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익는다. 흰쌀 두 줌으로 밥을 짓는다.
밥을 잘 안 해 먹는다. 아침은 편의점 샌드위치와 커피 한잔,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저녁은 삶은 계란 한두 개 정도로 때울뿐더러, 자칭 상남자인 생생은 작은 종지에 반찬들 소담히 담아 내놓고 찬찬히 소꿉놀이 상차림하여 아빠다리 하고 앉아 옴야옴야 배 두드려가며 먹을 일은 아예 없으니 밥을 잘 안 해 먹는다. 더군다나, 밥을 지어먹는 단계뿐 아니라 먹고 난 후의 처리과정도 세상 귀찮으니 애초에 밥을 짓는 일은 거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계량컵이 없기 때문이다. 계량컵은 어디 가면 살 수 있나? 쌀집에? 마트에? 다이소에? 검색해 보면 바로 알겠지만 사색을 좋아하는 생생은 추리에 들어간다. 쌀집엔 분명 없을 거야. 가마니나 포대로 파는 가게니까. 한 컵 두 컵 단위로 팔기 위한 계량컵은 가게에서 쓸모가 없겠지. 소비자들의 입장을 배려해 계량컵도 판다는 쌀가게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바 없으니 패스. 다음은 마트다. 마트에도 없을 거야. 수십 년 다닌 마트에서도 두 눈으로 명백히 본 적 없으니 있을 리가 없어. 패스. 그럼 역시 결론은 다이소인가? 바늘부터 인공위성까지 웬만한 생활용품은 다 있다 하니 거기로 가보자. 그런데, 계량컵 하나만 사고 나오기엔 너무 궁색하지 않아? 간 김에 같이 사 올 건 뭐가 있지? 차일피일 이거 저거 구매할 거 리스트를 적다 보니 정작 계량컵은 뒷전으로 밀리고, 계량컵은 여전히 내 방구석에, 내 손안에 없다. 없으니 밥을 안 해 먹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고, 신난다. 당연히 밥은 안 해 먹는다.
갑자기 허기가 진 어느 날 새벽.
삶아놓은 계란도, 삶지 않은 생달걀도 마침 똑 떨어졌다. 큰일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긴박한 순간을 잘 넘겨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보려다, 하얗고 귀여운 전기밥솥이 눈에 띈다. 이 방구석에 이사 올 때 딸이 선물해 준 아이다. 브랜드는 Automo. 오토모. 오토마더. 오토맘. 자동엄마란 뜻일 게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쌀을 담는다. 흰쌀 한 줌 두 줌. 계량컵이 없으면 잇몸으로 (아니 손으로) 대충 계량해 보자. 쌀을 씻어 안치고 코드를 꼽는다. 삼십 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가 김 빠지는 소리 나듯 김이 빠지길래 열어보니 곤죽팥죽이다. 이건 밥이라 말할 수 없다. 선택버튼을 흰쌀이 아닌 잡곡으로 눌렀고, 쌀도 물도 적당량 조절이 제대로 안된 탓이리라. 쌀이 아파 보인다. 내 마음도 아프다. 그래도 먹는다. 곤죽이든 팥죽이든. 어떤 밥이든 밥의 본질은 쌀이니까.
내가 밥을 이리도 못지어 먹었나? 젊었을 땐 꽤나 잘해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심각한 기억의 오류인 건가? 공대생치고는 심각한 기계치라 그런 건가? 아무튼, 이런 시행착오와 서투름을 몇 차례 겪고 나서는, 어느 날부터는 제법 능숙하게 밥을 짓는다.
일상도, 마음도 그러하리라.
너무 과하거나 아주 부족하게 계량하여 쏟아부은 어느 하루는 잘 익지 못하더라. 과하면 곤죽이요 모자라면 팥죽이다. 쌀이야 서너 번 계량해 보면 손의 감각으로 적당량의 조절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들쭐날쭉하는 마음이란 건, 저 고단한 일상이란 녀석은 서너 번의 가늠으로 똑딱 뚝딱 똑 단발처럼 딱 떨어지게 계량되지 않는다. 육십 평생의 시간과 세월에도 제대로 마음 짓기, 안온한 일상살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마음과 일상의 계량컵은 물론 다이소에도 없다. 종교에 있으려나 철학에 있으려나 손에 잡히는 데로 책 속을 거닐며 안정과 지혜를 구하지만 애초에 계량할 수 없기에 태초에 측량할 수 없다. 균형 있는 조율과 칼 같은 조절이 어려운 이유다.
그저 윤기 나고 따스하거나 제법 근사한 마음을 지으려면 먼저 먹어야 한다는 뜻이려나? 그러니 마음먹기인 건가? 수많은 곤죽 팥죽의 마음을 먹어보고 울며 웃는 일상을 겪어 먹으며 아주 미세하게 계량되어 가는 나날들. 그러니 짓기보다 먼저 선행돼야 하는 건 먹기, 겪기이며 체하거나 탈 나지 않게 시간과 경험이 그 완성을 도와주는 걸 테지? 오로지 하얗고 윤기만 나는 삶은 없을 터이니 잡곡이 더 우리네 삶과 친근하고 건강한 건 말하나 마다 당연한 일이기도 할 거고.
개인의 마음도 타인의 마음도, 계량컵의 모양과 크기는 생김새도 다르고 지문처럼 유일하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마음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니 매일매일 매 순간 마음의 계량을 위해서는 먹고 또 먹고 자꾸 먹어야 함이 지혜로운 마음 짓기에 이르는 길이겠다. 무엇을? 마음을.
4월도 벌써 하순인데 쌀쌀한 바람이 분다. 저 멀리서 소리도 들려온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다. 이래저래 늦어진 저녁산책을 그만 접고 방구석으로 향하는데,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기가 아장아장 나에게 오며
"안뇽" 인사를 한다. 뒤에서 젊은 엄마 아빠가 웃으며 아가사진을 찍는다.
함박웃음과 찰진까꿍을 예쁜 가족의 계량컵에 선사하고 산을 내려간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밥이 익는다. 당연히 잡곡밥이다. 흰쌀 네 줌, 까만 쌀 반줌, 햅쌀 반줌. 합이 다섯 줌에
저녁햇살 버무려 지은 밥의 향기가 방구석 가득이다. 딸의 사랑, 엄마의 향기다. 다소 모자란 어느 일요일의 마음은 이 사랑스러운 향기와 아가의 까꿍이 채워준다.
월요일이 슬슬 다가온다 해도 괜찮다. 밥을 지어 놨으니.