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섭 Dec 03. 2021

진심이냐, 벼락이냐

갓 신 내린 태왕 보살이냐

우리 동네에는 점집, 철학관들이 유난히 많이 있다.

대부분 수십 년 이상 역사가 오래된 곳이라, 지나가다 살짝 바라 보아도 뭔지 모를 아우라가 넘실거린다.


그 이름도 다양하여,

벼락 신당, 진심 철학관, 묵송 철학관, 정명각, ? 사주 타로, 윤당 기문둔갑 철학관, 만복 철학관...

작은 동네에 줄잡아 20 여 군데는 족히 될 듯하다. 그야말로 철학관 핫플인 것이다.

신기한 점은 자유공원 초입 홍예문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펼쳐진 신포동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홍예문 북쪽, 바로 옆동네인 전동에는 이렇게나 많이 모여있는 것이 다소 의아할 지경이다.  

의아하고 궁금한 사람은 정녕 나뿐인 것인가?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많은 것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니 이런 점은 내가 장착한 몇 가지 안 되는 장점 중에 하나 이리라 혼자 흐뭇해한다.


특이점이 온 나는 궁금한 것은 반드시 알아내야만 하는 별난 성격 탓에

우선 주변 식당이나 가게에 탐문 수사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많은 점집, 철학관이 특정지역에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단지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이다.

홍예문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보이는 식당이 있다. 중국집이다. 이 가게 또한 수십 년은 족히 된 듯.

사람이나 집이나 가게나 나무들이나 기본이 수십 년인 이 동네. 정겹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한 이 동네에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니 좀 더 구체적이고 의미 있게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구역은 거의 일 년 내내 햇볕이 거의 안 드는 특이한 지역이라오. 봄에도 초여름에도 겨우내 내린 눈이 녹질 않지. 그리고, 아주 예전 홍예문은 생의 모든 희망과 의지를 잃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기 위한 장소로 적합하게 높아서 그런 마음 아픈 사건들이 꽤나 많았다오. 그 당시 인천에는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던 바람에...... 이곳은  음의 기운,  신의 기운이 아주 팽팽한 곳이지. 그래서 이쪽으로 예전부터 점집, 무당집, 철학관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런 기운 때문인지 신통하게들 사주팔자를 잘 보아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지..."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수십 년 전 홍예문 근처 고등학생 시절 때 수시로 엠블란스가 오고 가고 하던

 기억들이 솟아나는 바람에 모처럼의 호기 어린 탐정놀이 기분은 울적한 마음이 되어 버렸다.

"아. 그렇군요."

 맛있는 짜장면값 단돈 3,000원에 궁금증을 풀게 되었지만 괜스레 마음은 울적해지기만 했다.

"지금도 카운터에 한참 앉아 있으면, 주방, 홀 여러 군데에서 원혼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 웬만한 강단이 없으면 여기서 식당도 못해. 나야 워낙 기가 세서 원혼들에게 야단도 치고 타박도 하고

 그러지..."

 갑자기 뒤통수가 쭈뼛... 서늘함에 서둘러 식당을 나오게 되었다.

 (저렴한 가격과 음식 맛이 꽤 좋은 식당이니 선입견 없이 식사하러 와주세요 ~^^)


 배경 이야기야 그렇다 치고,

 그렇게 신묘하고 신통하다면 나도 한번 사주팔자나 보러 가볼까?

 비용도 꽤 들 텐데, 없는 살림에 가당키나 하겠어?

 그래도 문세형의 말처럼, 알 수 없는 인생... 이 인간의 파란만장하고 각박한 인생사에도 혹시 노년에 동쪽에

 서 귀인이 나타나, 기가 막힌 운수 대통의 길을 열어주는 그런 행운의 사건. 쨍하고 해 뜰 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어때 한번 가보지 않으련?

 어지러운 마음으로 고민하는 사이,

[갓 신 내린 태왕 보살 (이만 원) 010-xxxx-xxxx]

동네 앞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 흰 바탕에 파란색 글귀로 된 다소 소박한 현수막이 눈에 띈 것이다.

아니 무슨 갓 내린 핸드드립 커피도 아니고,

밭에서 갓 뽑아 올려 양념 버무린 여수 돌산 갓김치도 아니고,

갓 시집온 새색시도 아니고,

갓 신내림이라니. 오 마이 갓 ~

불현듯 '갓'이란 단어가 궁금해졌다. 네이버 어학사전이 말하기를 이제 막, 금방이란 뜻이란다.

이제 막 신내림을 받았다는 의미는 평범한 어느 보살님이 이제 막, 금방 신내림을 받아서 신묘한 능력을 갖추게 되어서 그야말로 신기가 생생 충만한 보살이라는 의미이겠다.

진심이냐 벼락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눈에 번뜩 뜨인 갓 내린 태왕 보살님께 찾아가 볼까?


이런 마음의 본질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앞길에 대한 불안 이겠다.

어쨌거나 나름  IT Guy라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이러한 막연한 불안에 대해 심적이나마 의지하고 싶은 그 무엇이 바로 점, 사주팔자... 그런 것 이리라. 인간의 불안한 심리로 인해 찾아가게 되는 곳.

또한 이 영역은 예로부터 인문학의 한 테마로서 주목을 받아왔던 "주역"이었겠고 근래에 들어서는 "명리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으로도 발전하게 된 것이다. 좀 더 생각을 펼쳐보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이 영역도 AI (인공지능)가 인간을 대신해서 점을 보거나 사주팔자를 봐주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깜찍한 두려움마저 들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도사님, 보살님들이여 걱정하지 마시라.

수년 전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에게 연패를 거듭하다가 신의 한 수로 멋진 한판 승리를 거두었던 이세돌 9단. 그 절묘한 신의 한 수를 던지고 반짝반짝 빛나던 이세돌 9단의 그 형형한 눈빛을 우리는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산업과 신기술들이 인간 삶과 행동에 엄청난 발전과 편의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예상은 틀림없는 사실이겠으나 인류만이 품고 있는 인간의 정수. 그것만이 호모 사피엔스의 현재를 결정하고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는 본질적인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주역을 바탕으로 한 사주팔자의 해석 역시도 '인간의 무늬를 연구하는 인문학'적 의미(어느 철학과 교수님의 표현임)에서 AI가 마지막까지 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지 않겠나 나름의 뇌피셜을 가동해 봄직도 하다.


그래도 전직 IT Guy 로서 사주팔자가 웬 말이냐 라는 고정관념에 망설여진다.

괜한 고민이 또 하나 생긴 것이다.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태왕 보살님이 자꾸만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석양 같은 일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