 되었다. 세종 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 (편입) 3학년이 된 것이다.

생생은 새해 첫 빅뉴스로 가족, 지인, 친구, 글로벌 네티즌들에게 긴급 속보로 타전하기 시작한다. 가족과

글벗님들을 제외하고는 별 반응은 없지만서도.

그래서 CNN처럼 Breaking News를 전할 때에는 각계 각 분야의 뉴스분석팀이 있어야 하나보다. 나만의 빅뉴스인지, 엄연한 글로벌 빅뉴스인지 미리 따져봐야 하니까.




건조한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닥쳐온 현실은 익사이팅하기 그지없다. 40년 만의 캠퍼스라니, 40년 만에 대학생이라니. 당장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한다.

어후후. 입가의 미소는 떠날 줄 모르고 발그레 발그레 설레는 마음 하나.

어이쿠.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제대로 학업을 쫓아갈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 하나.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마음이 들 때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 하면서 차분히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소리는 40년 전 스무 살 꽃다운 청춘의 시절에서 들려온다.




대입 학력고사를 망친 생생은 허무에 빠진다. 저녁이면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한잔, 두 잔 하던 술은 어느새 무한폭주하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날마다 허무의 바다는 심연으로 이른다. 열심히 달려와 마주한 결승점이 찬란한 하늘이 아니고 심연의 바다라는 충격은 십 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젊음에게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안겨준다. 대학도 학과도 대충대충 선택한다.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뭔가 새로운 의욕을 찾으라는 주변의 이야기는 남의 다리 긁는 이야기, 딴 나라 이야기로 들릴뿐이다.


그 시절 대부분의 친구들이 선택하는 공대에 지원한다.

학과는 응용물리학이다.

물리를 좋아하는가? 설마 그럴 리가.

그저 물리도 복잡할 텐데 이걸 응용한다니 관심 폭발인 건가? 에효 그럴 리가.

그저 과이름이 제법 고상한걸? 하고 내린 결정이다. 그렇게 생생은 공대생 물리학도의 길로 들어선다.

그렇게 생생은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산업역군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에 이바지한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은 40년. 이웃나라 일본의 그 40년이 아니다. 오로지 한 개인의 40년 그 세월을 의미하지만 꼭 한 개인의 시간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래 대부분이 개인의 취향보다는 한 방향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문과는 소수고 이과는 대다수다.

소수는 배고프니 어디 가서 굶지 않으려면 선택의 고민은 없다. 공대다.




그 40년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아래는 전유정 작가님이 도움을 주시는 하루 한 문장 고쳐쓰기 문장공부에서 써본 글이다.)


1) 원 문장

- 부모 세대의 삶은 무늬 없이 일직선으로 결정된 시간을 살았습니다. 하나의 이름,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정서였습니다. (이정훈 작가님-쓰려고 읽습니다.)


2) 나의 문장

- 개인은 없고 선택도 없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났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속에 잘도 돌아가는 미싱의 그저 그런 부품으로 살아왔다. 먼 길 돌아와 거울 앞에선 우리는 얼굴도 없고 무늬도 없다. 허허롭고 쓸쓸한 민둥산뿐이다. (나무도 없고 머리카락도 없다.) 앞에도 옆에도 빈 벌판뿐이다.

이제는 낡고 고장 난 부품이지만, 그 시절 흘렸던 땀방울을 국가는 또는 역사는 무어라 평가할 것인가.


사실 이제 그따위 평가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제라도 내 무늬를 그리고 만들고 칠하고 채우기 시작했으니 그럼 된 거다 믿는다. 그러기에도 바쁜 나날이니 그럼 족하다 웃는다.

나에게 글쓰기는 그 새로움의 가열찬 원동력이니, 때로는 뻔뻔하면서 귀엽다거나, 독특하며 희한하다는 글벗들의 평가는 사뭇 설렌다. 쓰는 모든 과정이 내 얼굴과 내 무늬를 찾아가는 여정일 테니 그 여정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빛을 발하리라. 그 빛은 화려하거나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만의 얼굴이고 나만의 무늬가 될 테니.



배움이란 무엇일까?

그저 먹고사니즘을 위한 생계형 배움도 있겠고, 정말로 하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 배움도 있겠다.

두 가지 모두 배움이겠으나 하나는 수동이고 하나는 능동이다. 이제라도 능동의 배움을 선택한 이유는

국문과나 문예창작학과에 대한 로망의 실현과 정제된 글쓰기를 해보고 싶고 이제라도 나만의 무늬를 짜보려는 애잔함 때문이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겠다. 배우러 온 인생, 배우고 싶은 분야로 몸을 틀고 자세의 방향을 잡고 마음을 기울이다 가야하지 않겠는가.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다.

나의 40년은 모두 홀랑 잃어버린 또는 날려버린 시간일까?

동영상 편집할 때처럼 중간 40년을 싹둑 자르기 해버리고 20대와 60대의 바로 이어 붙이면 근사하고 멋진 파노라마가 펼칠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엎어지고 넘어지고 울고 불고 달려온 40년은 나름대로 자양분이 되어

어떤 무늬로든 나를 직조할 것이리라 믿는다. 그 모든 무늬가 나만의 주름살처럼 글의 주름을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 그리 믿어야지 뭐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지나간 시간을 누구에게 돌리도 할 수는 없으니.


빈 커피잔에 남은 마음은 이제 설렘도 두려움도 아니겠다.

그 길과 마음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걷는 순례자의 길,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이겠다.

신나게 떠나보자.


나만의 마법 주문을 외치면서.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한 줄 요약 : 엊그제 메타버스 캠퍼스에서 OT가 있었다. 학과장님의 마지막 멘트가 멋지다.
'삶이 풍성해지리라" 역시 문창과의 수장 다우시다. 꾸준히 배우는 학생이 되자.


* 배움의 길로 이끌어 주신 @좋은이 작가님 @이세정 작가님 그리고 라라크루 글벗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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